소녀 (2013)


윤수라는 소년이 이름 없는 시골 마을로 이사 옵니다. 대입을 앞둔 서울 고등학생이 갑자기 시골구석으로 이사를 온다면 전에 있던 학교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이죠. 요새는 시골이라도 인터넷이 깔렸으니 금방 정보가 퍼질 법한데, 그 마을 학교 학생들은 다행히도 그의 과거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윤수는 전학 오자마자 같은 학급의 해원이라는 소녀에게 빠져듭니다. 해원은 이런 영화에 나오는 감수성 예민한 10대 소년이 빠질만한 거의 모든 것들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무척 예쁘고, 밤마다 사람 없는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습관 역시 무척 매혹적이에요. 마을에 퍼져 있는 수상쩍은 소문은 오히려 신비스러움을 더할 뿐이죠.

해원에게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툭하면 주변 여자를 건드리려는 그를 언젠가 시설로 보내려고 벼르고 있죠. 심지어 해원과 해원의 아버지가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소문까지 돕니다. 그리고 어느 끔찍한 밤, 해원의 아버지가 한쪽 팔이 잘린 채 죽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영화는 더 이상 로맨스로 남을 수가 없습니다. 윤수의 과거가 되살아나고 숨겨진 마을의 비밀이 폭로되며 사방에 피가 튑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진성의 [소녀]를 [렛미인]과 비교합니다. 이해되는 일입니다. 두 영화 모두 얼음과 눈으로 덮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로맨스지요. 하지만 무리하게 두 영화를 연결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몇몇 테마를 공유하고 있지만 [소녀]와 [렛미인]은 다른 장르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중심 테마로 삼고 있는 것은 소문입니다. 곧장 말해 한국 사람들의 오지랖인데, 영화는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죠. 영화의 스토리를 움직이는 것은 해원을 둘러싼 소문입니다. 소문은 단순히 해원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조작할 뿐만 아니라 해원의 삶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진짜 비밀을 은폐합니다. 여기에 윤수의 과거까지 더하면 영화 후반을 끌어갈만한 폭발력이 생깁니다.

영화는 이 주제를 살리기 위해 몇몇 상징들을 더하는데, 마을에 도는 구제역과 그 때문에 죽어가는 돼지들, 영화 후반에 오는 개기월식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이 영화의 이야기에 유기적으로 잘 녹아들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영화가 감추고 있는 진상이 그를 덮고 있는 미스터리만큼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소녀]는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때, 각 장치들의 기능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을 때 가장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그래도 영화는 관객들을 끝까지 지루하게 두지 않습니다. 진상이 조금 허망하더라도 미스터리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꾸준히 자극하고, 서스펜스의 리듬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그림이 좋아요. 일단 주연배우인 김윤혜와 김시후는 모두 무척 예쁘지 않습니까. 이들의 화학반응도 좋고, 로맨스와 살육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이야기와도 참 잘 맞습니다. 특히 김윤혜는 한동안 이 이미지를 계속 파도 될 것 같아요. (13/10/23)

★★★

기타등등
최진성의 전작 중 가장 유명한 건 SM 다큐멘터리인 [I AM.]입니다.


감독: 최진성, 배우: 김윤혜, 김시후, 문창길, 기주봉, 정인기, 다른 제목: Steel Cold Winter

IMDb http://www.imdb.com/title/tt318065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3259

    • 예고편을 봤는데 의도적인건지 정말 렛미인이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기대하게 만드는 예고편이었어요.
    •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때, 파악되지 않았을 때 가장 매력적인' 건 거의 모든 영화에서 당연한 일인 거 같아요. 전, 이 영화 엄청 기대하고 있답니다 ㅠ ㅠ 여담인데 김윤혜양도 엄청 잘했겠지만, 요새 상속자들에 그딴(;;) 역으로 출현하고 있는 크리스탈이 이런 영화에 이런 역 좀 하면 좋겠어요 ㅠㅠ 에쎔 다큐멘터리 아이 엠은 감독이 있었던가요;;; 그냥 에쎔 내부 관계자가 대충 편집해서 개봉한 건 줄 알았는뎅 ㅎㅎ 전 그래비티보다 이 영화를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헤헤 로맨스와 살육이 적절하기 섞인 틴에이져들 얘기라니 흐미..
    • <점쟁이들> 이후로 김윤혜가 참 기대가 되더라구요. <넌 내게 반했어>와 같은 미지근한 드라마보다 자기 매력을 반짝반짝하게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것 같아 기쁩니다.
    • 영화를 보니 크리스탈이 어울릴 역은 아니더군요 ㅋㅋ 전 생각보다 진상이 괜찮았어요. 뭐 제가 미스테리의 답을 늘 거의 기대를 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정도면 챙길 건 다 챙긴 모범답안 같습니다. 주제의식이 멜로보다 훨씬 크더군요. 근데 결말이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한 사람이 저 뿐인지.. 에필로그가 줄줄 너무 길게 이어지더라구요 ;; 그리고 카타르시스는 여전히 좀 부족해요. 소녀 캐릭터는 끝까지 너무 수동적이고 약한 것도 아쉽구요. 이게 미국영화라면 소녀도 소년과 함께 폭발하지 않았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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