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스 투 줄리엣 Letters To Juliet (2010)


전 줄리엣의 비서를 자처하며 줄리엣 생가에 날아든 애정상담 팬레터에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별별 것들을 그 잡지를 통해 배웠지요. 그 때문에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탈리아 아줌마들을 보았을 때, 전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던 것입니다. 단지 그 동안 그 분들은 머릿수가 좀 늘고 영역도 전문화된 것 같더군요. 제가 읽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 꼭지에서 비서는 한 명 뿐이었는데. 


[레터스 투 줄리엣]은 줄리엣의 비서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동명의 논픽션 북에서 아이디어를 얻긴 했지만, 엄연한 기성품 극영화지요. 여기서 기성품이라는 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게 하나도 없어요. 초반 몇 십 분 동안 정보가 쌓이면, 관객들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떤 성격에, 어떤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끝날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예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대해 조금도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원래 그런 안전한 스토리 전개와 결말이니까요.


진짜 줄리엣의 비서들이 나오면 이탈리아 영화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영화는 소피라는 미국인 여성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뉴요커]에서 일하는 사실 확인 전문 기자인데, 언젠가 자기가 직접 글을 쓰고 싶어 하죠. 영화가 시작되면 소피는 요리사인 남자친구 빅터와 함께 신혼여행 비슷하게 이탈리아로 떠나는데, 연애보다 일에 열성인 빅터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그만 지치고 맙니다. 그러다 소피의 눈에 줄리엣의 비서들이 들어오고, 그들과 어울리다가 생가의 담벼락 틈 안에 50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클레어라는 영국 여성의 편지를 발견하게 돼요. 그 편지에 매료된 소피는 비서들의 동의하에 답장을 써서 보냅니다. 


여기서부터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까요? 답장을 받은 클레어는 당장 이탈리아로 날아옵니다. 그냥 와도 좋겠지만, 시니컬한 손자 찰리를 하나 달고요. 감동 먹은 소피는 클레어를 도와 그녀의 옛 사랑인 이탈리아인 남자친구 로렌조를 찾는 모험에 동참합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세팅이에요.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설명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영화는 이 고정된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영원한 로맨스의 환상이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관객들의 욕구를 최대한으로 만족시키려 노력하고, 그 과정을 불필요한 시니시즘이나 감상주의로 더럽히지 않죠. 여전히 진짜 인생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지만 요새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남발하는 값싼 접근법도 없습니다. [레터스 투 줄리엣]은 고객을 존중하는 성실한 영화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죠. 


캐스팅도 바람직합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예쁘고 명쾌하고 진솔하죠.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전작 [맘마미아!]의 캐릭터를 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맘마미아] 때도 느꼈지만, 이 사람은 중견 여성배우들과 호흡이 좋아요. 클레어 역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함께 서 있으면 비주얼부터 맞아 보입니다. 반짝이는 금색실과 은색실이 함께 말려 있는 느낌이랄까요. 두 배우가 같이 있는 장면에서는 두 세대가 서로의 연륜과 젊음을 흡수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 같았다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냥 평범했던) 남자 주인공들을 모두 빼버리고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집중해 다루었을 거고, 그랬다면 훨씬 ‘깊이 있고’ ‘좋은’ 영화가 나왔겠지요. 하지만 그런다면 정통 로맨스 영화를 만든다는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 될 테니, 지금의 선택도 이해가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환상적인 것은 로렌조의 캐스팅입니다. 프랑코 네로죠. 사실 전 한 동안 프랑코 네로의 존재도 까맣게 잊고 있었고 그에 대한 특별한 기억도 없지만, 일단 그가 막판에 짠하고 등장하니, 뭔가 아련하더라 이 말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그가 40년 전에 불같은 연애 끝에 맺어진 영국/이탈리아 배우 커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배우들의 사생활과 그에 대한 관객들의 추억이 영화에 진짜로 영향을 주는 겁니다. 최근 레드그레이브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일어났던 슬픈 일들을 생각하면 그 영향은 배가 되고요. 모두 영화 외적인 것이긴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만만치 않은 무게감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10/09/27)



기타등등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빅터가 자꾸 이탈리아 말을 하길래, 혹시 이 사람들이 빅터를 진짜로 이탈리아계로 만든 게 아닌가 걱정했었죠. 아니더군요. 다행스럽게도.


감독: Gary Winick, 출연: Amanda Seyfried, Vanessa Redgrave, Christopher Egan, Gael García Bernal, Franco Nero

 

IMDb http://www.imdb.com/title/tt089231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1273

    • [오타신고]

      여기서 기성품이라는 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앞 문장들에 '기성품'이란 단어가 없는데요?

      이 사람은 [뉴요커]에서 사실 확인 전문 기자인데 //'일하는' 정도의 말이 빠진 듯 합니다.
    • 모두 반영되었습니다.
    • 관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이긴 합니다. 반영했습니다.
    • /Djuna 아아아아악~!!! 너무해요.이거 엄연한 스포일러 아닌가요 ㅠㅠ
      예전 리뷰같으면야 캐스트명단이 젤 위에 있으니 페이지 펼쳐지자마자 알게됐겠지만...프랑코 네로가 나오는 줄 몰랐단 말이예요.
      극장가서 보는거 포기.아쉽네요 흑.
    • 오프닝 크레딧에 뜨는 이름까지 제가 어떻게 스포일러로 묶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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