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앤드류 데이비스 Andrew Davis

주연
마이클 더글러스....스티븐 테일러
Michael Douglas....Steven Taylor
기네스 팰트로....에밀리 브래드포드
Gwyneth Paltrow....Emily Bradford
비고 모르텐센....데이빗 쇼
Viggo Mortensen....David Shaw
데이빗 슈세....모하메드 카라만 형사
David Suchet....Det. Mohamed Karaman
사리타 초드후리...라켈 마르티네즈
Sarita Choudhury....Raquel Martinez

[스포일러가 조금 있으니까 유의하세요. 상관 없으신 분들은 쭈욱 아래로!]

1.

종종 악평은 영화의 양념 구실을 합니다. 기대를 잔뜩 낮추고 보았다가 영화가 그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죠. [퍼펙트 머더]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 영화도 그렇게까지 문제가 심각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꽤 괜찮게 보았습니다.

2.

물론 이 영화의 가장 불리한 점은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다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앤드류 데이비스 따위가 감히 '거장'의 작품을 건드렸으니 평론가들의 눈이 고울 리가 없죠.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히치콕의 이름에 그렇게 짓눌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오리지널, 또는 오리지널 희곡의 첫번째 각색인 [다이얼 M을 돌려라]가 그렇게 심각한 히치콕 영화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꽤 좋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다이얼 M을 돌려라]는 거의 취미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잽싸게 만든 오락과 같은 영화로, [이창]이나 [현기증]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진한 국물은 없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이야기를 덧칠하는 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며 그러는 게 신성모독도 아니죠.

앤드류 데이비스와 새 각색자들은 히치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단 두 가지 수법을 동원했습니다. 히치콕의 장난과도 같은 무표정한 분위기를 지운 뒤 헐리웃 액션 드릴러식 진지함을 도입했고(하긴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옛날이니 메이저 영화사에서 메이저 배우를 쓰고도 그렇게 가벼운 영화를 만들었지, 요새 분위기로는 어림없기 때문입니다) 원작의 플롯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비틀었습니다.

첫번째 수법은 이 영화를 '메이저'로 만들었습니다. 마이클 더글러스나 기네스 팰트로 같은 '큰' 배우들을 끌어들여서 '돈내고 볼 만한' 큰 영화로 보이게 한 거죠. 물론 그 결과 프레데릭 노트의 원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냉정한 지능게임은 사라졌지만, 뭐 꼭 그걸 노린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나아진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열쇠의 처리가 그래요. 에밀리가 열쇠로 첫번째 진상을 알아차리는 부분은, 명탐정 형사가 술술 해결해 버리는 원작보다 더 '영화적'일 수도 있습니다(누군가는 어떻게 부자 동네 아파트와 빈민굴의 열쇠가 같을 수가 있으냐고 했지만, 원래 빈민굴에서는 부자 동네만큼이나 좋은 자물쇠가 필요한 법입니다.)

두번째 수법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업데이트된 몇몇 설정은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특히 관객들이 [다이얼 M을 돌려라]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 더 효과가 큽니다. 사실 이 영화의 각본은 그런 관객들을 일차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다이얼 M을 돌려라]의 충실한 리메이크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이 당황할 부분이 상당히 되지요. 스티븐이 데이빗을 살인청부업자로 고용하는 부분이야 예고편에 나와 있으니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에밀리에게 살해당한 남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은 상당히 큰 뒤틀림입니다. 원작과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기대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서스펜스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런 뒤틀기는 후반부에서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데, 그건 전형적인 헐리웃 액션 영화식 폭발을 의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색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뒤틀기가 성공적이긴 했지만, 사실 그런 뒤틀기들마저도 프레데릭 노트의 원작에 의존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스토리가 노트의 원작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부터 영화는 맥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데이빗의 테입이 발견되는 부분은 너무나도 성의가 없어서 그 뒤에 일어나는 폭력 사태를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데이빗이나 에밀리만큼 영리한 사람들이 스티븐과 같은 위험한 남자 앞에서 자기 패를 다 펼치는 바보같은 짓을 할 거라고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순전히 돈과 탐욕만으로 얽혀있는 이 지저분한 인간관계를 구경하면서 9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해부 어쩌구로 몰고 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극 중에서 라켈도 말했지만, 그런 것들은 가장 오래된 살인 동기니까요. 과연 [퍼펙트 머더]가, 그런 '어쩌구'가 끼어들만큼 시대적 특화를 시킨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의 시대적 특수함을 그렇게 강조한다는 건 우리가 '현대'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4.

마이클 더글러스는 언제나 같습니다. 사실 너무나도 같아서 요새는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리즈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긴 더글러스가 그런 역에 아주 잘 맞기 때문에 그런 반복이 계속되는 것이겠지요. 운나쁜 아내를 연기하는 팰트로 역시 기술적으로 잘 되어있고 이미지도 맞으며 데이빗을 연기한 비고 모르텐센도 그럴싸합니다. 참, 데이빗 슈세(라고 발음합니다)가 아랍계 형사로 조금 나오는데, [미스터리!] 시리즈에서 그가 연기한 에르큘 포와로에 익숙한 분들은 그가 조금 더 많이 등장하기를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정말 그랬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98/10/19)

D&P

기타등등

에밀리의 친구인 라켈 역의 배우로 사리타 초드후리를 캐스팅한 걸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멀쩡한 인도 배우를 보고 히스페닉 계 여성을 연기하라고 하다니요. 저희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앤드류 데이비스가 지독하게 무심했거나 라켈의 뒤에 복잡한 가계보가 숨겨져 있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