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올리버 스톤 Oliver Stone

주연
콜린 패럴....알렉산드로스
Colin Farrell....Alexander
안젤리나 졸리....올림피아스
Angelina Jolie....Olympias
발 킬머....필립포스 2세
Val Kilmer....Philip
자레드 레토....헤파이스티온
Jared Leto....Hephaistion
안소니 홉킨즈....늙은 프톨레마이오스
Anthony Hopkins....Old Ptolemy
프란치스코 보쉬....바고스
Francisco Bosch....Bagoas
크리스토퍼 플러머....아리스토텔레스
Christopher Plummer....Aristotle
로자리오 도슨....록산
Rosario Dawson....Roxane
조나단 리스-마이어스....카산드로스
Jonathan Rhys-Meyers....Cassander
엘리엇 코원....프톨레마이오스
Elliot Cowan....Ptolemy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더

올리버 스톤이 [알렉산더]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저지른 가장 큰 죄는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건 지나치게 큰 기대를 품은 관객들의 잘못일지도 모르죠.

어느 쪽이건 [알렉산더]에 대한 혹평은 조금 일방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네, 이 영화는 분명 걸작은 아닙니다. 노골적인 계산 착오도 쉽게 눈에 들어오고요. 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들이 하품을 하며 몸부리치다 나올 영화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전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신나게 봤어요. 저만큼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을 꽤 많이 집어낼 수 있고요. 그 정도면 [알렉산더]에 대한 가장 큰 비판 중 하나인 '지루해서 미치겠다'는 절대적인 평가가 아닌 겁니다.

그래도 문제점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알렉산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올리버 스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남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걸까요? 스톤에 따르면 그는 동서양을 통합하는 거대한 꿈을 품은 젊은이입니다. 그는 당시 그리스의 기준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문화적 편견이 없는 개방된 젊은입니다. 그는 피에 굶주린 학살자이며 정복자입니다. 그는 JFK처럼 음모에 의해 희생된 영웅입니다. 그는 마더 컴플렉스와 죄의식에 시달리는 게이 청년입니다. 이 모든 건 이치에 맞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관점들을 통합해서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적어도 시도는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죠. 그 때문에 영화는 갈팡질팡하고 방황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거대함과 왜소함, 전인류를 위한 꿈과 째째한 이기주의가 멋대로 오가는 주제의 흐름 때문에 가장 기초적이어야 할 영화의 스케일까지 흔들리고 말아요.

영화에 극적인 재미가 떨어진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기 영화에서 치밀한 구조를 기대하는 건 어렵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조금 밋밋하죠. 초반에 건너 뛴 필리포스왕의 암살의 이야기가 후반에 등장하는 식으로 약간의 재주를 부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알렉산드로스의 고통스러운 정복의 여정을 우직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 끈기가 없는 관객들에겐 이 영화의 후반부가 거의 지옥과 같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여전히 흥미로운 부분이 더 많은 영화입니다. 일관성은 잠시 잊읍시다. 게이 햄릿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헨리 5세]와 같은 이 영화가 치밀하게 짜여진 무언가를 이야기해줄 거라는 기대는 잠시 잊자고요. 그렇게 보면 스톤이 영화를 통해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럴싸합니다. 위대함과 째째함이 멋대로 뒤섞여 있는 건 일관성있는 해석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별 것 아닌 것이 위대함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는 거죠. 사람들이 가장 먼저 기억하는 건 조건이나 성격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마더 컴플렉스에 찬 게이 청년이 세계사에 불멸의 흔적을 남긴 위대한 정복자가 될 수도 있지요. 스톤의 정신없는 스토리텔링은 머리 속에 세계를 뒤흔들만한 갈등과 열광을 품었던 한 젊은이를 묘사하는 데 오히려 더 적절한 도구일 수 있는 겁니다.

스톤의 비전이 실제의 알렉산드로스와 얼마나 일치할까요? 누가 알겠습니까? 수천 년 전의 일인 걸요. 플루타르코스가 자기만의 알렉산드로스 초상을 그렸다면 스톤도 그럴 수 있습니다. 사실 스톤은 그들보다 조금 더 과격하게 나갔지만 그 역시 이해할만한 일입니다. 그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 전기작가가 아니니까요. 그는 많은 이야기들을 삭제하고 또 그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스토리텔링의 흐름 속에 통합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알렉산드로스가 플루타르코스의 알렉산드로스보다 특별히 건성으로 묘사된 건 아닙니다. 그리스 변호사들이 소송을 건다며 을러대는 동성애 묘사도 그 정도면 사료에 충실한 거라 하겠습니다. 헤파이스티온과 바고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고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침대 속을 드나들었던 것도 거의 확실하고요. 스톤의 초상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가능한 하나의 초상인 겁니다.

스톤이 그린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가 고전적 사건들로 위장한 현대의 우화일 수 있을까요? 지금의 미국과 중동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국이 정복된 뒤 쫓겨다니다가 부하들에게 살해당하는 다리우스 3세의 초라한 운명을 보면 말이죠. 알렉산드로스와 필립포스를 둘러싼 암살의 음모론들은 엉뚱하게도 스톤 자신이 끝도 없이 다루었던 JFK 음모론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대일로 가능한 은유들을 사건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스톤의 이야기가 현대적으로 다가온다면 그건 고대의 사건들을 해석하는 스톤이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리는 알렉산드로스를 지금의 부시나 네오콘들 또는 JFK와 연결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입니다. 그건 스톤이 알렉산드로스를 단순한 몽상가나 정복자로 그렸다는 해석만큼이나 단순하죠. 차라리 둘 중 하나로 분명하게 묘사했다면 오히려 영화의 평판이 더 높아졌겠지만 말입니다.

스톤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검토해보면 [알렉산더]는 그렇게까지 예외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거대한 주제를 직설적이고 야심차게 밀고 나가는 스톤의 특성이 이 영화에서도 발견됩니다(이 경우엔 그 우직스러움이 지나쳐서 종종 바보스럽게까지 보이긴 하지만요.) 그의 테크닉도 시들지 않아서, 몇몇 전투 장면들 특히 초반의 가우가멜라 전투나 후반부의 인도의 마지막 전투와 같은 건 따로 떼어놓고 보면 피로 떡칠한 걸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야 알렉산드로스의 동성애적 측면을 조금 더 깊이 다루기를 바랐지만 (바고스와 키스신 한 번은 좀 약했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할만큼 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얼마나 나오건 이 영화가 마더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게이 청년의 성장기라는 건 자명하니까요. 영화에 철철 넘쳐나는 캠피한 분위기가 고전 사극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인지, 아니면 스톤의 우직함이 지나치게 반영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의도적인지에 대해서도 쉽게 답변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콜린 패럴과 거의 동갑인 안젤리나 졸리를 올림피아스로 캐스팅한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합니다. AMP의 [백조의 호수]에서 왕비가 결코 나이를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실제 나이가 어떻건 언제나 젊고 강렬한 어린 시절의 이미지로 남아 아들을 억누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 말입니다. 지독하게 캠피한 그 결과물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아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알렉산더]는 실패작입니다. 스톤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도 실패했고, 예술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실패했고,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영화를 만드는 데도 실패했으며, 관객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무 것도 이루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소재에 썩 어울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영화는 알렉산드로스가 졸속으로 만든 제국처럼 삐걱거리고 흔들리며 균열로 가득하지만 여전히 거대한 야심의 산물이며 그 자체로도 장관입니다. 늙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영화 후반에 내뱉는 외침은 이 영화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을 거예요. 실패작일 수는 있지만 이 정도면 아주 거창한 실패작이 아닙니까? (05/01/07)

DJUNA

기타등등

[알렉산더]의 실패가 분명해지자 스톤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If I could go back, I'd have put events in linear order and limited the voiceovers. I'd have gotten the film to two hours and taken out the homosexuality for the U.S. market and for countries sensitive to such things, like Korea or Greece." 그가 그렇게 염려한 한국에서 이 영화가 첫주 흥행 1위를 차지했다는 말을 들으면 스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