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바즈 루어만 Baz Luhrmann

주연
니콜 키드먼....레이디 사라 애슐리
Nicole Kidman....Lady Sarah Ashley
휴 잭맨....몰이꾼
Hugh Jackman....Drover
브랜든 월터스....눌라
Brandon Walters....Nullah
데이빗 웬햄....닐 플레처
David Wenham....Neil Fletcher
브라이언 브라운....킹 카니
Bryan Brown....King Carney
잭 톰슨....키플링 플린
Jack Thompson....Kipling Flynn
벤 멘델슨....더튼 대위
Ben Mendelsohn....Captain Dutton
데이빗 걸필릴....킹 조지
David Gulpilil....King George

눌라

바즈 루어만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만드는 동안 무슨 영화를 머릿속에 담고 있었는지 짐작갑니다. 5,6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만들어졌던 와이드스크린 대하 멜로드라마였겠죠. 2부로 나뉘어져 있고 중간에 한 번 휴식시간이 있어서 관객들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뜰 수 있는. 1부와 2부를 전혀 다른 장르로 만드는 것도 그에겐 해볼 만한 아이디어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두 장르 모두 복고풍이에요. 1부는 수정주의 서부극에 가깝고 2부는 2차 세계대전 전쟁영화니까요.

영화의 주인공은 사라 애슐리라는 영국 귀족입니다. 전통 서부극에서는 ‘동부 여자’ 역할이지요. 사라는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러 영국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오지만 남편은 이미 살해당한 뒤였죠. 그냥 소와 목장을 팔고 영국으로 돌아가면 되었건만, 오기가 생긴 사라는 소들을 끌고 다윈으로 가서 연합군에 직접 팔기로 결정합니다. 여기서 사라를 돕는 건 ‘몰이꾼’이라는 별명으로만 불리는 무뚝뚝한 남자로 그는 ‘터프한 서부의 카우보이’ 역할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건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소년 눌라인데, 이 아이는 당연히 아메리칸 원주민 역할을 합니다.

웬만한 영화 한편의 러닝타임을 소비하며 1부가 끝나면 휴식시간 없이 2부가 시작됩니다. 원주민 혼혈 아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정책 때문에 눌라는 섬으로 끌려가며 연인이 된 사라와 몰이꾼의 관계는 위기를 맞으며, 이웃의 사악한 목장주는 여전히 사라의 목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마치 진주만을 다룬 전쟁영화들이 그렇듯,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되고 이들은 장대하고 멜로드라마틱한 결말을 맺습니다.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 두 장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역사를 신화화하는 할리우드 장르지요. 어떻게든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를 영화적으로 예찬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 동원한 도구들이 몽땅 할리우드에서 가져온 것이죠. 심지어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를 오스트레일리아를 예찬하는 찬가로 쓰기도 합니다. ‘오즈’=‘오스트레일리아’.

그 예찬이 긍정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국가가 아닙니다. 원주민들을 학대하고 인종차별을 일삼는 백인 식민자들의 나라죠. 영화의 내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원주민들을 유린하고 혼혈 아이들을 분리 수용하는 끔찍한 정책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내용도 개인의 차원에서나마 국가의 원죄를 대속하려는 선한 사람들의 속죄담입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표준적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라는 영국인이고 몰이꾼은 원주민과 어울린다고 따돌림 당하는 국외자죠.

그러나 이게 그렇게 진실 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우린 이 소재를 다룬 보다 더 진실하고 강렬한 영화들을 봤어요. 이미 [토끼 울타리]와 [워크어바웃] 같은 영화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에 비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타협적이고 물렁물렁합니다. 아무리 국가의 죄를 속죄하려 해도 결국 이 이야기는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이 나오는 뜨거운 로맨스 영화인 걸요. 중간에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영화의 결말 역시 개인의 희생으로 국가의 죄를 얼렁뚱땅 커버하려는 느낌이 있고요. 영화가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화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60년대 수정주의 서부극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60년대 사람들이야 당시 시대에 갇혀 있었으니 그러려니 합니다만, 2000년대에도 계속 그러면 곤란하지요.

영화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런 영화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사실적이고 야만적인 자연 공간이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당연히 이런 세계는 생생한 날 느낌으로 그려져야 할 것이고요. 하지만 루어만이 이 이야기를 다루자 그의 장식적이고 호사스러운 스타일이 개입됩니다. 예상 외로 세트 촬영이나 기교적인 특수효과도 많고요. 감독의 일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건 반갑지만 과연 이 스타일이 소재와 맞는 건지?

이야기의 균형 역시 이상적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 1부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괜찮은 서부극으로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주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결말이 맺어지는 2부는 에필로그치고는 지나치게 길고 2부치고는 지나치게 짧습니다. 속죄치고는 지나치게 자기도취에 빠져 있고, 멜로드라마의 결말치고는 이야기가 충분치 못하지요. 화려한 역사 멜로드라마 대작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 이야기와 주제의 발목을 잡아요.

전 그래도 이 영화에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하렵니다.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은 이런 대하 드라마를 별 무리 없이 끌어갈만한 좋은 스타들이고, 둘은 궁합도 좋아요. 눌라를 연기하는 브랜든 월터스는 예쁘고 매력적이지요. 군데군데 감동적이거나 재미있는 장면들도 있고요. 지루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전 장황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맞아, 이런 영화를 만들던 때가 있었지!”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봤어요. 하지만 이 개별요소들이 하나의 좋은 영화를 만들기엔 불순물과 방해물들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08/12/11)

DJUNA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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