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페이튼 리드 Peyton Reed

주연
키어스틴 던스트....토랜스 쉽먼
Kirsten Dunst....Torrance Shipman
일라이자 두쉬쿠....미시 팬튼
Eliza Dushku....Missy Pantone
제시 브래드포드....클리프 팬튼
Jesse Bradford....Cliff Pantone
가브리엘 유니언....아이시스
Gabrielle Union....Isis
클레어 크레이머....코트니
Clare Kramer....Courtney
니콜 빌더백....휘트니
Nicole Bilderback....Whitney
치아니나 조엘슨....다시
Tsianina Joelson....Darcy
리니 벨....케이시
Rini Bell....Kasey
네이산 웨스트...잰
Nathan West....Jan
헌틀리 리터....레스
Huntley Ritter....Les
샤마리 피어스....라바
Shamari Fears....Lava
나티나 리드....제넬로프
Natina Reed....Jenelope
브랜디 윌리엄즈....라프레드
Brandi Williams....LaFred
린지 슬론....빅 레드
Lindsay Sloane....Big Red
리처드 힐먼....애런
Richard Hillman....Aaron

듀나 [브링 잇 온]의 주인공들은 치어리더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치어리더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은 극히 희귀하지 않습니까? 치어리더들은 대부분 남자 주인공들의 성적 환상의 대상이거나 여자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성미 고약한 조역들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을 진지하게 다룬 작품들은 거의 없었지요.

파프리카 실속이 없어 보이니까요. 연애물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엔 너무 화려하고, 치어리더 자체를 내세우자니 축구 선수들의 조역에 불과하고요.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인걸]의 감독 제이미 배비트가 투덜거렸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축구 선수들이 장학금을 받고 수십만 달러에 팔려가는 동안 치어리더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들러리나 해주고 있다고요.

듀나 맞는 말이겠죠. 하지만 일단 사람들이 모이고 평가 기준이 서기 시작하면 들러리도 언젠가는 주인공이 되기 마련입니다. 패션 모델이나 백 댄서, 영화음악 작곡가 같은 사람들을 보세요.

그렇다면 치어리더들도 자기 일만으로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난이도를 측정할 수 있을만큼 고단위의 테크닉이 존재하며 그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큼 화려하기도 하잖아요.

[브링 잇 온]의 최대 공헌은 스포츠로서의 치어리딩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습니다. 결코 주인공들은 아니었지만, 치어리더들이 나오는 영화들의 수가 그래도 상당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너무 늦은 감이 있죠.

파프리카 이 영화의 설정 역시 치어리더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주인공들이 속해 있는 고등학교는 치어리더들로 유명하지만 정작 미식 축구는 형편 없죠. 어떻게 그런 형편없는 팀을 응원하면서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듀나 오히려 팀이 형편없기 때문에 치어리더들이 더 기가 살았을지도 모르죠. 적어도 같은 학교에서는 치어리더들이 더 튈테니까요.

파프리카 그래도 남자 치어리더들은 여전히 미식축구 선수들에게 놀림을 당하잖아요.

듀나 남자 치어리더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도 이 영화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한데요. 지금까지 그들은 할리우드 틴에이저 영화 세계에서 존재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동네 사람들은 그게 남자들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전 '계집애 같은 짓'을 하는 남자들에게 일종의 존경심을 품고 있답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억압'을 고려하면 오히려 그들은 '미식축구선수들'보다 더 용감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요.

남자 치어리더들에게 쏟아지는 또다른 야유는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비중있는 남자 치어리더들은 레스와 잰인데, 레스는 동성애자지만 잰은 아닙니다.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다니는 걸 보면 꽤 흐뭇해보여요.

파프리카 새로 들어온 치어리더 미시도 처음에는 레즈비언으로 의심받지요.

듀나 미시가 동성애자인가 아닌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동성애자일 수도 있죠. 많은 게이 관객들은 미시한테서 전형적인 레즈비언식 어투나 습관들을 찾아냈습니다.

파프리카 치어리더의 역할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하게 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듀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모든 면들을 다 보여주었던 것이겠죠. 아무리 치어리더가 스포츠라고 해도 역할은 여전히 들러리이며 그들의 위치에는 성차별적인 면이 녹아 있습니다. 어느 한 쪽만 보여준다면 솔직하지 못한 태도겠지요. 영화는 치어리더들의 위치를 인정하면서 우리가 아직까지 몰랐던 긍정적인 면을 추가하고 있는 듯 합니다.

파프리카 우리의 주인공인 토로스 팀도 생각만큼 단순하지는 않군요. 이들은 결코 전형적인 주인공들이 아닙니다. 보통 영화에서는 악역을 맡았을 사람들이죠. 이들은 거의 백인들로 구성된 중상계급의 샌디애고 교외 사람들이고 이들과 대결하는 사람들은 거의 흑인들로 구성된 LA 빈민가 출신 사람들이에요. 토로스 애들은 종종 거북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우월주의를 보여주기도 하죠. 자기네보다 떨어지는 동네 출신 치어리더들에게 토로스 팀이 "너네들은 결국 주유소에서나 일하게 될 걸!"이라고 놀려댈 때는 정말 보기 싫기까지 했어요.

듀나 사실 이런 위치는 영화에서 꽤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브링 잇 온]은 종교적 갱생담에 가까운 작품이거든요. 토로스 팀들이 티 하나 없는 사람들이라면 스토리 전개에 문제가 있죠.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죠. 토로스 팀은 전국 치어리더 대회에서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치어리더 팀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졸업하는 빨강 머리 캡틴의 뒤를 이어 주인공 토랜스가 새 캡틴이 됩니다. 하지만 첫날부터 단원 한 명이 사고로 부상을 입자 새 단원을 뽑을 수밖에 없죠. 새로 뽑힌 단원은 전학 온 미시인데, 그녀는 토로스 팀의 치어리더 루틴이 이스트브룩 고등학교 치어리더 팀인 클로버즈의 것을 그대로 훔쳐왔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토랜스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마무리 짓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야 합니다.

파프리카 우리들 중 누군가가 아주 쉽게 매료되는 '원죄'와 '죄의 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클로버즈의 치어리더 루틴을 훔친 사람은 빨강 머리 캡틴이죠. 다른 사람들은 죄가 없습니다.

듀나 네, 맞아요. 토랜스는 말 그대로 전임자 '빨강 머리'의 죄를 뒤집어 쓴 것입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토랜스는 '속죄'를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닙니다. 영화의 진짜 드라마는 초반에는 미적거렸던 토랜스가 적극적으로 '속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충 보면 발전의 단계가 보이지요. 처음에 그녀는 무시하려 합니다. 그러나 클로버즈가 출전한다는 걸 알자, 돈으로 안무가를 고용해 새 루틴을 만들려 하죠. 그게 먹히지 않자 그녀는 클로버즈를 경제적으로 도와주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지요. 결국 스포츠 영화니까요. :-)

파프리카 진짜 속죄할 생각이었다면 이전 루틴들도 훔친 것이라는 걸 공개적으로 발표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토로스 애들은 건망증이 좀 심한 것 같아요.

듀나 그랬다면 출전도 할 수 없었겠지요. 어떻게 되든 출전을 시켜야 이야기가 될테니까요. 게다가 늘 토랜스를 무정하게 대하는 클로버즈 팀의 캡틴 아이시스가 생각 외로 관대해요. 그쪽에서 매스컴에 폭로하는 방법도 있었을텐데도 과거를 잊고 정면 대결을 하려 하잖아요. 토랜스는 운이 좋았어요. 정말 좋은 상대를 만났으니까요.

파프리카 이야기가 참 많군요. 기독교적 갱생담에, 계급 갈등에, 인종 차별에, 동성애 공포증에...

듀나 주제가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될 정도죠. 사실 영화는 이들 모두를 다 소화해내지 못합니다. 다 정리하려면 주어진 러닝 타임의 두 배는 필요했어요.

파프리카 그걸 다 소화해냈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았을까요? 이 영화는 치어리더 버전 [일렉션]이 아닙니다. 진짜 핵심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치어리딩 자체에 있잖아요.

듀나 네, 맞아요. 기술적인 화려함도 대단하지만, 정말로 대단한 것은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입니다. 정말 화면이 날아갈 정도로 흥겨워요.

파프리카 키어스틴 던스트의 연기도 영화에 화끈한 무언가를 더해줍니다. 던스트는 훌륭한 코미디언이고 자신의 그런 재능을 폭발시키듯 쏟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듀나 미시 역의 일라이저 두쉬쿠 역시 맘에 들어요. 그런데 이 캐릭터는 두쉬쿠가 전에 [버피]에서 연기했던 페이스를 그대로 따온 것 같지 않아요?

파프리카 도덕적인 면을 본다면 정반대죠. [버피]에서는 버피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쪽이고 페이스가 갈팡질팡하는 쪽이지만, [브링 잇 온]에서는 미시가 우월한 쪽이고 토랜스가 갈팡질팡하는 쪽이잖아요.

듀나 그것만 빼면 상당히 닮은 편이 아닌가요? 터프한 브루넷 이방인이 금발머리 주인공과 친구가 되고 둘이 복잡한 감정을 나눈다는 것 말이에요. 도덕적인 면을 빼면 둘의 성격도 비슷한 편입니다.

파프리카 토랜스의 남자 친구로 나오는 미시의 오빠 클리프는... 모르겠어요. 요샌 주인공 '남자 친구'들의 이미지가 고정된 것 같아요. 까만 곱슬 머리에 곰인형처럼 귀여운 친구들 말이에요. 최근에 본 'chick flick'의 대부분이 이런 남자 친구를 장신구로 달고 다녔죠.

듀나 페이튼 리드의 연출과 제시카 벤딩거의 각본이 아주 일치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아마 벤딩거가 심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리드가 여자 주인공들의 옷을 벗겨놓고 즐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요.

파프리카 아까는 그게 솔직한 것이라면서요?

듀나 솔직히 보여주는 것과 몰래 즐기는 것은 아주 같지 않죠. 그러나 리드를 아주 비난하고 싶지는 않군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에너지와 열정은 분명 리드의 연출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흥겹고 즐거웠으며 맘에 드는 영화였어요. (00/12/05)

D&P

기타등등

토랜스와 클리프의 이닦기 장면은 올해 본 '꼬시기' 장면들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