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발 비행기

비행기는 조금 별난 운송 기관입니다. 다른 탈것들과는 달리 출발할 때와 도착할 때 가장 위험하니까요. 비행기 사고의 대부분은 이륙할 때나 착륙할 때 일어납니다. 다른 탈것들과는 달리 비행기는 멈춰 세우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도움을 얻는 것도 쉽지 않고요. 경비행기라면 조종사만 낙하산을 타고 달아나면 되겠지만 뒤에 200명의 승객들을 달고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사실을 이야기의 도구로 써먹은 최초의 인물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일발 비행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유행시킨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스릴러 작가인 아서 헤일리였습니다. 그가 각본을 쓴 56년도작 텔레비전 드라마 [Flight Into Danger]와 그 다음 해에 리메이크 된 영화 [Zero Hour]에서 헤일리는, 승무원들이 모두 식중독에 걸리자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종간을 잡는 2차 세계 대전 전쟁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물론 그냥 무사 착륙하면 곤란하니, 그에게 심각한 정신적 상흔이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고요.

헤일리는 소설가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비행기와 위기 일발 착륙의 소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베스트셀러 [에어포트]는 폭발 사고로 위태위태한 비행기를 착륙시키려는 승무원들과 공항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으니까요. 이 작품은 곧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 뒤로 수많은 속편들이 나와 위기 일발 비행기를 다루었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비행기가 경비행기와 충돌했고, 어떤 영화에서는 버뮤다 트라이앵글에서 추락했지만, 설정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관객들은 슬슬 지겨워질 지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장르가 될만큼 이야기의 폭이 넓은 설정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 마지막 못을 박은 영화는 바로 ZAZ 사단의 [에어플레인]이었습니다. [Zero Hour]에서 주인공 이름에서부터 핵심 대사 하나하나까지 훔쳐온 이 말도 안되는 영화는 미래에 나온 모든 위기일발 비행기의 설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여전히 커다란 비행기의 충돌은 구경거리였으니까요. 최근 나온 영화들 중에서는 [콘에어], [에어 포스 원], [화이널 디시전] 같은 영화들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상당히 많은 영화들이 막판에 비전문가가 조종간을 잡고 비행장에 착륙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요. 여전히 박진감 넘치지만 그래도 보면서 괜히 싱거운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수도 없습니다. [에어플레인]의 영향이 아직도 그렇게 센 거예요.

얼마 전에 케이블에서 본 [에어스피드]라는 저예산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승무원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있고 비행기의 유일한 희망은 틴에이저 여자 아이 하나더군요. 당연히 얼굴도 모르는 공항 직원이 그 아이와 비행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고요. 보면서 어쩜 저렇게 장르 클리셰를 용감하게 따라갈 수 있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02/09/0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