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식 균형잡기

지금까지 할리우드가 사용한 장르 도구나 소재는 모두 그렇게까지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세계의 반영입니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들 중 상당수는 21세기 초의 관객들에게 풀면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요. 만약 존 포드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골적인 원주민 묘사를 넣는다면 미국 원주민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반 관객들도 불편해 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남부를 다룬 역사물을 만든다고 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뻔뻔스러운 인종적 편견(그것도 제작자가 당시 분위기를 고려해서 원작의 묘사를 축소한 것인데도!)을 부여하면 욕만 바가지로 먹고 투자한 돈도 몽땅 날릴지 몰라요.

'할리우드식 균형잡기'란 옛 도구들을 재활용하면서도 정치적 공정성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리우드가 취하는 편법입니다. 물론 이건 얄팍한 속임수입니다. 깊이 있는 성찰이라면 이 사전에 오를 이유도 없겠지요.

가장 뻔뻔스러운 예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패트리어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미국 독립이 노예제의 유지와 인종차별의 유산을 남겼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지만 흑인 노예 이야기를 안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해결책은? 독립을 위해 1년 복무를 마치고 자유를 얻으려는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삽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성실한 남자는 복무를 마치고 자유를 얻은 뒤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갑니다. 자유인의 나라에 대해 거창한 연설을 하면서요.

[패트리어트]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이런 식의 균형잡기를 시도합니다. 만약 흑인이 악당인 영화가 나온다면 백인 주인공의 동료들 중 흑인이 한 명 섞여 있을 겁니다. [트루 라이즈]에서처럼 아랍 테러리스트가 악당이라면 주인공의 동료들 중 중근동계가 한 명 섞여 있을 겁니다. 이러면서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거죠. "봐요,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요!" 물론 이런 균형잡기는 점점 다인종으로 변해가는 할리우드 영화 관객들에게 접근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스타 트렉: 딥 스페이스 나인]에서는 이런 술수에 대해 고백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딥 스페이스 나인엔 60년대의 미국을 재구성한 홀로덱이 하나 있는데, 주인공들은 그 안에서 가수로 일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오션즈 일레븐]식 한탕을 벌이기로 합니다. 하지만 시스코 함장은 그게 영 못마땅합니다. 모든 인종과 외계인들에게 친절하기 짝이 없는 그 60년대의 미국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 어디에 당시를 뜨겁게 달구었던 인종 차별과 인권 운동의 흔적이 있습니까?

에피소드 끝에 시스코는 결국 동료들과 함께 친구 가수를 구하러 갑니다. 하지만 의식있는 프로그램들이 살고 있는 홀로덱은 결코 영화와 같지는 않겠지요. 우리는 시스코처럼 양보할 필요없습니다. 할리우드 역시 언젠가는 이보다 나은 술수를 마련해야 할 거고요. (04/03/08)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