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지우

주연
김정은....조인영 (30세)
이태성....이석/이수
정유미....조인영 (17세)
김영재....오정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영

[사랑니]의 주인공 조인영은 하나만 꺼내도 16부작 미니 시리즈를 끌어갈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설정 두 개와 맞섭니다. 제1번 설정에서 서른 살 학원 교사인 인영은 어렸을 때 짝사랑했던 대상과 똑같이 생긴 제자 이석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번갈아 진행되는 제2번 설정에서 17살의 인영은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 이수의 쌍둥이 형제인 이석에게 조금씩 끌리지만 자신의 감정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 극단적으로 통속적인 설정은 기만적입니다. [사랑니]는 그렇게 정직한 영화가 아닙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17살 제자를 사랑했네'나 '죽은 짝사랑 상대의 쌍둥이 형제를 사랑했네'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줄거리와 얽혀 있어서 대체 가능한 다른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찾기는 조금 어렵지만 꼭 필수적이지는 않죠.

이 영화에서 진짜로 재미있는 건 이 두 멜로드라마들을 얽는 서술 방식입니다. 얼핏 보기에 두 번째 스토리는 서른 살 인영의 회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중반으로 넘어가면 그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지요. 두 번째 이야기의 인영은 첫 번째 이야기의 인영이 아니라 지금의 이석을 사랑하는 현재의 소녀입니다. 서른 살의 인영과 주변 사람들이 십여 년 전에 겪었던 일들이 똑같은 이름들을 가진 아이들에 의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히 말할 수는 없어요. 몇몇 단서들이 있긴 해요. 그래도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럴싸한 문장들을 만들어 주제를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랑니]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그 서술방식이 주는 쾌감 자체입니다. 영화는 재치있게 작곡된 카논과 같아요.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이치에 맞는 논리와 주제를 끄집어내려 한다면 오히려 이야기의 음악적 재미를 망치게 될 겁니다. 영화 자체도 축소될 거고요.

그렇다고 이 작품이 경쾌한 형식실험만 의도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인 주인공을 내세워 그 캐릭터의 주관적인 내면세계를 그려보이는 것이죠. 그 내면세계는 무엇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의 주체가 그 여자 주인공이라는 거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여자 주인공의 몽상의 재료 이상은 아닙니다. 너무나 흐릿해서 종종 이름과 육체까지 뒤섞일 지경이죠. 기자 간담회 때, 누군가가 이태성에게 "자신이 몇 명을 연기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은 것도 이해가 됩니다. 내용보다는 주체의 위치에 더 치중하는 이러한 태도는 정지우 감독과 페미니스트 관객/비평가들 사이에 지난 몇 년 동안 진행되었던 애증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니]는 쿨한 영화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쿨해지려고 작정한 영화지요. 심지어 영화 중간에 술에 취한 캐릭터 한 명이 이렇게 외치기까지 합니다. "아, 나도 쿨하게 살고 싶다!" [와니와 준하]의 주인공들이 그런 것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들도 속되고 유행에 뒤진 세상의 졸렬함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심지어 선생과 제자가 섹스를 한 상황이고 주변 사람들이 그걸 다 알고 있는데도 지저분하고 유치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쁜 일은 아닙니다. 이런 '쿨'함에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요. 그런데 그에 대해서는 [와니와 준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미 다 이야기했습니다. 영화가 다르다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05/09/21)

DJUNA

기타등등

혹시 [P.S.]를 보신 분 계신가요? [사랑니]와 설정이 꽤 비슷한데, 내용이 얼마나 닮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