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폴 앤더슨 Paul Anderson

주연
로렌스 피시번....밀러 선장
Laurence Fishburne....Captain Miller
샘 닐....윌리엄 위어 박사
Sam Neill....Dr. William Weir
캐슬린 퀸란....피터즈
Kathleen Quinlan....Peters
조엘리 리처드슨....스타크 중위
Joely Richardson....Lt. Starck
리처드 T. 존스....쿠퍼
Richard T. Jones....Cooper
잭 노즈워시....저스틴
Jack Noseworthy.... Justin
제이슨 아이작스....D.J
Jason Isaacs....D.J
숀 퍼트위....스미스
Sean Pertwee....Smith
피처 마린커....킬팩
Peter Marinker....Kilpack
홀리 찬트....클레어
Holley Chant....Claire
바클리 라이트....데니
Barclay Wright....Denny

1.

스테이션 창문 너머로 우주식을 먹고 있는 샘 닐의 모습이 거꾸로 보입니다. 그런데 암만 봐도 원심력을 만들기 위한 회전 장치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겨우 2047년이라는데 벌써 중력이 정복된 것일까요? 그렇다는군요. 하긴 과학의 발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에서 과학적 디테일이 미약한 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배우들의 연기 문제도 있고 하니 인공 중력은 그냥 봐주고 넘어갑시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기능이 정지된 우주선이 해왕성의 대기 안에서 고도를 잃지 않고 떠 있을 수 있을까요? 중력이 정복되었다니 그냥 1G로 기내 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텐데 30G의 가속을 걱정해서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물탱크 안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0G까지 낼 수 있다면 이미 아광속은 뚫을 수 있는 단계일텐데 왜 아직도 그냥 태양계 안에서만 돌고 있을까요.

2.

지금까지 한 건 다 쓸데없는 불평입니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하드 SF가 아니라 SF 배경을 빌려온 호러 영화니까요. 따지고 보면 [에일리언]도 그런 영화였지요.

그러나 [이벤트 호라이즌]은 보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우주선이 워프를 해서 다른 차원으로 갔는데 아뿔싸, 그곳이 지옥이었네요. 하하.

사실, 이 아이디어까지도 봐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희는 워프해서 지옥에 간 우주선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 없습니다. 잘만 조화된다면 SF 요소와 오컬트 요소가 결합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3.

하지만 [이벤트 호라이즌]은 그 아이디어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않습니다. '지옥을 끌어왔다!'로 폼을 잡은 건 좋은데 그걸 어떻게 구체화 해야할 지 자기네도 모르는 거죠.

영화는 호러 장면들을 늘어놓기만 할 뿐 핵심을 잡지 못합니다. 우리는 루이스 앤 클라크 호의 승무원들이 기억에 얽매어 괴로워하는 것을 봅니다만 그것들은 모두 종이 한 장의 얇은 두께로 묘사될 뿐입니다.

효과적인 호러물은 캐릭터의 뱃속까지 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루이스 앤 클라크의 선원들은 공포에 질리기 위해 급조된 인스턴트처럼 보입니다.

4.

위어 박사가 갑자기 핀없는 핀헤드로 변신하면서 [이벤트 호라이즌]은 [헬레이저]의 우주판으로 전환합니다. 지나치게 노골적이지만 뭐 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을 이루어야 할 위어의 연설은 재미가 없고 너무 평이하며 형이상학적으로도 미심쩍습니다. 차원 저쪽에 있는 것이 '카오스'라면 어떻게 그것이 '지옥'이나 '순수악'이 될 수 있을까요.

적어도 클라이브 바커는 똥폼잡은 거창한 장광설을 만들어 내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어 박사의 연설은 내용의 부실함을 감추기엔 너무나도 건조하고 시적인 요소가 모자랍니다.

5.

각본가 필립 아이스너는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워프 우주선의 이름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으로 다시 생각해본다면... 글쎄요... 개념상 어딘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시각적 인상은 꽤 괜찮습니다. 조셉 베넷이 디자인한 [이벤트 호라이즌]호의 내부는 적절하게 밀실공포증을 일으키면서도 중세적인 음습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를 찍어내는 아드리안 비들의 카메라도 [에일리언]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근사합니다. 조엘리 리처드슨이나 로렌스 피시번, 캐슬린 퀸란 같은 배우들도 언제나처럼 자신의 기본기를 보여줍니다. 음침한 고딕 분위기와 적당한 호러 충격을 즐기려고 간다면 별로 손해볼 영화도 아닙니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다소 게으른 호러 영화입니다. 별로 엄청나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하나 건졌다고 방만해져 구식 트릭을 생각없이 따라갔으니 그런 결과에 도달하는 건 당연하죠. (97/10/04)

D&P

기타등등

환풍이 안돼 산소가 부족한 극장에서 더위에 시달리며 본 영화였습니다. 극장측의 의도적인 배려가 아니었나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