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티븐 엘리엇 Stephan Elliott

주연
유안 맥그리거....'아이'
Ewan McGregor....Eye
애슐리 저드....조애너 에리스
Ashley Judd....Joanna Eris
k.d. 랭....힐러리
k.d. lang....Hilary
패트릭 버긴....알렉스
Patrick Bergin....Alex
제이슨 프리슬리....게리
Jason Priestley....Gary
주느비에브 비졸드....브로 박사
Geneviève Bujold....Dr. Brault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1.

미국 주재 영국 대사관의 첩보원인 '아이'는 아내와 딸이 떠나버린 뒤로 컴퓨터와 카메라 속에 자신을 숨겨버린 남자입니다. 어느날 그는 아빠의 예금을 몰래 빼낸 상관의 아들을 미행하다가 그가 신원불명의 여자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말아요. 그녀의 연쇄 살인을 따라가면서 점점 그 여자에게 끌리기 시작한 '아이'는 수호천사처럼 그녀를 위험에서 구해주기 시작하고....

2.

[아이 오브 비홀더]는 80년대 초에 나온 마크 벰의 추리소설이 원작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절판되었지만 이번 가을 미국 개봉과 함께 복간된답니다. 프랑스에서는 번역본이 아직 팔리고 있을 거고요.

사실 프랑스에서는 83년에 클로드 밀레가 [Mortelle randonnée]라는 제목으로 이미 영화화한 적도 있어요. 당시 '아이' 역은 미셸 세로가, 카트린느(이 영화의 조애너)는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했습니다.

원작에서 '아이'는 사립탐정이고 '아이'의 추적도 10년을 넘기는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다지만 영화에서 '아이'는 영국 스파이고 (유안 맥그리거의 악센트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겠지요) 추적 기간도 짧아졌습니다. 그밖에 어떤 게 더 달라졌을까요? 글쎄, 잘 모르겠군요. 확인하려면 복간을 기다려봐야겠지요 :-)

3.

무척 히치콕적인 영화지요. [아이 오브 비홀더]는 이 응큼한 뚱보 영감이 심심할 때마다 하나둘씩 끄집어내 자기 영화에 쑤셔넣었던 온갖 다양한 페티시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이'가 가는 길은 이미 [버티고]와 [이창]의 제임스 스튜어트와 [마니]의 숀 코너리가 걸어갔던 길입니다. 아이는 [버티고]의 주인공처럼 약간 맛이 간 수사관이고 [버티고]와 [이창]의 주인공처럼 관음증에 미쳐 있으며 [마니]의 남자 주인공처럼 범죄자가 분명한 여자에게 집착합니다.

이 맛간 친구가 하는 짓은 그 어느 것도 똑바른 게 없습니다. 그가 영화 전체를 통해 하는 행동은 모두 조애너를 대상으로 한 긴 자위행위입니다. 그는 조애너가 좋아하는 담배를 피우고 조애너가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몰래 카메라로 조애너를 관찰합니다. 심지어 그는 조애너에게 살해당한 다른 남자들처럼 조애너의 총에 맞고 싶어하기까지 합니다! (조애너가 '아이'를 총으로 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섹스에 가까운 장면입니다.)

몇 안되는 조애너와의 접촉도 관음증의 긴 연장입니다. 대부분 조애너가 정신을 잃고 있을 때나 잠들었을 때 일어나니까요. 잠든 조애너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아이'의 행동은 무척 로맨틱하게 보이지만 사실 피핑탐식 겁탈이나 다름없죠. 후반부의 직접 접촉 때도 '아이'는 결코 자신의 입지를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직접 고백하는 대신 조애너의 근처에서 빙빙 돌며 서글픈 게임을 이어갑니다.

[아이 오브 비홀더]는 무척 로맨틱한 영화지만 그만큼이나 노골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페티시스트들을 위한 포르노처럼 보여요.

4.

이 영화의 또다른 중요 요소는 의사 가족 관계라고 부를만한 캐릭터들의 관계입니다. '아이'는 아내와 함께 그를 떠난 딸의 환영(그는 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에 사로잡혀있고 조애너 역시 어렸을 때 그녀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집착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부서져 버린 가족 관계를 필사적으로 회복하려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조애너의 수호천사 노릇을 하려는 이유는 그가 그런 행동을 통해 상징적으로나마 딸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애너가 남자들을 죽여대고 맹인인 알렉스와 결혼하려는 이유 역시 아버지를 처벌하고 새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시도고요. 게다가 주느비에브 비졸드가 연기한 심리학자와 조애너의 거의 모녀에 가까운 관계는 어떤가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서글픔도 여기서 나옵니다. 아톰 에고이안의 [엑조티카]가 자꾸 연상되지 않을 수 없어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구식 가정의 이미지를 실락원처럼 품에 안고 사는 추방자들입니다.

5.

[아이 오브 비홀더]로 유안 맥그리거가 본류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그는 '아이'와 같은 역을 한 적은 없습니다. '아이'는 지금까지 그가 연기한 젊은 반항아들과 그렇게 닮은 점이 없습니다. 연기만 따진다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오비원 캐노비보다 더 다르다고 해야겠지요.

애슐리 저드의 조용한 아름다움은 조애너를 무척 동정심이 느껴지는 캐릭터로 만듭니다. 다소 캐릭터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각본을 커버하는 것도 저드의 저력이죠.

둘은 어울릴까요? 글쎄요. 사실 맥그리거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배우가 '아이'를 연기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들 사이의 가짜 아버지-딸 관계가 성립되겠지요. 하지만 저드가 맥그리거보다 세 살인가 연상이지요? 그래서인지 이 둘은 몇몇 장면은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아이'가 정신을 잃은 조애너를 아버지처럼 얼러대는 장면이 그렇지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부담없습니다. 둘 다 잘하는 배우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도 많지 않잖아요.

두 명의 캐나다인이 꽤 비중있는 조역으로 나옵니다. k.d. 랭이 영국 대사관 직원으로, 주느비에브 비졸드가 심리학자로요. 비졸드는 그 동안 참 나이를 많이 먹었더군요. 세월이 뭔지...

5.

[아이 오브 비홀더]는 흥미진진한 구석이 많은 영화지만 씹을 건더기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이미 히치콕이 몇십 년 전에 다 해버렸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페티시스트용 포르노로는 완벽하고 로맨틱한 우울증 제공용으로도 근사한 영화입니다. 히치콕에 그렇게 눌리지만 않았어도 훨씬 근사한 영화가 나왔을지도 모르지요. (99/08/28)

DJUNA

기타등등

우리 나라 사람들이 쓸데없는 이름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야 예전부터 알고 있지만 도대체 '러브 스릴러'라는 건 또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