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찰스 스터리지 Charles Sturridge

주연
플로렌스 호스....엘시 라이트
Florence Hoath....Elsie Wright
엘리자베스 얼....프랜시스 그리피스
Elizabeth Earl....Frances Griffiths
폴 맥건....아서 라이트
Paul McGann....Arthur Wright
피비 니콜즈....폴리 라이트
Phoebe Nicholls....Polly Wright
빌 나이....에드워드 L. 가드너
Bill Nighy....Edward L. Gardner
밥 펙....해리 브릭스
Bob Peck....Harry Briggs
피터 오툴....아서 코난 도일 경
Peter O'Toole....Sir Arthur Conan Doyle
하비 케이틀.....해리 후디니
Harvey Keitel....Harry Houdini
안톤 레서....부상당한 병장
Anton Lesser....Wounded Corporal
팀 맥키너니.....존 페렛
Tim McInnerny....John Ferret

1.

코팅리 요정 사건에 대해 알고 계세요? 20세기 초에 일어난 아주 이상한 스캔들입니다. 1917년, 코팅리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살던 엘시 라이트와 프랜시스 그리피스라는 두 소녀가 요정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들은 당시 한참 신비주의에 푹 빠져 있었던 아서 코난 도일 경에게 넘어가 잡지에 발표되었고, 한동안 전 영국을 뒤흔들었습니다. 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답니다.

물론 코팅리 요정 사진들은 진짜가 아니었습니다. 코팅리 사건의 주인공인 두 소녀는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야 그 사진들이 가위로 오려 만든 요정 그림을 앞에 세워놓고 찍은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태가 너무 커져서 뒤로 무를 수도 없었던 것이었죠. 초자연현상 전문 저술가인 제니 기딩즈는 이들이 실제로 요정을 보았고 사진만이 가짜였다고 말했다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어처구니가 없죠? 어떻게 과학과 이성의 시대인 20세기에 그런 말도 안되는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코팅리 요정 사진은 그렇게 대단한 조작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시대적 상황인데,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20세기 초는 이런 요정 이야기를 정말로 받아들일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심령학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유행이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 크룩스 교수, 코난 도일 경과 같은 저명한 사람들의 지지도 막강했고요. 지리적 배경도 요인이 됩니다. 영국이나 아일랜드에는 이상할 정도로 요정 숭배자들이 많죠. 지금도 굉장히 많은 요정 지지자와 목격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긴 이런 것도 UFO와 같은 것인지 모르겠어요.

2.

그러나 찰스 스터리지의 [페어리 테일]은 사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요정들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아름답게 재창조된 이 작은 창조물들은 우리가 마음을 풀어놓고 있을 때마다 슬쩍 슬쩍 나타나 관객들의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그럼 뭔가요. 이 영화는 코팅리 요정 사진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꼭 그런 것도 아니랍니다. 이 영화에는 프랜시스와 엘시가 요정 사진을 찍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사진을 조작했을 가능성도 은근슬쩍 암시하고 있답니다. 특히 해리 후디니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그래요. 이 영화의 후디니는 아이들이 사진을 조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공범자적인 심정으로 그 사기 사건을 보조해주는 듯 합니다. "마술사는 결코 자신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아. 그리고 사람들도 그 비밀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단다."라는 그의 대사를 보세요. 그는 두 소녀들을 옹호할 때도 사진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는 코팅리 사건의 두 가설을 모두 다루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이 두 가설을 적당히 섞어서 하나로 만들려고 했을까요?

이 영화가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1) 요정은 정말로 존재하고 사진도 진짜다. (2) 요정은 존재하지만 사진은 가짜다.

어린 관객들은 당연히 전자를 택하겠지요. 하지만 영화는 후자를 택한 듯 합니다. 코팅리 요정 사진이 가짜라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말로 미묘한 작품이 되는 거죠. 모든 소동이 잦아든 뒤, 엘시가 프랜시스와 나누는 대화는 거의 형이상학적이 됩니다. 프랜시스는 자기가 어른이 된 뒤에 요정들을 볼 수 없을까봐 걱정합니다. 하지만 엘시는 "우리에게 사진이 있잖아.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거야"라며 프랜시스를 위로하죠. 하지만 그 사진이 프랜시스와 엘시가 조작한 것이라면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직접 만들어냈던 것이겠죠?

3.

하지만 [페어리 테일]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코팅리 요정 사진이 진짜냐, 가짜냐가 아닙니다. 이 영화에 따르면 코팅리 요정 사진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영화는 왜 사람들이 코팅리 사진을 절실하게 믿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17년이니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입니다. 수많은 가족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잃었었지요. 길어져 가는 전쟁으로 미래는 지극히 어두워보였습니다.

영화는 어린이 영화치고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죽은 가족이나 친척의 기억에 홀려있는 사람들입니다. 엘시는 동생을 폐렴으로 잃었습니다. 코난 도일 경 역시 아들을 잃었고요. (영화 속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후디니가 그처럼 사기꾼 영매들을 고발하는 데 열성적이었던 것도 죽은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린 프랜시스 역시 프랑스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 앞에 벌레 날개를 단 작고 아름다운 생명체가 나타났던 것이지요. 그들이 흑백 사진에 찍힌 이 초자연적인 작은 존재들한테서 어떤 위로를 얻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코팅리 요정은 단순히 불가사의한 미스테리가 아니었습니다. 요정들은 사람들에게 비참한 현실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신경 안 쓰는 척 무시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아직도 남몰래 찾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한 희망을요.

4.

영화의 위태로운 소재를 매력적으로 꾸며내는 것은 찰스 스터리지의 성실함입니다. BBC에서 다져진 그의 건실함이, 자칫 노골적인 가짜가 될 수도 있고, 필요이상으로 감상적이 될 수도 있으며, 지나치게 현실에 동떨어질 수도 있는 이야기에 적절한 무게감을 부여하는 것이죠. 그 때문에 아이들이 보기엔 좀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엔 요정이 그렇게까지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나오는 장면들은 훌륭합니다. 그의 다른 작품 [걸리버 여행기]처럼,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과 재래식 특수효과가 날씬하게 결합되어서, 영화 속의 요정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보입니다. 아름답기도 해요.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분위기 속에 멋지게 섞이기도 하고요.

플로렌스 호스와 엘리자베스 얼이 연기한 아이들도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어른들 중에서는 두 명의 유명인사, 아서 코난 도일과 해리 후디니를 연기한 피터 오툴과 하비 케이틀이 눈에 들어오고요. 그들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이미지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도 그 표면적 이미지에 새로운 터치를 부여합니다.

5.

[페어리 테일]은 서커스와 같은 작품입니다. 그만큼이나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위태로우며, 그들 사이를 뛰어넘는 과정이 위험해 보인다는 말이지요. 과연 백 퍼센트 성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이 영화로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도 모르겠고요. 잘못하면 분명한 역사적 진실을 흐리게하고,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엔 그 모든 의문점들을 묻어버리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 후디니의 마술이나 코팅리 요정 사진이 가진 매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겠지요. 영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믿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이상한 욕구를 마술처럼 충족시켜준 것입니다. (00/02/24)

DJUNA

기타등등

1. 멜 깁슨이 작지만 중요한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왜냐고요? 그는 이 영화를 만든 제작사의 사장이랍니다. :-)

2. 코팅리 요정을 다룬 영화는 [페어리 테일] 하나만이 아닙니다. 닉 윌링이 97년에 [Photographing Fairies]라는 영화를 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