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

주연
로버트 드 니로....괴물
Robert De Niro....The Creature
케네스 브래너....빅터 프랑켄슈타인
Kenneth Branagh.... Victor Frankenstein
톰 헐스....헨리 클레발
Tom Hulce....Henry Clerval
헬레나 본햄 카터....엘리자베트
Helena Bonham Carter....Elizabeth
에이단 퀸....왓슨 선장
Aidan Quinn....Ship Captain Walton
존 클리즈....발드만 박사
John Cleese....Dr. Waldeman

1. 유쾌한 놀라움

명탐정 네로 울프가 아치 굿윈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지요. "비관주의자가 얻는 것은 유쾌한 놀라움 뿐이고, 낙관주의자가 얻는 것은 불유쾌한 놀라움 뿐이다." 간단히 말해, 기대치를 낮게 잡으면 세상이 즐겁다는 뜻입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저희들은 이 영화를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에 쏟아진 수많은 악평들을 읽었기 때문에 아무리 시시한 영화여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요. 그런데다가 영화는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악평들이 일리가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MTV에 영합했다. 맞습니다. 신선함이 없다. 맞습니다. 무섭지 않다. 지당하신 말씀. 케네스 브래너가 쓸데없이 웃통을 벗어 제꼈다. 맞아요. 주제가 혼란스럽다. 그럼요. 브래너의 연출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렇고 말고요.

그러나,그런 점을 다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꽤 재미있고, 지적받은 것들도 해명하기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MTV에 영합했다는 비판을 봅시다. 그 말 자체는 지당하지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카메라와 짧은 편집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가 내용없이 카메라만 빙빙 돌린 것일까?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 영화는 문명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거창한 말이 싫다면 그냥 미친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시다. 소위 'MTV와 영합'한 기법은 이런 혼란스러운 인간과 상황을 다룬 영화를 위한 꽤 그럴 듯한 도구가 되지 않겠습니까? 브래너의 연출이 그의 전작에 비해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그거 야 히치콕의 영화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지요. 물론 히치콕 영화에서 보이는 꾸준한 탐구 정신을 브래너의 영화 속에서 찾기는 좀 힘이 들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어차피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에 한 이야기를 계속 또 하는 사람들이니 신선함과 모험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새로운 해석의 영화가 난무하는 이 때에 정통적인 해석을 한 번 감상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글렌 굴드의 독특한 바흐 해석에 열광하는 음악애호가라도 니콜라예바의 보다 정통적인 연주가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섭지 않다고 했지만, 이 영화는 호러 영화가 아니니 무섭지 않다고 해서 흠은 되지 않지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이런 영화에 익숙해진 미래의 관객들에게 더 사랑을 받을 것 같습니다. 유니버설 공포 영화가 무섭기 때문에 지금도 줄기차게 방영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2. 주제와 각색

작가가 뭘 의도했건,감독이 어떻게 해석했건 간에,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는 대충 세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과학과 자연의 대립, (2)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 (3) 인간 본성과 주변 환경에 대한 탐구.

소설만 따지자면, (1)은 열광적인 발전의 시대였던 근세 유럽의 사조를 국외자인 여성의 시점에서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2)의 경우는 (1)과 연결되어 있고 서구 존재론의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물음이 깔려 있고요. 그리고 (3)은 루소나 작가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의 철학적 배경이 바탕이 되어 있겠지요. 백지와 같은 인간의 영혼이 주변에서 주어진 외압에 의해 어떻게 멍들어 가는가.

브래너의 영화는 원작을 꽤 충실하게 영상화한 편이기 때문에 위에 제시한 세 주제는 그대로 영화 속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2,3의 주제는 브래너가 손 댄 것이 별로 없습니다(어떤 평론가가 브래너는 [프랑켄슈타인]에 셰익스피어적인 존재론적 고뇌를 추가했다, 또는 그와 유사한 말을 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런 것들 역시 원작에 훨씬 풍요롭고 섬세한 형태로 다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 사람은 아마 원작을 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감독보다 괴물 역을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를 칭찬해야 하겠습니다. 괴물이 숲 속의 가족들에게 당한 배신이 원작보다 가볍게 묘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괴물을 진심으로 동정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배우의 능력 때문입니다.

브래너가 강조한 점은? 여러분은 브래너가 '사랑'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발견했다는 이상한 말을 한 걸 기억하실 겁니다. 대부분 어리둥절하셨을 거예요. 저희도 엉뚱한 주제를 하나 더 만들어 영화의 포인트를 흐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그렇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엘리자베트와 빅터의 베드신은 없는 편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브래너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심코 (1)의 주제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메리 셸리의 소설은 끝없이 팽창해가는 인간의 지식욕, 그리고 이성과 과학에 의한 자연의 지배에 대한 경고문입니다. 여기서 엘리자베트와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양쪽에 서서 그의 영혼을 잡아 끕니다. 엘리자베트는 자연을, 괴물은 과학의 창조물을 대표하죠. 괴물이 엘리자베트를 살해하는 장면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만)은 이미 여러분도 아시겠지요.

브래너가 끌어낸 새로운 주제인 '사랑'은 따지고 보면 '엘리자베트'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역시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대과학의 발전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영화가 직접적인 은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유전 공학'같은 것이겠죠.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브래너는 사랑의 힘을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그는 그것을 물질문명으로 찌들고 겁에 질린 현대 문명에 대한 치유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그런 희망을 기괴하게 비틀어버립니다. 바로 '신부'의 에피소드 때문이죠. 유니버설 사의 고전적인 명작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신부는 괴물의 고독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신부는 꿰멘 자국과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헤어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브래너의 영화에서 신부의 역할은 다릅니다. 우선 그는 엘리자베트와 신부를 결합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니 엘리자베트의 상징은 곧바로 신부와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신부는 괴물 못지 않게 추한 존재입니다. 이미 헬레나 본햄 카터의 아름다움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은 신부의 모습을 보고 한마디로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죠. 신부는 바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자살합니다. 과학에 의해 다시 태어난 자연은 우리를 더 철저하게 거부하고 말았네요. 맙소사, 그는 이 영화를 원작보다 더 비관적으로 만들어버렸군요. 단지 유니버설 사의 속편에 존경을 표하려고 했을 뿐인 것 같던데...

3. 배우

드 니로는 아주 좋습니다. 진짜같고 동정할 만하며 그와 동시에 위엄과 비극적인 요소(공포영화의 괴물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우습지 않습니다)를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브래너의 연기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연극적이고 과장되어 있지만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역과 어울립니다. 이언 홈과 헬레나 본햄 카터, 톰 헐스 같은 배우들도 자기 역 할을 잘 해내고요. 가장 쇼킹했던 배우는 프랑켄슈타인의 스승으로 나왔던 존 클리즈입니다. 세상에나! 그가 그렇게 진지하다니! (96/03/22)

D&P

기타등등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유니버설 [프랑켄슈타인] 영화의 줄거리의 일부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본편보다 더 높이 평가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