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아론

주연
조안....호정
민석....원재
류상욱....동화
양은용....진영
김민교....박 PD

호정

[헬로우 마이 러브]의 주인공 호정은 첫 등장부터 제 점수를 확 깎아 먹었습니다. 이 사람은 [언니 못 믿니?]라는 라디오 연애 상담 프로그램의 작가이자 공동 진행자인데, 방송에서 한다는 소리가 남자친구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여 기절시킨 뒤 여관으로 끌고 가 성추행하는 것이 '귀여운 범죄'에 불과하다네요. 물론 이건 호정이 남자친구 원재에게 실제로 저지른 짓이기도 합니다.

전 그 다음에 호정이 방송에서 늘어놓는 '우주에 에테르 파장이라는 게 있는데요' 어쩌구 하는 대사도 그만큼이나 용서할 수 없었답니다. 라디오 방송의 느끼한 멘트에 어울린다고 백년 전에 폐기된 과학 이론을 멋대로 끌어들이는 사람은 지적으로 전혀 신용할 수 없지요. 어떻게 이런 게 용납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호정이 그 뒤에 하는 짓도 가관입니다. 이 사람은 몇 년째 연애 중인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짝사랑하는 박 PD가 구애를 하자 딱 잘라 거절을 하지 않는답니다. 대충 엉성한 말로 꼬리를 흐리면서 이 순진멍청한 남자를 희망고문하지요. 이렇게 내버려 두면 이 남자가 힘을 써서 뒤를 봐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죠. 등장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삼진 아웃입니다.

이래서는 정말 안 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전 이미 이 사람이 제가 그렇게 좋아한다고 할 수 없는 장르인 '패그해그 궁상물'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걸요. 어떻게든 입지를 다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점수를 따는 것이 중요한데, 시작부터 이렇게 자발적으로 점수를 까먹어요?

본론, 그러니까 파리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남자 친구 원재가 유학 시절 친구 동화와 애인 사이라는 걸 밝힌 뒤에는 어떻게 되나요? 역시 사정은 좋지 않습니다. 호정은 징징 짜고 시비를 걸고 이런 종류의 영화에 나온 온갖 고리타분한 대사들을 총동원합니다. 그 중 하나는 포스터에도 실려있습니다.

원재와 동화는 좀 나은가요? 전 대답을 못 하겠습니다. 이들은 파리에서 와인과 요리를 공부하고 돌아온 예쁘장한 남자들로 둘만 있으면 속옷 차림으로 샤를르 트레네의 [라 메르]를 들으며 춤을 춥니다. 이들은 캐릭터들이 아닙니다. 배우들의 몸을 뒤집어 쓴 스테레오타입이지요. 아, 그런데도 영화는 이런 장면이 굉장히 도발적이고 신선하고 멋진 줄 압니다.

제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와 마주쳤을 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할 거라면 그 사실을 당당하게 인정할 것. 신선하고 도발적인 이야기를 할 작정이라면 정말로 그런 이야기를 가져올 것.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이 둘을 섞지 말 것. [헬로우 마이 러브]는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합니다.

이런 촌스러움이 매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문화적으로 주변국일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촌스러움은 진실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 그 촌스러움에서 진실됨이 보여야 합니다. [헬로우 마이 러브]에서는 그런 진실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것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프랑스 파리를 향해 외롭게 부르는 짝사랑 노래와 동성애 소재를 자료삼은 장식적 과시가 대신 들어가지요.

아까운 일입니다. 이 영화에는 내용을 넘어서는 장점이 꽤 됩니다. 예를 들어 주연배우 조안은 상당히 좋습니다. 관객들이 호정에게 희미하게 감정 이입을 했다면 그건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배우 조안 때문입니다. 남자배우들도 무난합니다. 캐릭터들이 조금 더 재미있었다면 좋았겠죠. 김아론은 호정의 수난기를 [아멜리]화된 초현실주의로 구성하는데, 이들 중 몇 개는 재미있는 편입니다. 3억 7천밖에 안 된다는 극저예산을 이 정도로 야무지게 활용한 것도 장점이겠죠. (09/09/25)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시작하는 연인들]. 그렇게 임팩트 있는 제목은 아니지만 촌발 풀풀 날리는 [헬로우 마이 러브]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DJ로 나오는 양은용은 김아론의 전작 [라라 선샤인]의 주연배우이기도 했죠. 이 영화도 10월에 개봉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