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헨리 셀릭 Henry Selick

주연
폴 테리....제임스
Paul Terry....James
수잔 서랜든....거미
Susan Sarandon....Spider
제인 리브즈....무당벌레
Jane Leeves....Ladybug
사이먼 캘로우....메뚜기
Simon Callow....Grasshopper
리처드 그레이퍼스...지네
Richard Dreyfuss....Centipede
데이빗 튤리스....지렁이
David Thewlis....Earthworm
미리엄 마골리스....반딧벌레/스폰지 고모
Miriam Margolyes....The Glowworm/Aunt Sponge
조애너 럼리....스파이커 고모
Joanna Lumley....Aunt Spiker
피트 포슬스웨이트....노인
Pete Postlethwaite....Old Man

1.

할리우드에서 1996년은 로알드 달이 부활한 해였습니다. 그와 관계 있는 작품들이 자그만치 세 편이나 연달아 개봉되었으니까요. 95년 크리스마스에 개봉된 첫번째 작품 [포 룸]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는 로알드 달의 [남쪽에서 온 사나이]의 오마주(물론 그는 그 작품을 각색한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의 오마주를 의도하고 있었겠지만)를 선보였고, 96년 4월에는 그의 동화를 각색한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가 나왔으며, 8월에는 또다른 각색물인 [마틸다]가 나왔지요.

제인 오스틴 열풍처럼 달의 열풍도 때가 무르익자 그대로 튀어나온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달의 무자비한 동화들이 달콤한 당의정 없이 주류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서서히 조성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만큼 세상이 무자비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포 룸]은 형편없는 영화로 낙인찍혔지만, 로알드 달과의 관계는 미미했으니 상관 없었습니다. 나머지 두 편은 모두 괜찮은 평을 받았지요. [마틸다]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의 성적은 꽤 좋은 편이었습니다. 억지로 승자를 찾자면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가 선두였지요.

2.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시공사 번역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죠)]는 로알드 달의 가장 고약한 동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근처까지는 가죠. 다른 로알드 달의 동화들처럼 이 영화에도 사악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과 순진무구하고 선량한 아이의 대결이 이어지고 그 사이에 온갖 초현실적인 모험담이 끼어듭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부모가 코뿔소한테 잡아먹힌 고아 소년 제임스로, 그는 못생기고 음흉한 두 고모와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한테서 그의 인생을 바꾸어 줄 수도 있는 초록 알갱이들을 받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제임스는 그 알갱이들을 엎지르고, 그 때문인지 죽어있던 고모네 복숭아 나무에서 어마어마한 복숭아가 자라납니다. 제임스는 복숭아 속에서 같이 커진 벌레 친구들과 함께 복숭아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갑니다.

헨리 셀릭의 영화 역시 이 스토리를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바꾼 게 있다면, 구름 나라 장면이 해적선 모험으로 바뀌었으며, 고모들이 끝까지 살아남아 뉴욕으로 쫓아온다는 것이겠지요. 로알드 달 팬들은 만족할 겁니다. 그의 소설을 특징짓는 극단적이고 무자비한 이미지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니까요.

3.

그러나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각적 향연입니다. 우린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통해 헨리 셀릭 패거리의 실력을 알고있지만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에서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비교적 고전적인 테크닉에 만족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셀릭은 컴퓨터 그래픽과의 결합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바다 장면은 상당 부분이 컴퓨터 그래픽입니다. 물결치는 바다, 상어, 날아가는 갈매기는 모두 3D 오브젝트들이지요. 이들이 교묘하게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흉내내는 통에 쉽게 눈치채기는 힘들지만 말입니다. 셀릭은 컴퓨터 그래픽에 쉽게 투항하지 않으면서도 적정선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 보여주지 못했던 극적인 장면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시각적 인상은 팀 버튼의 영향 아래 가라앉은 흑백조를 구사하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극에 있습니다. 온갖 화려한 색채가 가득한 캐릭터들이 부드러운 파스텔조 화면 속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거죠. 고딕 이미지로 일관하는 팀 버튼의 캐릭터들과는 달리,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2,30년대 영국 각 계층의 구성인원들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중하층 계급의 얌전한 아줌마와 같은 무당벌레, 20년대 블루 스타킹인 거미, 잘난 척 하는 예술가인 메뚜기와 같은 캐릭터들을 보세요. 이들 캐릭터들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로알드 달의 원작보다 더 친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제임스와 거미의 관계 묘사가 그렇습니다.

영화의 또다른 특징은 실사 영화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결합입니다. 이 영화는 실사로 시작하지만, 주인공들이 초록 알갱이를 먹고나면 모두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합니다. 환상 세계와 현실을 실사와 애니메이션으로 가르는 방식 자체는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영화는 이를 훨씬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결말인 뉴욕 장면에서 애니메이션의 환상은 실사의 현실과 결합하면서 지금까지 끌어온 영화의 판타지를 입체화시키니까요. 거의 애니메이션 수준으로 비현실적인 실사의 이미지 덕택에 이 둘은 무리 없이 통합됩니다.

4.

일반적으로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는 [크리스마스의 악몽]만큼 좋은 평을 받는 작품은 아닙니다. 전작과 팀 버튼이라는 이름이 만드는 그림자에 가려진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거의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전작과는 달리 흐트러진 느낌이 꽤 많이 남아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버튼의 이름을 잊고 이 작품을 독립된 영화로 본다면,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는 결코 꿀릴 게 없는 영화입니다. 셀릭의 다음 영화 [몽키 본]이 나와 셀릭의 스타일을 버튼의 영향에서 분리시킬만한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된다면 [제임스와 수퍼 복숭아]의 평가는 더 나아질 겁니다. (00/10/25)

DJUNA

기타등등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주인공 잭이 해적선 장면에서 카메오로 깜짝 출연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