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길러민 John Guillermin

주연
제프 브리지스....잭 프레스콧
Jeff Bridges....Jack Prescott
찰스 그로딘....프레드 윌슨
Charles Grodin....Fred Wilson
제시카 랭....드완
Jessica Lange....Dwan
존 랜돌프....로스 선장
John Randolph....Captain Ross
르네 오베르조느와....배글리
Rene Auberjonois....Bagley
줄리어스 해리스....본
Julius Harris....Boan
잭 오핼로런....조 퍼코
Jack O'Halloran....Joe Perko
데니스 핌플....선피시
Dennis Fimple....Sunfish
에드 로터....캐너핸
Ed Lauter....Carnahan

1.

[킹콩]이라는 영화에 대해 누군가 이야기할 때마다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소년 중앙]에 실렸던 그 영화의 특집 기사입니다. 그 기사에서는 킹콩의 실제 크기의 로봇을 이용해 촬영했다고 주장하고 그 로봇의 설계도를 실었었지요.

웃기는 사기였지요. 카를로 람발디가 그 영화를 위해 실제 크기의 킹콩 로봇을 만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전신 로봇은 영화 속에 아주 가끔만 등장할 뿐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킹콩은 대부분 고릴라 옷을 입은 릭 베이커와 손과 팔만 따로 만든 로봇입니다. 원래 람발디의 로봇을 사용할 계획이 있기는 있었지만, 당시 기술로는 그만한 크기의 로봇으로 제대로 영화를 찍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제작자 디노 디 로렌티스는 최첨단 특수 효과 어쩌구를 떠들면서 사기를 쳤던 거죠. 하긴 그렇게 허풍을 떨었는데 '분장사한테 고릴라 옷을 입혀 찍었다'고 고백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70년대는 [킹콩]을 리메이크하기엔 별로 좋은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좋은 때가 아닌 정도가 아니었어요. 가장 나쁜 때였지요. 50년대였다면 세련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상당한 수준의 오락 영화가 나왔을 겁니다. 60년대였다면 [고질라] 스타일의 유쾌한 싸구려 영화가 나왔겠고요(사실 일본에서는 당시 여러 편의 [고질라]식 싸구려 [킹콩] 영화들을 만들었었지요.) 80년대였다면 발달한 애니매트로닉스로, 90년대였다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다 세련된 [킹콩]을 선보일 수 있었겠고요. 하지만 70년대엔 그 어느 것도 없었습니다. [타워링]과 같은 대형 재난영화가 유행이었던 때였으니 작은 영화가 나올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큰 영화를 만들자니 기술이 부족했던 거죠. 그 결과 나온 것은 어마어마한 거짓 홍보로 뻥을 튀긴 싸구려 특수 효과 영화였습니다.

'싸구려'가 조금 심한 말이긴 합니다. 이 영화의 애니매트로닉스 기술은 상당하거든요. 당시 쌓였던 기술이 그 뒤의 할리웃 영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도 사실입니다. 릭 베이커의 고릴라 옷도 나쁘지는 않으며 킹콩의 손도 잘 움직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싸구려로 보입니다. 그건 아무리 잘 만든 고릴라 옷도 결국 고릴라 옷일 뿐이며 그 고릴라 옷을 입은 남자가 돌아다니는 세트도 조잡한 세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의 모형들은 30년대에 만들어진 오리지널보다 성의가 없습니다. 특수 효과만 따진다면 오히려 퇴보한 것이죠.

2.

내용은 어떨까요? 이 영화에선 영화 제작팀들 대신 석유 탐사팀이 섬을 방문합니다. 나쁘지 않은 설정입니다. 당시는 오일 쇼크 시대였으니까요. 단지 설정이 영화 제작 이야기보다 더 말이 안됩니다. 과연 '만년만 더 지나면 진짜 석유'가 되는 어정쩡한 석유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하긴 [킹콩]이 말이 되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 그런 점은 봐줄만 합니다. 사실 이 영화가 진짜 비난 받아야 할 부분은 말이 안되는 부분이 아니라 말이 되는 부분입니다.

오리지널 [킹콩]은 수많은 특수 효과로 기적과 신비, 그리고 기가 막힌 액션을 창조한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킹콩은 티라노 사우르스와 싸웠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로 기어올라가 비행기들을 추락시켰습니다. 해골섬에 가득 찬 공룡들은 [쥬라기 공원] 따위는 엿먹일 정도였고요.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 영화에는 공룡이 없습니다. 나오는 것은 고무로 만든 뱀 모형 하나죠. 마지막 장면도 시시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헬기를 향해 손만 몇 번 휘젓고 뻗어버리니까요. 저 위에 있는 포스터는 완전 사기입니다. 영화 속에는 저런 액션 장면은 없습니다. 이야기가 더 말이 되긴 했지만 엄청나게 재미가 없어진 거죠. 하긴 이 역시 능력이 없어서 못 만든 것이긴 합니다만.

3.

생물학자로 나오는 제프 브리지스는 괜찮습니다.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킹콩만큼이나 유인원처럼 보이지만 좋은 배우니까요. 찰스 그로딘의 악당도 나쁘지 않고요. 하지만 제시카 랭은 이 데뷰작에서 별다른 실력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의 반을 그냥 멍한 표정으로 돌아다니거나 기절해 있으니까요. 분명히 어딘가 감추어져 있었을 이 배우의 실력이 전혀 빛을 보지 못했던 건 시시한 연출이나 바보 같은 각본 때문이겠지요.

디노 디 로렌티스는 이 영화의 속편도 만들었습니다. 간이 부은 남자였던 게 분명해요. 심지어 그는 10년에 한 번씩 [킹콩] 속편들을 시리즈로 낼 계획까지 세웠었답니다. 이 멍청한 계획은 [킹콩 2]가 처참한 실패를 거두자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00/03/20)

DJUNA

기타등등

과연 킹콩은 드완으로 무얼 하려고 했던 걸까요? 윌슨은 킹콩을 강간범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사이즈를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이 영화의 킹콩은 성추행범보다는 인형 놀이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생김새에 걸맞지 않게 무척 여성적인 취미를 가진 원숭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