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안 Ang Lee

주연
탕유....왕가지
Wei Tang....Wang Jiazhi
양조위....이장관
Tony Leung Chiu Wai....Mr. Yee
조운 첸....이부인
Joan Chen....Mrs. Yee
왕리홍....광위민
Lee-Hom Wang....Kuang Yu Min

왕가지

이안의 [색, 계]는 친일파 중국인 관리들의 아내인 것처럼 보이는 네 명의 유부녀들의 마작판으로 문을 엽니다. 배경은 1942년, 상하이. 마작판 무리들 중 한 명인 막부인은 다른 세 명보다 한참 어리고 남편과도 떨어져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잠시 뒤, 이 집의 주인인 이장관이라는 사람이 들어오고 막부인은 핑계를 대며 마작판을 떠납니다. 이 모든 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관객들은 막부인과 이장관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짐작하게 됩니다. 이 오프닝은 여러가지 면에서 [밀회]의 도입부에 나오는 기차역 장면하고 비슷하죠. 1940년대에 나온 로맨틱한 영어권 영화들에 대한 인용은 이것뿐만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4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이들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사실 우리가 막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받은 사람은 유부녀도 아니고 성도 막씨가 아니죠. 이 사람은 원래 왕가지라는 홍콩의 대학생으로, 친일파 이장관을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스파이입니다. 원래 이 사람은... 음, 사실 이들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합니다. 장애령의 동명 단편소설에 기반하고 있는 이 영화의 내용은 여자 스파이를 다룬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가 그 공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여야겠군요.

영화는 정말 할리우드 고전 멜로드라마와 같습니다. 전 중국 영화작가들이 자꾸 3,40년대의 상하이로 돌아가는 이유도 그들이 이 배경을 통해 고전적인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안은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살립니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나른하게 로맨틱한 음악이나 온갖 지형학적 디테일을 화면에 가득 담고 그들을 우울한 로맨티시즘에 푹 절여낸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촬영은 거의 1940년대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죠.

하지만 중반 이후, [색,계]는 4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왕가지와 이장관이 나누는 거침없는 NC-17 섹스신이지요. 노골적인 전신 누드는 비교적 덜 나오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볼 것, 못 볼 것 다 보게 됩니다. 기하학적으로 가능한 온갖 체위들이 다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하지만 이 장면들이 불편한 건 노출이 심하고 디테일이 상세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의 관계가 지극히 폭력적인 사도매저키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영화는 이런 종류의 욕망을 가차없이 탐구하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비엔나 호텔의 야간배달부]와 같은 70년대 유럽 영화들과 닮았습니다. 역시 제가 아주 즐겁게 보는 작품들은 아니죠.

[색, 계]는 매혹적인 영화입니다. 이야기가 여자 스파이 로맨스의 공식에 충실하다고는 하지만, 왕가지와 이장관의 묘사는 역사적 전형성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어서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노련한 양조위와 이 영화로 데뷔한 신인 탕유/탕웨이는 모두 맹렬하면서도 진실감이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데이빗 린의 작품들처럼 진짜 대작처럼 보이는 영화지만 이안 필모그래피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꾸준한 일관성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색, 계]는 전체를 놓고 볼 때보다 따로따로 부분을 떼어놓고 볼 때 더 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전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완전히 맞아 떨어지지가 않아요. 전 영화의 풍성한 역사적 디테일을 온몸으로 즐겼고 꺾인 꽃이 떨어지는 듯한 영화의 허망한 결말에도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둘이 하나의 영화로 연결되면 효과가 떨어지죠. 영화의 치고 빠지는 결말은 대작영화엔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지고 장중하고 느릿한 사건 전개는 결말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겁습니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익숙한 스토리 전개는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앞에서 지적한 뻔한 공식을 잘라 내던진 것도 아니고요. 전체적으로 [색, 계]의 매력은 모두 더 잘 짜여진 몇몇 영화들에서 가져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짝 부서진 듯한 모습에 더 매료되는 관객들도 많을 거예요. (07/10/23)

DJUNA

기타등등

표기의 통일이 필요합니다. 언제부터 중국어 영화 대사와 보도자료를 몽땅 영어에서 중역하는 시대가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