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저 미첼 Roger Mitchel

주연
줄리아 로버츠....안나 스코트
Julia Roberts....Anna Scott
휴 그랜트....윌리엄 대커
Hugh Grant....William Thacker
리스 이반스....스파이크
Rhys Ifans....Spike
엠마 챔버즈....허니
Emma Chambers....Honey
휴 보네빌....버니
Hugh Bonneville....Bernie
지나 맥키....벨라
Gina McKee....Bella
리처드 맥케이브....토니
Richard McCabe....Tony
제임스 드레이퍼스....마틴
James Dreyfus....Martin
팀 매키너니....맥스
Tim McInnerny....Max

1.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은 지루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영리하지도, 재치있지도 않고 생긴 것도 그저 그렇지요. 우린 이런 삶을 대충 견디고 살면서도 뭔가 다른 것을 갈망합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렇게 쉽게 매료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아마 제우스와 그의 일가 친척들이 올림푸스 산에서 놀고 있었을 당시도 예외는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가끔 올림푸스를 올려다 보면서 아프로디테가 마르스랑 놀아났다느니 아폴로가 또 누군가한테 차였다느니 따위의 가십을 교환하며 지루한 삶을 견뎌냈겠지요. 아마 그리스 신화는 당시 타블로이드 신문의 잔재일 겁니다. 신화라는 것들의 대부분은 지독하게 가십성 아닙니까? 신화 어디에 제우스의 경제 5개년 계획 따위가 나옵니까?

제우스 일파는 더이상 올림푸스에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대량 생산의 시대는 조직적으로 그 대체품을 찍어냅니다. 요새 신들은 헐리웃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스타라고 부릅니다.

2.

[노팅 힐]의 각본가 리처드 커티스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백일몽에서 얻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돈나와 같은 엄청난 스타를 뻔한 친구들의 평범한 모임에 데려간다면?

이런 백일몽은 커티스의 것만이 아닙니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공상을 하지요. 세부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골격은 비슷합니다. 유명인사와의 친분 관계로 자신의 가치가 갑자기 상승되는 거죠. 리처드 커티스의 각본은 이런 소망 성취 판타지를 극도로 밀고 갑니다. 우리의 책방 주인은 헐리웃 대스타와 결혼까지 하니까요.

우리의 지루한 삶 속에서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꿈도 꾸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많은 영화 관객들은 꿈을 꾸기 위해 영화관에 갑니다. [노팅 힐]은 그런 관객들에게 '초현실적이지만 멋진' 꿈을 제공해 줍니다.

3.

이 믿기지 않는 러브 스토리가 전개되는 곳은 노팅 힐입니다. 런던 교외의 작은 동네로, 웬만큼 역사가 된 국제적 도시의 주변에만 존재할 수 있는 북적거리고 아늑한 곳이죠. 소박하지만 놀랄만큼 포토제닉하고, 온갖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부글거리는 이 동네의 포근한 느낌은 이 영화의 동화적 도피주의에 귀여운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영화는 그들이 사는 삶의 진부함과 초라함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소프트 포커스를 씌우고 귀엽게 만들기는 하지만요.

노팅 힐 저쪽에는 '비벌리 힐즈'로 대표되는 헐리웃과 헐리웃 스타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노팅 힐의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한 화려함과 부로 치장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여러 골칫거리들을 안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노출된 사생활과 조작된 스캔들, 그리고 따분하고 따분한 매스컴 플레이.

안나와 윌리엄이 사귀게 되면서 이 두 세계는 뒤섞이며 코미디를 만들어냅니다. 가장 그럴싸한 부분은 기자로 오인받은 윌리엄이 안나와 다른 배우들을 인터뷰 하는 장면입니다. 영화의 발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허니의 생일 파티 장면도 흥미롭고요. 발단은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이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나름대로의 진실을 담고 있고 심리묘사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우린 이 코미디를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4.

[노팅 힐]은 처음부터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속편' 으로 계획된 작품입니다. 같은 캐릭터들이 계속 등장하는 진짜 속편은 아니지만 비슷한 내용과 분위기로 [네결한장]의 관객들을 다시 끌어올 수 있는 영화 말이에요.

사실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휴 그랜트는 미국에서 온 이방인과 아기자기한 사랑에 빠지고 주변에는 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부글거리고 있습니다.

우린 쉽게 두 영화의 캐릭터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네결한장]의 스텔라(샬로트 콜먼)는 [노팅 힐]의 허니(엠마 챔버즈)와 같은 인물입니다. 전작에서 피오나(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가 맡았던 우아한 잉글리시 로즈의 이미지는 벨라(지나 맥키)가 넘겨 받았고요. 물론 윌리엄은 찰스고 안나는 캐리입니다.

한 번 본 이야기지만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커티스는 그가 가장 잘 쓰는 영역으로 돌아온 셈이고 그가 창조해낸 캐릭터들은 여전히 호감가는 괴짜들이니까요. 게다가 아주 반복은 아니지 않습니까? 스파이크와 같이 새로운 캐릭터들도 있습니다. 계층간의 로맨스도 새로운 요소고요.

5.

감독 로저 미첼은 멋진 제인 오스틴 영화인 [설득]으로 세계 관객들에게 알려진 인물이죠. 저희는 [설득]을 아주 즐겁게 봤고 그 후로 이 감독의 다른 영화를 기다려왔습니다. 하지만 [노팅 힐]이 그 답변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군요. 이 영화는 미첼의 영화라기 보다는 커티스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네결한장]과 마찬가지로 [노팅 힐]도 멋진 앙상블 캐스트가 빛을 발하는 작품입니다. 휴 그랜트는 고향에 온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고 줄리아 로버츠는 다소 튀어 보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맵시있게 가다듬을 줄 압니다. 그러나 관객들의 눈길을 가장 끌었던 배우는 정신나간 스파이크 역의 리스 이반스가 아니었을까요? (99/07/05)

D&P

기타등등

1. 알렉 볼드윈과 매튜 모딘의 카메오가 있습니다. 사무엘 웨스트도 매우 사무엘 웨스트적인 깜짝 출연을 하고요. 볼드윈의 역은 꽤 크지만 다른 두 배우를 찾으려면 눈을 크게 떠야 할 겁니다.

2. 지나 맥키를 레이디 애그뉴로 분장시켜 찍는다... 새로 생긴 방명록에 어떤 분이 그런 아이디어를 보내주셨죠. 그러고 보니 맥키가 레이디 애그뉴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 맥키가 더 미인이지만. 서전트의 아부 근성을 생각해보면 진짜 레이디 애그뉴보다 훨씬 더 미인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