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척 존스 Chuck Jones

주연
멜 블랭크....벅스 버니, 대피 덕, 코끼리
Mel Blanc....Bugs Bunny, Daffy Duck, Elephant
아서 Q. 브라이언....엘머 퍼드
Arthur Q. Bryan....Elmer Fudd

(스포일러가 있어요.)

"Lemme see that thing!"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척 존스와 마이클 몰티스는 벅스 버니, 대피 덕, 앨머 퍼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세 편의 단편들을 내놓았습니다. [Rabbit Fire], [Rabbit Seasoning], [Duck! Rabbit, Duck!]으로 이어지는 이 '사냥 삼부작'은 지금도 존스/몰티스 콤비의 최대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그들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예요. 기법이나 소재 면에서 엄청나게 새로운 시도를 한 건 아니지만 그들의 유머와 스타일이 여기서처럼 완벽하게 꽃핀 작품들도 많지 않은 거죠.

세 작품 모두 설정은 비슷합니다. 엘머 퍼드는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을 사냥하려 하고 둘은 어떻게든 이 곤경을 빠져나가려 한다는 거죠. 여기서부터 거의 머리가 날아갈 것 같은 위트의 대결이 벌어집니다. 아이덴티티는 뒤바뀌고 시즌은 변경되며 스토리는 종종 가능한 조합을 넘어 초현실적인 단계로 뛰어듭니다.

[Rabbit Fire]에서 대피 덕은 가짜 토끼 발자국을 만들어 엘머 퍼드를 벅스 버니의 집으로 유인합니다. 하지만 헛갈리는 말장난이 이어지는 동안 대피 덕은 거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자신과 벅스가 파놓은 함정에 계속 빠집니다. 그러다 같이 달아난 벅스와 대피는 끝에 가선 반대로 엘머를 사냥하게 되지요. 엘머의 그 유명한 대사를 흉내낸 "Shhh... be vewy, vewy quiet... We're hunting Elmers..."를 읊조리면서요.

[Rabbit Fire]에서 총을 든 자는 엘머지만 사실 그는 게이머라기보다는 생각없는 자연의 힘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핵심은 엘머를 이용해 서로를 곤경에 빠트리려는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의 게임이지요. 그리고 그 게임은 거의 포커와 같습니다. 수학적 조합과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카드들이 노련한 심리 게임 전문가의 손에서 공격적인 무기로 전환되는 것이죠. 유명한 '"Duck season!", "Rabbit season!"' 장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두 개의 카드를 가지고 하는 뻔하디 뻔한 게임인데도 대피는 늘 집니다. 아무리 순서를 바꾸고 침착하려 해도 언제나 자기 가슴에 총구를 가져다대고 외치는 거죠. "Duck season. Fire!"

하지만 [Rabbit Fire]가 새디스틱한 슬랩스틱을 넘어설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영화가 단순한 심리게임 이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의 전쟁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영화는 논리를 초월합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도의 차분한 논리를 위장한 부조리함이 슬슬 이들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죠. 벅스 버니가 "So why don't ya go shoot yerself an elephant?"라고 말하면 진짜로 코끼리가 등장해 엘머를 땅에 두들겨 박고, "Duck season!"과 "Rabbit season!"을 번갈아 외쳐대며 벅스와 대피가 포스터를 뜯다보면 엉뚱하게도 'Elmer Season' 포스터가 나오는 거예요. 단순하다면 단순한 농담이지만 이런 것들이 고도의 에너지와 스피드 속에서 예고없이 튀어나오면 결과는 굉장합니다.

[Rabbit Fire]는 벅스 버니, 대피 덕, 엘머 퍼드라는 세 캐릭터의 성격을 완벽하게 활용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벅스의 능글맞은 유연함, 대피의 급한 성미, 엘머의 어벙함은 이 영화 속에서 잘 짜여진 3중주와 같은 조화를 이룹니다. 그 중 가장 빛을 발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아마 대피 덕이겠지요. 영화는 순전히 그가 사방에 쏟아대는 괄괄한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특히 전 대피 덕이 벅스 버니에게 쏘아대는 이 공격적인 대사를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Yes, you're despicable... and... and... picable... and... and... very definetly despicable... How a person can get so despicable in one lifetime is beyond me."

아직도 수많은 [루니 튠즈] 만화팬들은 [Rabbit Fire]와 [Rabbit Seasoning]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 작품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 사실 전 그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들 뛰어난 작품이고 모두 소나타의 각 악장처럼 하나의 흐름 속에 통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가려낼 수 있다면 그건 결국 취향 문제로, '"Duck season!", "Rabbit season!"'의 난폭한 대결과 "Would you like to shoot me now or wait 'til you get home?"의 우아하고 복잡한 말장난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와 상관있을 겁니다. 전 어떠냐고요? [Rabbit Fire] 쪽이 더 좋군요. [Rabbit Seasoning]의 말장난들이 더 세련되게 짜여져 있지만, 전 [Rabbit Fire]의 어처구니없는 부조리함에 더 쉽게 끌린답니다. (04/01/27)

DJUNA

기타등등

네, 이 영화에서도 벅스 버니는 여장을 하고 엘머를 유혹합니다. 이번엔 여자 사냥꾼 흉내를 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