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훌리오 메뎀 Julio Medem

주연
파스 베가....루시아
Paz Vega....Lucía
트리스탄 울로아....로렌조
Tristán Ulloa....Lorenzo
나와 님리....엘레나
Najwa Nimri....Elena
다니엘 프레이레....카를로스/안토니오
Daniel Freire....Carlos/Antonio
엘레나 아나야....벨렌
Elena Anaya....Belén
실비아 라노스....루나
Silvia Llanos....Luna
디아나 수아레스....벨렌의 어머니
Diana Suárez....Madre de Belén
하비에르 카마라....페페
Javier Cámara....Pepe

루시아와 로렌조

[섹스와 루시아]는 [북극의 연인들]의 거울상과 같은 영화입니다. 두 영화 모두 이야기의 기초 논리는 같습니다. 얄밉게 얽힌 운명 속에 얽힌 사람들의 수난사를 반쯤 장난스럽고 반쯤 진지하게 그려보이는 거죠.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타일은 정반대입니다.

[섹스와 루시아]에서 이야기의 기준점이 되는 것은 남자주인공 로렌조가 쓰는 소설입니다. 루시아라는 웨이트리스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6년 전 자기와 관계를 가졌던 엘레나라는 여자가 루나라는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소설을 씁니다. 그 소설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자기가 직접 겪은 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아주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소설이 쓰여지는 동안 로렌조는 계속 소설 주인공들과 상호 교류를 하고 있고 운명의 여신 역시 그를 드라마에서 완전히 풀어주지 않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거의 황당하기까지 한 운명의 미로 속에 빠져듭니다.

[북극의 연인들]이 엄격하게 규칙을 따른 수수께끼와 같은 영화였다면 [섹스와 루시아]는 즉흥적인 재즈 연주와 같습니다. [북극의 연인들]의 주인공들이 미리 짜여진 운명의 각본을 인지하고 그걸 충실하게 따른다면, [섹스와 루시아]의 주인공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메뎀의 세계 속을 방황하다가 엉겁결에 결말에 도달하게 됩니다. 각 캐릭터들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운명의 흐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건 아닌 거죠. 메뎀 세계의 운명은 [북극의 연인들] 때처럼 비교적 잘 짜여진 계획을 갖추고 있지만 [섹스와 루시아]는 그와 상관없이 마구 뜁니다. 심지어 제목도 그렇지요. [섹스와 루시아], 또는 [루시아와 섹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영화는 루시아라는 여성과 섹스에 대한 영화는 아닙니다. 둘 다 중요한 일부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죠.

[섹스와 루시아]는 혼란스러운 영화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의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할 겁니다. 영화가 난해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만큼 이야기의 구조가 혼란스럽고 산만하기 때문이지요. 단점은 당연히 아닙니다. 원래부터 그런 혼란스러움을 의도한 영화이고 그 역시 즐겨야 할 부분이니까요.

영화의 NC-17급 섹스도 그런 혼란스러운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주류 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섹스 묘사는 굉장히 강도가 센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장면들은 당연하고 즐거운 삶의 일부분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일상에서는 당연하지만 영화관에서는 극단적인 이 장면들은 마치 자기 검열을 까맣게 잊고 있는 예술가가 생각없이 즐거운 자유를 누린 결과처럼 보입니다. 물론 메뎀은 철저하게 의도적이었을 거고 제가 받은 인상 역시 그만큼이나 계획적으로 조작된 것이겠지만요. (04/12/21)

DJUNA

기타등등

참 늦게 본 영화입니다. 몇 년전부터 영화제에서 떠돈 작품이지만 계속 일이 생겨 놓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