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윤현

주연
고수....강성주
송지효....서유진
강성진....이형사
이동규....민재일
강신일....오반장
조경훈....추형사
정명준....김 반장
박철호....권철우
권민....정찬
조문홍....흑마왕
이유정....해킹녀
진군....성기준
김진훈....신참 형사
이상홍....야구 모자
이국호....중간 보스
김학현....형사 1
김기환....조직원 1
임성암....조직원 2
대룡....조직원 3

1.

강성주

경찰호송 중 탈취된 마약을 쫓던 강성주 형사는 우연히 용의자들의 사진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뒤 그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교통 리포터 서유진을 구출합니다. 유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를 구해준 이 남자를 언젠가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언제? 사건이 미궁에 빠지고 남자가 용의자로 몰리는 동안 리포터는 그게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맞다면 그날이 끝나기 전에 그가 자기를 구하려다 죽는다는 것도요.

2.

[썸]은 판타지의 요소가 살짝 가미된 정통 스릴러입니다. 스토리와 설정은 전통적인 형사물의 구조를 따르고 있긴 하지만 데자뷰 현상이라는 초자연현상이 양념처럼 살짝 가미되어 있죠. 리포터 유진이 체험하는 예지능력은 스토리의 기둥이지만 영화는 그 현상의 이유를 밝히는 것 따위엔 관심 없습니다. 영화는 유진의 예지 능력을 드물게 일어나는 자연 현상으로 인정하고 그걸 바탕으로 정통적인 형사 액션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이런 태도는 보기보다 교활한데, 신비주의적인 분위기가 가미된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는 바로 이 모호한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3.

수많은 선례들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매일 같은 날을 반복해 겪으면서 일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엑스 파일]의 [Monday] 에피소드군요. 곧 개봉될 제니퍼 러브 휴잇 주연의 감상적인 멜로드라마 [이프 온리]도 [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설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썸]이 이들 작품들과 닮은 건 이들이 공통된 작품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공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다른 작품들의 영향력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모든 이야기를 끝맺는 설정에서 텔레비전 시리즈 [24]의 영향을 읽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현대 도시의 사실적인 분위기가 뒤섞인 액션물을 짜면서 [프렌치 커넥션]을 무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요.

어느 쪽이 더 큰 영향을 주었건, 장윤현이 독창적인 소재나 주제를 창조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썸]은 노골적인 장르 게임입니다.

4.

[썸]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 서울이라는 공간의 활용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지형지물들은 익숙하지만 그 전체적인 총합은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극단적으로 모던한 이미지만을 골라내는 필터링 작업과 정말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과격한 액션 덕택에 영화 속의 서울은 흥미로운 초현실주의를 부여받습니다.

만약 50년대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었다면 그들은 이 작품을 SF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5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영화의 현대성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집착이 큰 것이지요. 영화의 이야기는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폐쇄회로 TV들로 구성된 전자 미로 속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5.

유감스럽게도 영화의 각본은 이 디지털 환경의 가능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많은 관객들은 중간중간에 이렇게 고함을 지르고 싶었을 겁니다. "바보야! 그냥 파일을 꺼내 이메일로 보내버려!" 아무리 사진 변조라는 설정이 들어갔다고 해도 '사진의 원본'에 대한 이 영화의 집착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이야기를 아날로그 사고로 접근하는 것이죠. 전 스토리 전개를 위한 무리한 설정엔 충분히 관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썸]처럼 극도의 모던함을 추구하는 영화에서는 보다 정밀한 설정이 필요했습니다.

영화의 각본이 설정이 요구하는 것만큼 충분히 영리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고도의 지능 게임이 될 수 있었던 이야기가 감상적인 운명적 러브 스토리 속에서 안이하게 흘러가고 마니까요. 하지만 비교적 산만한 사건 전개와 경제성이 부족한 배경 설명은 원래 각본 탓이라기보다는 툭하면 현장에서 각본이 수정되었던 제작 환경 탓일 겁니다.

6.

서유진

한석규, 전도연, 심은하와 같은 스타들을 캐스팅했던 장윤현의 전작들과는 달리 [썸]은 고수와 송지효라는 신인들을 주연으로 기용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잘하냐고요? 그냥 자기 위치에서 할 일만 합니다. 종종 대사들은 거칠고, 특히 교통 리포터 역을 맡은 송지효의 경우 짧은 혀 때문에 애를 먹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장윤현이 배우들에게 완벽한 연기를 기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연기가 거칠어 보이는 장면 대부분이 감독이 OK 사인을 지나치게 일찍한 결과처럼 보이거든요.

웃기는 건 이들이 여전히 [텔미썸딩]에 나오는 베테랑들보다 나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실한 편이고 쓸데없이 자의식의 함정에 빠지지도 않으며 이미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엔 "그렇다면 내가 범인이군요!"처럼 배우들의 발을 거는 대사나 장면들은 없습니다.

7.

[썸]은 의도만큼의 성과를 거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표를 높게 잡는 건 필요한 일이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꽤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곳저곳 미진한 부분들이 보이긴 하지만 성공한 부분도 적지 않고요.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숨기는 것 없는 장르 영화가 전작 [텔미 썸딩]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04/10/25)

DJUNA

기타등등

아까 이 영화가 1950년대 관객들에게 SF처럼 보일 거라고 말했죠? 그렇다면 2050년의 관객들은 장윤현이 첨단으로 깔아놓은 이미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