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류장하

주연
최민식....현우
김호정....연희
장신영....수연
윤여정....엄마
김영옥....재일 할머니
장현성....경수
김강우....주호
최일화....용석 아버지
김동영....용석
이재응....재일
변창석....악장
양현봉....심벌즈
이세은....수정

(스포일러가 하나 있지만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재일과 현우

류장하의 [꽃피는 봄이 오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허진호의 이름을 꺼내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류장하가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두 영화 모두에서 조감독으로 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영화와 허진호가 감독한 두 영화의 근본적인 유사점 때문이죠. 류장하는 허진호와 거의 같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극도로 관습적인 멜로드라마를 가져와 거기에서 모든 장르 클리셰들을 제거하는 것이죠.

허진호가 시한부 인생과 연인들의 이별을 소재로 다루었다면 류장하는 뻔한 음악 선생 이야기를 선택했습니다. 좌절한 음악가인 주인공이 탄광촌 중학교의 관악부 선생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막혔던 삶의 출구를 찾는다는 내용 말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관악부의 존폐여부가 달린 전국 대회고요. 스토리와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너무나도 공식적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종종 그 뻔뻔스러운 고의성에 미소짓게 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류장하는 이 공식적인 이야기를 공식적인 방식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반대로 심술궂은 청개구리처럼 정반대 방향으로만 가죠. 뭔가 있을 것 같던 약국 주인과의 로맨스는 끝까지 구체화되지 않고, "애들의 꿈을 이루어주자!"는 단순한 소망은 종종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타협하며, 관악부는 전국 대회에 나가지만 정작 얘들이 몇 등을 했는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아요. 특히 마지막은 정말 심술의 극치입니다.

고로 이 영화가 가진 묵직한 사실주의의 느낌은 일종의 예술적 기만입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거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장르 게임이니까요. 사실주의를 지향하는 영화라면 이렇게 장르 공식에서 벗어나기만 하지는 않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하면 아주 진부한 이야기를 쿨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정말 '얄팍하고 쿨하기만 한' 영화처럼 보이는 건 아닙니다. 영화가 날씬하고 세련되게 묘사한 탄광촌의 투박한 묘사는 여전히 삶의 체취가 묻어 있고 영화가 종종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뱉는 외침에는 와닿는 구석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쿨하기만 하기엔 굉장히 착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선량함과 가능성에 대한 낙천주의로 가득 차 있지요. 결국 영화의 관점은 관객들이 안심할만큼 통속적입니다. 류장하가 그처럼 청개구리처럼 굴었던 것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전체적으로 [꽃피는 봄이 오면]은 만족스러운 처녀작입니다. 최민식, 김호정, 장현성, 윤여정, 김영옥과 같은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김현, 이모개, 조성우와 같은 능력있는 스탭들에 의해 완벽하게 뒷받침된 멜로드라마죠. 만약 영화가 세련된 장르 게임에서 조금만 더 벗어나 소재를 깊이 들여다 봤더라면 진짜 괜찮은 영화가 나왔을 겁니다. (04/10/04)

DJUNA

기타등등

주인공 현우는 도약을 꿈꾸는 음악가답지 않게 몸을 너무 험하게 굴립니다. 제발 병원에라도 한 번 들르고 식습관도 바꾸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