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릭 프리드버그 Rick Friedberg

주연
레슬리 닐슨....딕 스틸
Leslie Nielsen....Dick Steele
니콜레트 쉐리단....베로니크 우크린스키
Nicolette Sheridan....Veronique Ukrinsky
찰스 더닝....국장
Charles Durning....The Director
마르시아 게이 하든....미스 체버스
Marcia Gay Harden....Miss Cheevus
앤디 그리피스....랜서 장군
Andy Griffith....General Rancor
엘리아 바스킨....우크린스키 교수
Elya Baskin....Professor Ukrinsky
스테파니 로마노프....빅토리아/바바라 달
Stephanie Romanov....Victoria/Barbara Dahl

1.

[스파이 하드]를 욕하는 것은 시체에다 총을 쏘는 것처럼 비겁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욕을 바가지로 먹어왔고 또 그 욕들은 사실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하고 지당한 것이었습니다. [스파이 하드]는 형편없는 영화고 재미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근사하게 욕을 하게 해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줄 만큼 논란거리가 많은 영화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뭣하러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2.

어제 저희들은 [에어플레인]을 다시 보았습니다. 본지 오래되어서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ZAZ 영화들이 정말로 쓸만한 것들이기는 했는지 한 번 체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ZAZ 영화들의 특성상 그들의 영화는 두 번째 보면 일단 김이 빠집니다. 심지어 본편 때문에 속편의 김이 미리 빠지기까지도 하지요.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에어플레인]은 꽤 재미있는 코미디였고 여전히 신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것들은 잘 만든 좋은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스파이 하드]는 지루하고 [에어플레인]이나 [특급비밀]은 재미있을까요? 그건 [에어플레인]이나 [특급비밀]이 요새 유행하는 패러디 코미디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ZAZ 영화들 중 아무 거나 빌려서 구체적인 패러디들을 세어 보세요. 뜻밖에도 그렇게 많지는 않답니다.

그건 ZAZ 영화가 장르 패러디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농담으로 써먹었던 것은 구체적인 영화나 장면이 아니라 장르의 매너리즘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르 매너리즘은 훨씬 사용폭이 넓은 소재이며 의미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건 개인을 상대로 싸우느냐, 집단을 상대로 싸우느냐의 차이입니다.

3.

노골적인 패러디 잡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영화는 ZAZ 영화들이 아니라 짐 에이브럼즈가 나중에 ZAZ에서 떨어져 나와 만든 [못말리는 비행사]입니다. 사실 [못말리는...] 시리즈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짐 에이브럼즈의 기본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못말리는...] 시리즈 이후부터는 정말 끔찍해집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패러디 영화가 왜 웃기는지, ZAZ 영화가 왜 그렇게 성공적이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단 영화 장면들을 베껴서 만들어 넣으면 이미 개그가 완성되는 걸로 알고 있단 말입니다. 그들은 일단 패러디를 심어넣고 그걸로 개그를 꾸며대려 하지만 그것들은 먹히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베끼는 것 자체가 뭐가 어쨌다는 거죠? 이건 한동안 국내에서 유행했던 패러디 프로그램들의 작가들에게도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레슬리 닐슨과 니콜레트 쉐리던이 [펄프 픽션]의 트위스트를 춥니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개그도 없습니다. 있는 건 그들이 춤을 춘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개그입니까? 오히려 [펄프 픽션]의 오리지널이 가지고 있던 유머와 신선함을 망가뜨릴 뿐입니다.

4.

하지만 [스파이 하드]의 진짜 나쁜 부분은 패러디가 아닌 조크들입니다. 이 부분들에서 그들은 패러디를 하는 대신 표절을 합니다. 떨어져 죽은 사람이 스프레이로 그은 자국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장면은 이미 [원초적 무기]에도 나왔습니다. 딕 스틸과 베로니크의 섹스신에 나오는 몽타쥬들은 [총알탄 사나이 2]에서 이미 나온 것들입니다. 베로니크가 딕 스틸에게 폼을 잡다가 공항 문에 부딪혀 넘어지는 장면 역시 [총알탄 사나이]의 등장을 조금 바꾼 것 뿐입니다. 게다가 그 모든 것들은 원작에 비해 형편없이 강도가 낮습니다. 설마 이런 것들도 '패러디'라고 우기지는 않겠지요?

5.

[스파이 하드]가 주는 교훈은 간단합니다. 어느 장르건 관객들을 만족시키려면 최소한의 노력과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그런 것도 없는 영화라면 그 작품은 존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96/09/21)

D&P

기타등등

위어드 알 양코비치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덜떨어진 타이틀 시퀀스가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영화의 가장 좋은 부분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