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도나 디치 Donna Deitch

주연
키어스틴 던스트....한나 스턴
Kirsten Dunst....Hannah Stern
브리타니 머피....리프카
Brittany Murphy....Rivkah
폴 프리먼....랍비
Paul Freeman....Rabbi
미미 로저스....스턴 부인
Mimi Rogers....Mrs. Stern
루이즈 플레처....에바
Louise Fletcher....Eva
니잔 샤론....에어리엘
Nitzan Sharron....Ariel
셸리 스칸드라니....리어
Shelly Skandrani....Leah
커스티 맥팔랜드....예타
Kirsty McFarland....Yetta

(이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실 분은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여기에도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다는 걸 밝혀둡니다.)

[악마의 계산]은 한마디로 홀로코스트 판 [오즈의 마법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한나는 평범한 미국 틴에이저입니다. 아마 그 평범한 삶 때문에 가족이 고집하는 유태 전통이 더더욱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가족 모임에서 포도주를 지나치게 마신 한나가 약간 얼얼한 상태에서 방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만 뭐가 잘못되어서 1941년의 유럽에 사는 유태인 소녀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한나는 '사촌'인 리프카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고 그녀는 지옥과도 같은 홀로코스트의 목격자가 됩니다.

이 텔레비전 영화의 원작은 제인 욜란의 동명 동화입니다. 이 노골적인 설정에 조금 당황하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평범한 주인공을 이런 식으로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는 식의 구성은 현대 아동 문학에서 아주 흔합니다. 이제 독자들도 이런 식의 이야기에 익숙해져서 별 문제 없이 그냥 받아들이지요.

그러나 영화는 다릅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식의 설정을 책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 독자들도 영화에서는 다른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의 나이를 높인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원작의 한나는 영화 속의 한나 보다 다섯 살 정도는 더 어립니다.)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지 않습니까?

이런 [오즈의 마법사]식 도약이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인가에 대한 질문도 나올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현대의 독자들한테 역사의 비극을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해주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조금 다르지요. 어차피 영화는 시청각을 위한 매체니까요. 꼭 그런 식의 가이드를 끼워넣지 않아도 충분히 현실감이 넘칩니다. 화면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의 모습이 나오는데 "아, 저건 반 세기 전 유태인들 이야기야. 내가 상관할 바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게다가 판타지는 쉬운 도구가 아닙니다. 잘못 다루면 주제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한나의 희생은 판타지가 개입되면 의미가 약해져 버립니다. 그건 일종의 도주니까요. 장르 관습에 익숙한 독자나 시청자는 한나가 정말로 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게 홀로코스트에서 현대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탈출구라는 걸 알지요. 판타지 때문에 정작 중심이어야 할 홀로코스트 이야기가 약해진다는 단점도 있고요.

더 불만인 것은 후반부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홀로코스트는 물론 끔찍한 일이고, 그 일을 겪은 뒤 한나가 유태인 전통에 호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강압적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홀로코스트를 겪은 모든 사람들이 유태교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이야기에는 '못된 아이를 혼내 길들인다'식의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좀 불편해요.

지금까지 불평만 늘어놓았는데, 계속 이러고만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 말하기 싫은 사적인 이유도 있고 또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영화에는 장점도 많으니까요.

가장 눈에 뜨이는 건 키어스틴 던스트와 브리타니 머피의 열연인데, 둘 다 잘하고 진지합니다. 루이스 플레처도 좋은 조연이고요. 이 셋이 엮여져 만들어내는 앙상블 역시 아름답습니다.

영화에서 도나 디치의 일관적인 성격을 파낼 수도 있지요. [데저트 하츠] 이후 이 감독은 기회가 닿는대로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홀로코스트보다는 이쪽이 더 잘 먹혀요. 한나와 리프카의 우정은 무척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고, 그 때문에 판타지의 위태로운 지지대 위에 서 있으면서도 영화의 정서적 힘은 강한 편입니다. 유명한 원작을 더 철저하게 배반할 수 있었다면, 러닝타임과 제작 일수가 충분했다면 영화는 훨씬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요. (00/04/27)

D&P

기타등등

더스틴 호프먼 아저씨가 영화 앞에 나와서 작품 소개를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