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밀리오 미랄리아 Emilio Miraglia

주연
안토니오 드 테페....앨런 커닝엄 경
Antonio De Teffè....Lord Alan Cunningham
마리나 말파티....글래디스 커닝엄
Marina Malfatti....Gladys Cunningham
에리카 블랑....수지
Erika Blanc....Susie
자코모 로시-스튜어트....리처드 팀벌레인 박사
Giacomo Rossi-Stuart....Dr. Richard Timberlane
로드 머독....앨버트
Rod Murdock....Albert
움베르토 라오....팔리
Umberto Raho....Farley
로베르토 말데라....조지
Roberto Maldera....George
조운 C. 데이비스....아가사 고모
Joan C. Davis....Aunt Agatha
마리아 테레사 토파노....폴리
Maria Teresa Tofano....Polly

글래디스와 앨런

[에블린이 무덤에서 나온 밤]의 주인공 앨런 커닝햄 경은 결코 딸을 내주고 싶은 부류의 남자는 아닙니다. 죽은 아내 에블린을 잊지 못해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막 나왔고 나온 뒤로는 에블린처럼 빨간머리인 여자들을 성으로 끌어들여 고문한 뒤 살해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마가 여자들을 죽이고 다니니, 영화는 비교적 전통적인 지알로로 시작되는 셈입니다. 물론 범인이 처음부터 드러나 있으니 아주 정통은 아니지만요.

영화는 앨런이 파티에서 글래디스라는 금발 여자를 만나면서 갑자기 방향전환을 합니다. 앨런은 글래디스를 죽이는 대신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하거든요. 네, 평범한 젊은 여자가 아직도 전처의 기억에 집착하고 있는 귀족 남자와 결혼해 그의 성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아직도 전처의 기억은 성 이곳저곳에 녹아 있고 침실엔 그녀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납골당에 있는 전처의 관은 텅 비어있고요. 에드거 앨런 포와 대프니 뒤 모리에가 반반씩 섞인 고딕 로맨스가 시작되는 거죠.

그렇다면 영화는 맘 잡고 끝날 때까지 순수한 고딕 로맨스를 밀어붙이는 걸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그러는 동안에도 장갑을 낀 수수께끼의 살인자가 계속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걸요. 그 중에는 희생자의 시체를 여우가 뜯어먹는 이탈리아식 악취미 장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두 요소의 결합은 은근히 괜찮습니다. 미랄리아는 일단 방향을 확실하게 잡고 있어요. 앨런의 성은 훌륭한 고딕 로맨스의 배경입니다. 70년대식으로 싼 맛이 나긴 하지만 그 야한 컬러의 악취미는 오히려 영화의 몽롱한 분위기를 더 잘 살려주는 편이죠. 모두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금발 하녀들 같은 괴상한 설정들이나 브루노 니콜라이의 70년대 유럽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음악도 장점이면 장점이지 단점은 아니에요.

미랄리아는 훌륭한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끌어가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정말 초자연적인 유령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람임이 분명한 살인자가 꾸준히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앨런과 글래디스 주변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사건들을 따라가면서도 논리적인 해결책을 기대하죠. 미랄리아는 적당히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그 신비스러운 사건들이 맥 풀리지 않게 적절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유명한 '관에서 기어나오는 에블린' 장면은 꽤 효과적이에요. 그렇게 무섭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요.

유감스럽게도 그가 공들여 쌓아놓은 분위기와 미스터리는 마지막 장에서 완벽하게 박살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진짜 유령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단점이 아니에요. 하지만 충분히 조용히 끝낼 수도 있었던 이야기가 괴상한 권선징악의 논리와 가해자 처벌을 위해 배배 꼬이고 늘어지자 영화는 그냥 부서져 버립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작정하고 마리오 바바의 후기 스타일로 밀어붙였다면 냉소적인 야유의 재미라도 있었겠지요. 이 영화는 그냥 바바 근처에서 어색하게 놀다가 어정쩡한 상태에서 퇴장해 버립니다. 얼마나 싱거운 결말인지. 지금이라도 전 이보다 훨씬 나은 결말 서넛은 생각해 낼 수 있어요. (06/05/12)

DJUNA

기타등등

미랄리아 박스 세트에 수록된 다른 영화인 [레드 퀸은 일곱 번 죽인다] 리뷰는 월요일에 올리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