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밀리오 미랄리아 Emilio Miraglia

주연
바바라 부셰....키티 빌덴브루크
Barbara Bouchet....Kitty Wildenbrück
우도 팔리아이....마르틴 호프만
Ugo Pagliai....Martin Hoffmann
마리나 말파티....프란치스카 빌덴브루크
Marina Malfatti....Franziska Wildenbrück
마리노 마세....경위
Marino Masé....Police Inspector
피아 잔카로....로즈마리
Pia Giancaro....Rosemary
시빌 대닝....룰루 팜
Sybil Danning....Lulu Palm
루돌프 슈나이더....토비아스 빌덴브루크
Rudolf Schündler....Tobias Wildenbrück

레드 퀸

에밀리오 미랄리아의 72년작인 [레드 퀸은 일곱 번 죽인다]는 같은 DVD 박스 세트에 수록된 [에블린이 무덤에서 나온 밤]과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같아요. 모두 에블린이라는 죽은 여자가 되살아나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이야기죠. 예술가들이란 무의식적으로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미랄리아의 경우는 의식적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에블린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반복될 리 없지요. 이 영화의 무대는 독일이니 이 이름은 조금 튄단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레드 퀸은 전설 속의 존재입니다. 몇 백년 전 독일의 어느 성에 레드 퀸과 블랙 퀸이라는 사이가 안 좋은 자매가 살았는데, 블랙 퀸이 레드 퀸을 죽였고 레드 퀸은 다시 살아나 무고한 사람 여섯과 블랙 퀸을 죽였다는 거죠. 그냥 이렇게 일이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그런 일들이 이 성에 사는 자매들에 의해 백 년마다 반복된다는 거고요. 짜증나죠? 더 귀찮은 일은 20세기에도 잠재적인 블랙 퀸과 레드 퀸이 될 가능성이 있는 키티와 에블린이라는 자매가 성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둘은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엄청 안 좋았다고요.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야기는 정말로 전설처럼 흘러갑니다. 키티는 에블린과 싸우다가 그만 실수로 동생을 죽여버립니다. 그녀는 시체를 성의 납골당에 숨기고 동생이 미국에 갔다고 사람들을 속이지만, 곧 붉은 망토를 입은, 에블린처럼 생긴 여자가 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죠. 희생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키티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일곱 번째 희생자가 자신임은 너무나도 분명하니까요.

이건 초자연적인 현상일까요? 아뇨. 이 영화는 모범적인 지알로예요. 후반부에서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 황당한 사건들에 대한 현실적인 답변이 제시되지요. 그 논리가 믿음직하냐고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유령 이야기보다 더 믿기 어려울 정도죠. 그러나 지알로라는 장르가 원래 그렇잖아요. 피와 누드는 넘쳐나지만 논리와 이성은 찾기 어렵죠.

미랄리라의 이 영화에서도 논리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레드 퀸의 전설은 자극적인 살인과 누드를 제공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죠.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칼에 찔리거나 쇠창살에 목이 찔리거나 달리는 차에 끌려가다 가로등에 머리를 박고 죽습니다. 누드 장면에 대해서는... 여럿 있는데, 그 중엔 순전히 바바라 부셰의 옷을 벗기는 게 목적인 강간 장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재수 없어요.

그래도 레드 퀸은 썩 좋은 호러 괴물입니다. 새하얀 얼굴에 빨강 망토를 입은 모습부터 인상적이죠. 후반부의 설명이 다 망쳐놔서 그렇지, 돌아다니면서 발산하는 미스터리의 분위기도 아주 좋고요. 더 실력있는 테크니션의 손에 들어갔다면 좋았을 겁니다. 이 영화의 살인 장면들은 그렇게 잘 짜여진 편이 아니거든요. 아르젠토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장의 손길을 기대해서는 안 돼요. 편집은 투박하고 촬영도 그렇게까지 잘 짜여진 편은 아니지요. 단지 풍부한 70년대식 뻔뻔한 컬러로 채워진 미술과 브루노 니콜라이의 야한 음악은 수준 이상이에요.

[레드 퀸은 일곱 번 죽인다]와 [에블린이 무덤에서 나온 밤]을 일대일로 비교한다면? 전체적인 인상은 [에블린이 무덤에서 나온 밤]이 조금 더 좋더군요. [레드 퀸]은 평범한 편이죠. 하지만 [레드 퀸]은 [에블린]처럼 결말에서 공든 탑을 확실하게 날려버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좋은 결말은 아니지만 [에블린]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말이죠. (06/05/15)

DJUNA

기타등등

미랄리아 박스 세트에는 부록으로 레드 퀸의 피규어가 들어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