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빗 예이츠 David Yates

주연
짐 브로드벤트....알프레드 솔티나
Jim Broadbent....Alfred Salteena
휴 로리....버나드 클락 경
Hugh Laurie....Lord Bernard Clark
린지 마샬....에셀 몬티큐
Lyndsey Marshal....Ethel Monticue
빌 나이히....클린챔 남작
Bill Nighy....Earl of Clincham
제프리 파머....미니트
Geoffrey Palmer....Minnit
사이먼 러셀 빌....웨일즈 공
Simon Russell Beale....Prince of Wales
애덤 가들리....프로큐리오
Adam Godley....Procurio
소피 톰슨....베시 톱
Sophie Thompson....Bessie Topp
샐리 호킨스....로잘린드
Sally Hawkins....Rosalind
리첸다 케리....레이디 게이 핀츨링
Richenda Carey....Lady Gay Finchling
앤 리드....몬티큐 부인
Anne Reid....Mrs. Monticue
앨런 베넷....나레이터
Alan Bennett....Narrator

에셀과 알프레드

1890년 여름, 데이지 애시포드라는 아홉살짜리 소녀가 [The Young Visiters]라는 제목을 단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애시포드가 12일 동안 2펜스 짜리 노트북에 연필로 또박또박 써서 완성한 이 소설은 애시포드가 쓴 다른 소설들과 함께 집 안에 묻혀 있다가 1916년에 잘못된 문법과 철자를 수정하지 않은 채 출판되었습니다. 아홉살짜리 꼬마가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많은 독자들은 한동안 이 소설이 서문을 쓴 제임스 배리의 작품이라고 믿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애시포드의 소설 [The Young Visiters]는 알프레드 솔티나라는 중년신사가 같은 집에 사는 에셀 몬티큐라는 젊은 여성과 함께 친구인 버나드 클락 경의 성을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네, 여기서 'The Young Visiters'는 알프레드와 에셀입니다. 알프레드가 'an elderly man of 42'이니 말이 안되긴 합니다만.) 성에 머무는 동안 버나드의 환경에 질투를 느낀 알프레드는 에셀과 어울리는 진짜 신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버나드가 써 준 소개장을 받아들고 신사수업을 받기 위해 수정궁에 사는 클린챔 남작이라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순진하게도 에셀을 버나드의 성에 남겨놓고요.

현대 성인 독자들에게 [The Young Visiters]는 의도하지 않은 언어 농담입니다. 데이지 애시포드는 아홉살짜리 답지 않게 어휘가 풍부하고 로맨스 소설의 관습에도 익숙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문장 안에 제대로 담을만큼 문법과 철자가 굳지는 못했죠. 그 때문에 애시포드의 소설은 독특하게 망가진 문법과 귀여운 엉터리 철자들로 구성된 언어의 서커스가 됩니다.

데이지 애시포드가 그리는 세계는 그보다 조금 더 설명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우선 애시포드는 자기가 다루는 세계에 대해 아주 무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곳에 살면서 어린아이의 눈으로 꾸준히 관찰하고 있었고 책도 꽤 많이 읽었지요. 하지만 그 세계를 유지하는 시스템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나 무관심했으며 전체적인 이해도 어린아이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The Young Visiters]는 이중적이 됩니다. 이야기의 무대나 설정은 어처구니없고 순진하며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핵심을 구성하는 심리묘사나 사건 전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애시포드가 규격화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를 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되기 쉬운 설정인데도 불구하고 이 어린 작가는 안전한 길을 걷지 않습니다. 반대로 [The Young Visiters]는 영국 계급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조섞인 회상입니다. 어느 페이지에서는 계급사회의 우스꽝스러운 시스템에 대해 날카로운 장난감 칼을 휘둘러 대는 풍자가였다가, 다른 페이지에서는 아무리 우리가 무언가를 절실하게 갈망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세계에서는 그게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쫑알거리는 뻔뻔스러운 아홉살 꼬마를 한 번 상상해보세요. 기가 막혀 어이가 사라질 지경입니다.

오늘 제가 다룰 데이빗 예이츠의 BBC 영화는 데이지 애시포드가 쓴 소설을 보다 중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애시포드의 소설은 조숙한 아홉살 소녀가 자신의 짧은 지식과 제한된 이해력을 통해 재구성한 어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예이츠의 영화는 21세기 초를 사는 어른 전문가들이 19세기 말을 살았던 꼬마 소녀의 마음과 실제 빅토리아 시대를 번갈아 응시하며 그 사이에서 위태로운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각색가인 패트릭 발로는 원작이 된 이야기에 조금 더 강한 드라마와 논리를 부여했습니다. 일단 알프레드 살티나와 에셀 몬티큐의 다소 수상쩍은(?) 동거에서 곧장 시작되는 원작의 도입부를, 알프레드가 에셀을 열차에서 만나 첫눈에 반하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고쳤지요. 알프레드와 에셀, 버나드의 삼각관계도 조금 더 날카로운 긴장감이 돌게 순서를 바꾸었고요. 알프레드가 느끼는 계급의식도 원작보다 훨씬 분명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여전히 비현실적이지만 그게 이 각색의 단점이 되는 건 절대로 아니죠. 전체적으로 발로는 애시포드의 순진무구한 어투와 묘사를 살리거나 재창조하면서도 엄격한 어른들의 관점을 뒤에 숨겨놓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이츠와 발로는 애시포드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재구성했습니다. 역무원들이 런던을 예찬하는 노래를 불러대고 버킹엄 궁전에서 아이스크림을 얹은 젤리를 대접하며 신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모자 쓰는 방법을 강제로 가르치는 장치들이 있는 곳 말이죠. 예이츠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는 사람인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환상물의 솜씨가 어떻게 [해리 포터]에 반영될지 기대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연기입니다. 짐 브로드벤트, 휴 로리, 빌 나이히와 같은 노련한 배우들이 모두 자신의 캐릭터들을 어른 흉내내는 어린아이처럼 연기하고 있어요. 감정은 숨기는 것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필요하다면 예의 따위는 잊고 어린아이처럼 질주하며, 글을 쓸 때는 막 쓰는 법을 배운 어린아이처럼 서툰 인쇄체로 쓰는 거죠. 특히 린지 마샬과 짐 브로드벤트는 주목할만 합니다. 린지 마샬이 연기한 에셀은 원래부터 조금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캐릭터라 그런 과장된 순진함이 오히려 이상적인 경우입니다. 짐 브로드벤트의 경우는 거의 채플린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툭하면 자빠지는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를 연기하는 동안에도 비극적 로맨스 주인공의 페이소스가 철철 넘쳐흐르는 거죠.

[The Young Visiters]는 모순되는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원작이 그런 것처럼 귀엽고 순진하며 괴상합니다. 하지만 알프레드가 한동안 떠났던 일상으로 돌아와 옛사랑의 아픈 기억을 씁쓸하게 회상하는 마지막 장면 같은 건 아이러니가 섞이지 않는 진지한 감동을 자아내죠. 이런 깊은 감정이 아직 철자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홉살 꼬마가 쓴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다니, 세상은 참 신비스럽게 돌아갑니다. (05/03/02)

DJUNA

기타등등

1. 원작을 읽고 싶으시다면 여기로 가세요. 그렇게 긴 소설은 아니니까 온라인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2. 샐리 호킨스가 여기서도 하녀로 나옵니다. [티핑 더 벨벳]에서처럼 섹시한 역은 아니지만요.[핑거스미스]는 3월 말에나 방영한다는군요. 슬슬 공식 페이지가 뜰 때가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