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샐리 포터 Sally Potter

주연
조운 앨런....그녀
Joan Allen....She
시몬 아브카리안....그
Simon Abkarian....He
샘 닐....안소니
Sam Neill....Anthony
셜리 헨더슨....청소부
Shirley Henderson....Cleaner
스테파니 레오니다스....그레이스
Stephanie Leonidas....Grace
쉴라 행콕....고모
Sheila Hancock....Aunt
사만다 본드....케이트
Samantha Bond....Kate

'그녀'

여자는 영국인과 결혼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생물학자, 남자는 영국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레바논인 외과의사입니다. 둘은 남자가 일하는 식당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섹스와 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놓여 있는 문화와 인종, 성의 경계선은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샐리 포터의 [예스]는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두 주인공의 기본 설정부터가 이슈를 외쳐대고 있지요. "난 지금부터 인종과 성과 정치와 종교와 과학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라고요. 실제로 포터는 영화를 끌어가는 동안에도 주제를 드라마 속에 감추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모든 주제들은 살갗 위에 놓여 있고 관객들 눈 앞에서 공공연하게 토론됩니다. 연극의 장처럼 딱딱 나뉘어진 시퀀스들은 모두 화면 위에 등장한 두 캐릭터들이 나누는 거창한 주제의 대화들로만 구성되어 있지요. 심지어 이런 주제들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청소부들이나 요리사들과 같은 조연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맨 처음 등장하는 청소부는 공공연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며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하죠.

무척 건조한 설정이고 이런 식의 영화는 지루한 설교로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거창한 주제들은 재미있거나 의미있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요. 포터의 영화 역시 대단한 결론은 내리지 못합니다. 주제와 문제점들은 제시되기만할 뿐 해결책이나 더 흥미로운 문제점들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스]는 은근히 감칠맛 나는 재미를 안겨줍니다. 일단 기본적인 각본부터 그래요. 21세기 초의 국제정세와 성역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영화의 대사들은 약강오보격의 운문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캐릭터들이 현대 옷으로 갈아입고 중동사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죠. 게다가 포터는 단순한 토론으로 만족하는 대신 여기에 섹시하거나 음탕한 질감을 넣어 줍니다. 이 영화 속의 연인들은 바로 옆에 누워있는 육체보다 그들이 나누는 관념적인 대상에 대한 토론에 더욱 도취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관객들도 그럴 거예요.

[예스]의 시청각적 인상도 흥미롭습니다. 섹시하게 겹쳐지는 이중의 보이스 오버나 주어지는 모든 매체들의 질감을 이용한 화면과 같은 영화적 장치들은 영화의 무뚝뚝한 연극적 구조를 조금씩 배반하고 있지요. 물론 장님이 아닌 이상 그 한가운데에 긴장한 바이올린 활처럼 서 있는 조운 앨런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포터의 [예스]는 표리가 바뀐 영화입니다. 심오한 이슈와 토론을 장식용 옷으로 입은 감각적이고 시적인 로맨스지요. 말을 해놓고 보니 굉장히 위선적인 영화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는 게 전혀 없는 영화니까요. 게다가, 드라마의 부재와 다소 늘어지고 안전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05/04/13)

DJUNA

기타등등

샘 닐은 이번에도 오쟁이진 남편입니다. 기네스에라도 오르려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