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 좋은건 아는데, 그래서 뭘 어찌해야 하냐!! 는 의문은 저도 가지고 있고 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이더군요. 문제가 되는 부분은, 명상법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겁니다. 그것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단 하나의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에 따라 적합한 명상법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그렇기에, 무도님도 말씀하셨고, 기타 여러분들도 지속적으로 하시는 말씀으로, 명상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며,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시더군요. 종교적으로는 제가 잘 모르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테고(인연이라던가..),  과학적으로는...아마 타고난 뇌와 몸의 기질의 차이 (주의력의 성질의 다양성이라던가..)에 적합한 명상법을 찾아야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정도로 이해만 하고 있습니다. 서양명상가들 중에서는 '조용하고 자극이 별반 없는 시대에 개발되어 전수된 명상법 말고, 정신없이 바쁘고 책임질 것이 많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명상법을 따로 개발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사람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적합한 명상법은 참 다양한가봐요.

 

하여간 다양한 명상법이 존재하며, 그 것 중 자신에게 맞는 방법과 그에 맞는 스승을 찾는 것이 핵심 중 핵심이라는 것.. 명상 중 위빠사나 명상법만 해도 방법이 상당히 다양한가봅니다.  순서도 그렇고 하는 방법도 그렇고..   (제가 왜 위빠사나에만 관심을 두냐.. 그거야 우울증 재발 방지에 '임상적으로 효능이 증명된' 명상법이 위빠사나이기 때문에 -ㅅ- 간화선이 임상적으로 효능이 증명되었다면 간화선을 파고 있겠죠.)  오늘 발췌하는 책의 명상법도 다양한 명상법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서점에서 노닥거리다가 '아짠 차' 스님 사진이 있길래 낼름 집어온 책 제목은 <붓도 위빠사나> (아짠 차 지음, 김열권 옮김, 솔바람 출판)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이거 어디서 봤는데-_-' 싶은 마음이 그득하더만, 알고 보니 이 책의 이전 판을 가지고 있더군요. (개정판인듯-_- 결국 같은 책 두 권..)

 

하여간 이 책의 주인공이신 아짠 차 스님 (Phra Ajahn Chah, 1918-1991)은 태국의 대 승려로, 왓 빠 뽕 사원(?)을 만드신(??) 분입니다. (불교신자가 아니어서, 무슨 단어를 써야 적절한지 모르겠네요;; 스님이 숲 속에 수행하고 있는데 스님 따라 수행하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숲 속에 사원이 만들어졌고, 나중에는 이게 태국과 서양까지 50여개 넘는 분원이 생겼다고..) 하여간 서양제자들을 아주 많이 배출하셨나봐요. 제가 좋아하고 즐겨 읽는 서양 명상 관련 서적 저자들 중 상당수가 이 스님의 제자 -ㅅ-시더군요. 아짠 차 스님은 다양한 위빠사나 수행법 중 '집중력이 약한' (나인가!)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하는, '붓도'를 염불하며 호흡관찰로 시작 (호흡관찰은 '아나빠나삿띠'라고 합니다. 석가모니가 이 명상법으로 해탈을 하셨다고...), 사념처 (몸, 감각, 마음, 법) 관찰로 이어지는 '염불위빠사나'로 해탈하신 분이라네요. 즉 이 책에 담긴 스님의 설법 중 수행법에 관해 설하신 부분은 '염불 위빠사나'에 대한 것입니다.

 

아래는 '염불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아짠 차 스님의 설법 중 하나(염불 위빠사나의 극 기초를 설명하신 부분 -ㅅ-)와,그 염불위빠사나를 생활 속에서 직접 해 본 한국 한의사분의 수행기 (다 책에 실려 있습니다.)를 부분 발췌합니다.

 

흥미가 동하시면 책을 사보세엽..

 

아잔 차 지음, 김열권 옮김, <붓도 위빠사나 Buddhanussati>  솔바람 출판.

 

참고로 '위빠사나', 직접 가서 배우련다! 하시는 분은 '위빠사나 수행 가이드' <-- 이 곳을 가보세요. 국내 위빠사나 수행 관련 선원들이 거의 다 정리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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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도 위빠사나> p. 104~116

 

1978년 7월, 왓 빠 뽕의 우안거 결제일 법회에서 갓 계를 받은 신참 스님들에게 설한 법문. [보통 일반신자들이 아닌 스님들에게 하신 강연?이니 그 부분을 감안하고 읽으세요.]

 

들어가기에 앞서..

 

 붓도 (Bud-Dho)는 일종의 '만트라'로, '옴마니밤메훔', '나무아미타불 뭐 이런 것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단어는 빨리어(석가모니가 설법할 때 사용한 언어.)로 '붓다'의 주격형이라고 하네요. 기본 뜻은

1) 석가여래처럼 깨달음을 얻은 인격적 붓다  

2) 벽지불, 아라한같이 깨달음을 얻은 성자 

3) 탐(욕망),진(성냄),치(진리에 대한 무지?)가 없는 청정하고 무량한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찬 볼래 마음자리인 심즉시불, 혹은 자성불.  

4) 반야(프라즈냐)인 '아는 마음'   

 

 여기서 아짠 차 스님이 '붓도 붓도...'하며 호흡을 관찰하라고 할 때 '붓도...'의 강조 용법은 4번째, '아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주시하십시오. 설사 다른 이들이 물구나무를 서더라도 그것은 그들 일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직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밖에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를 알아차리십시오. 숨을 들이쉴 때는 '붓 Bud', 내쉴 때는 '도 Dho'라고 염속하면서 호흡관찰을 이어나가십시오. 이를 알아차림의 주제로 삼으십시오.

 

잠시 동안 계속해서 이렇게 행하십시오. 숨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줄 알아차리고 나가면 나가는 줄 알아차리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산만함이나 불안감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직 숨만 지속적으로 들고납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렇게만 하십시오. 일체 생각을 놓아 버리십시오.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여전히 편안하고 평화로운 단계에 이를지라도, 그대 자신 안에서 그 편안함이나 평화로움을 알아차리십시오.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해 나가면 호흡이 더욱 섬세하고 유연해지며, 몸이 이완되고 마음도 유연해집니다. 한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계속 이와 같이 해 나감으로써 알아차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십시오. 편한 자세로 앉아 고요함 속에 확실히 자리 잡게 되면 멍해지거나 나른해져 꾸벅꾸벅 조는 일도 없어지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절로 수월하게 이루어집니다. 이제 그대는 평화롭습니다.

 

이윽고 가부좌를 풀고 일어서면서 그대는 '아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며 종전의 그 오묘한 평화로움의 정체를 계속 파고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대는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고 분명한 마음챙김을 유지하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즉 탁발하러 가든 발우를 닦거나 음식을 먹든 간에 자신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챙김을 꾸준히 유지하십시오. 언제 무엇을 하든 지속적으로 마음챙김을 행하십시오.

 

경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둘레가 7~8아름 정도 되는)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을 오가며 걷는 경행도[걸으며 하는 명상의 일종] 수행의 핵심은 좌선수행과 동일합니다. 즉 마음을 집중시킨 다음, 분명한 마음챙김이 일어나기에 충분하도록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힐 것을 다짐하면서 경행에 들어갑니다. .....  먼저 오른발부터 내딛으십시오.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매 걸음마다 마음속으로 '붓도, 붓도'를 되뇌도록 하십시오. 경행 내내 자신의 발을 주시하십시오. 망상이 일거나 불안해지면 평온해질 때까지 걸음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십시오. 경행의 처음 중간 끝을 알아차리고 길 끝에서 걸음을 되돌림을 알아차리십시오. 매 순간 그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알아차리십시오.

 

이상이 경행 수행법입니다. ..."같은 길을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게 수행이라니! 어리석은 짓이지!" 하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대도 알다시피, 경행에는 많은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

 

한가지 더 알아 둘 것은 자세를 바꿔 가며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즉 서서 하는 입선, 앉아서 하는 좌선, 누워서 하는 와선 등으로 자세를 바꿔가면서 계속 수행하는 것을 이릅니다. 줄곳 한 자세로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각각의 자세에서 알아차림을 계발하고 이들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

 

호흡을 주시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즉 의심하고 괴로워하던 끝에 지혜가 일어나게 될 때까지 호흡을 계속해서 주시해야 합니다. ...집중하십시오.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호흡을 주시하십시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얹어 다리를 교차시키는 결가부좌 자세로, 균형을 잡아 똑바로 앉으십시오. 들숨이 복부에 도달할 때까지 숨을 들이쉬고, 폐에서 공기가 모두 빠져 나갈 때까지 숨을 내쉬십시오. 숨이 찰 때까지 들이쉰 다음 내쉬십시오. 호흡을 일정하게 조절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호흡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앉은 자세로 숨이 자연스럽게 들고남을 지켜보십시오. 호흡을 놓치지 마십시오. 만약 호흡을 놓치면 멈추십시오. 호흡이 어디로 가 버렸는지 찾아내서 다시 주시하십시오.

 

조만간 그대에게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꾸준히 수련하십시오.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수행은 땅에 볍씨를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가끔 그대는 회의를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 앉아 오직 호흡만 지켜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호흡이란 놈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란 존재 없이도 저절로 들고날 터인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단지 핑곗거리를 찾는 편견에 불과합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은 다 떨쳐 버리고 평온해질 때까지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십시오. 평온해지면 호흡이 섬세해지고 몸과 마음도 편안해져, 모든 것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호흡의 들고남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될 때까지 좌선을 계속하십시오. [계속 호흡에 알아차림을 하면서 앉아있다보면 호흡이 아주 섬세하고 가늘어지다 못해 아예 숨 쉬는 기척이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함. 아무리 기를 쓰고 찾아봐도 숨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태를 겪어도 너 지금 살아있으니까 놀라지 말라..이 이야기.]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호흡이 멈춰 버렸다는 생각에 놀라 도망치려 하지 마십시오. 이는 이제야 비로소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어떤 것도 하려 하지 말고, 오직 평온함 속에서 좌선에만 몰입하십시오. 가끔은 숨조차 쉬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호흡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들은 자주 발생할 수 있지만, 괜찮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속지 말고, 이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리기만 하십시오. 계속 이렇게 수행해 나가십시오. 이 같은 좌선수행을 자주 하십시오.

 

식사 후에는 바로 가사를 걸치고 경행에 나서십시오. '붓도, 붓도' 하며 경행길을 따라 걸으십시오...경행을 짧게 끝내려 하지 마십시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잠시 걷다 처소로 돌아가서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리는, 그런 방일한 수행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깨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나태해서야 언제 수행을 끝마치겠습니까? 피곤해하거나 게으름부리다가 언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게으름을 극복하고 오직 전심전력으로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평화로움, 평화로움...'하며 말로만 찾지 마십시오. 그런 식으로 수행을 하고, 곧바로 평화로워지지 않으면 쉽게 포기해버리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무릇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 실제로 어떤 일을 해보는 것과 그에 관해 말만 늘어놓는 것은 판인하게 다릅니다. 알다시피 수행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대는 평화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평화가 저기에 있구나!' 하는 식으로, 그러나 아직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을겁니다. 그러니 오로지 '붓도 붓도...'하면서 자신의 호흡이 들고남을 알아차리기만 하십시오. 이것으로 족합니다. 바로 이것만 행하십시오. 많은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분간은 오늘 배운 이 수행법만을 터득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행해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행하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문제될 것 없습니다. 단지 이 수행에만 전념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이 수행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행하여 알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앉아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그야말로 만사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마음이 진정 평화로워지면 이렇게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대는 새벽까지 밤새 앉아 있을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앉아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어느덧 좌선을 즐기게 됩니다. 이 같은 놀라운 변화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좌선이 마치 즐거운 놀이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

 

기분 내키는 대로 휩쓸려서는 안됩니다. 게으를 때도, 부지런할 때도, 항상 이를 견디어 내십시오. 좌선과 경행을 게을리 하지 말고, 누워 있을 때조차 자신의 호흡을 주시하십시오. 잠들기 전에는 '잠의 달콤함에 빠지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십시오. 깨어날 때도 명상수행을 이어 가십시오.

 

또 식사할 때도 '나는 이 공양을 탐욕으로 취하지 않으며, 단지 오늘 하루 동안 나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약으로, 수행을 이어나가기 위한 충분한 힘을 지니기 위하여 이 공양을 듭니다.'라고 스스로를 일깨우십시오. 이처럼 공양 들기 전에 스스로를 일깨우듯이, 잠들기 전에도 스스로를 일깨우십시오. 서 있을 때는 서 있음을 알아차리고, 앚아 있을 때는 앉아 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누워 있을 때도 누워 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무엇을 하든 이렇게 수행하십시오.

 

누워서도, 오른편으로 돌아누워' 붓도 붓도...'하면서 자신의 호흡을 잠들 때까지 주시하십시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붓도 붓도...'를 이어나가십시오. 마치 잠자는 동안에도 한 호흡도 놓치지 않았다는 듯이, 그렇게 하다 보면 이윽고 평화로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계속 마음챙김을 유지하십시오.

 

...

 

좌선에 들 때는 앉은 채로 몸의 균형을 잡은 후에 상체를 곧추세우십시오.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앞으로 숙이지 말고 똑바로 세우십시오. 그러면 불상처럼 꼿꼿하고 환한 모습으로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

 

음식을 먹을 때에도 알아차림을 놓치지 마십시오. 음식을 씹고 있음을, 삼킴을, 그리고 삼킨 음식이 어디로 흘러내려 가는지를 알아차리십시오. ...식사법도 개선하십시오. 다섯 술이 넘어 만복감이 느껴지기 전에 식사를 끝내십시오. 그리고 충분한 양의 물을 마시도록 하십시오. 이와 같이 직접 한번 시도해서 어떤지를 보십시오.......그러면 경행이나 좌선을 할 때 몸이 가뿐하게 느껴져 수행 또한 저절로 향상될 것입니다. ...

 

잠을 잘 때도 랑라차리십시오. 이것은 그대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때때로 그대는 제시간에 자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일찍 자든 늦게 자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것이 내 방식입니다. 늦게 자든 일찍 자든 상관없이 나는 처음 깨었을 때 바로 일어납니다. 자고 깨는 문제로 수선떨지 마십시오. 그런 문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처리해 버리십시오.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아직 졸리다면 바로 일어나십시오. 일어나 세수한 후 경행을 시작해서 곧바로 걸어 나가십시오. 이것이 자신을 수련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이렇게 행하십시오.

 

....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들이 마음수련의 첫 단계 수행법입니다. [-_-]  그러나 남이 전하는 수행법을 그저 듣기만 하는 데서 그친다면 그것들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실제 수행을 통해서만 분명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

 

명상수행을 할 때는 오직 한 가지 대상[호흡]에만 초점을 맞추십시오. 좌선자세로 오로지 호흡이 들고나는 것만을 끊임없이 지켜보면 서서히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경행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마음이 방황하면 제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행하던 것을 잠시 멈추십시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게 되면 참아낼 수 없을 때까지 숨을 멈추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좌선 중에 마음이 이리저리로 날뛰게 될 때도 숨을 잡고 내뱉지 않아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도록 하면,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단련시키십시오. '마음 길들이기'는 짐승을 길들이는 것과 달라서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레 낙담하지 마십시오. 때때로 가슴이 터질 지경에 이를 때까지 숨을 참아보십시오. [안죽습니다] 이 같은 수련은 마음을 잡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음은 제자리에 돌아오고야 맙니다.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

 

마음을 챙기는 수행은 물병에 담긴 물과 가습니다. 물병을 조금 기울이면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좀 더 물병을 기울이면 쪼록쪼록 흘러내립니다. 우리의 마음챙김도 이와 같습니다. 만일 물병의 물을 다 부으면 뚝뚝 떨어지던 물은 물병 주둥이로부터 계속해서 줄줄 흘러내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 있든, 걷든, 누워 있든, 무엇을 하든 간에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챙김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아집니다. 마음챙김에 온 힘을 쏟아 붓는다면 끊임없이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방황하며 이 생각 저 생각 기웃거리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챙김은 단지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길들이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잡생각에 빠지거나, 불안정하거나, 계속 집중하지 않는 것 등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오직 끊임없이 수행하여 알아차림이 끊이지 않고 지속될 때까지 계발해 나가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눕거나, 무엇을 하건 간에 알아차림이 항상 함께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직접 행하여 터득하십시오.

 

하지만 단지 가부좌를 틀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고 해서 이 같은 상태가 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지나칠정도로 노력한다 해도 그 상태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일절 노력하지 마십시오. 아직은 그것을 해낼 수 없습니다. 이를 명십하십시오.

 

그렇게 해 나가면 때로는 그대가 좌선조차 하지 않으려 해도 그대의 수행은 저절로 완수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대는 앉아서 마음을 비웁니다. 그러면 (탁!) 그대는 곧바로 평화로워집니다. 이제 그 평온함 속에서 쉬십시오. 바로 그 자리에 도달하였으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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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도위빠사나를 생활 속에서 수행하신 분의 수행기입니다. 선향화(47, 한의사)님의 수기로, '어떻게 하면 남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간직한 채 자비행을 실천하며 사시다가 1999년 김열권(이 책의 역자)님의 수행강좌를 듣게 되면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되셨답니다.

 

수행기의 전반부, '붓도 염불 위빠사나'를 실생활에 수행하는 부분을 묘사한 부분과, 이것으로 무아삼매에 드는 경지에 대해 쓴 부분까지만 옮길게요.

 

<붓도 위빠사나> p. 302-307

 

선생님의 염불위빠사나 강의를 듣고 직접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곧바로 소리 내어 붓도를 염송하기 시작했다. 세수할 때는 속으로 붓도를 암송하고 식사를 준비하면서는 소리 내어 염송했다. 식사할 때는 속으로 '붓도' 하면서 수저를 들고, '붓도'하면서 음식을 씹고 삼키고... 속으로 '붓도 붓도...'하면서 밥을 먹자니 밥 먹는 동작이 느려지고, 음식 맛도 제대로 모르겠고, 밥을 입에 넣고 반찬을 집어야 하는데 그 동작이 이어지지 않았다. 붓도에 의식을 집중하자 밥이나 반찬을 집으려는 의도가 일어나지 않아서 밥 먹는 행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붓도 암송을 중지하고 염불에 밀착되어 있는 마음을 바라보았다.

 

서너 번 자연스럽게 호흡을 과날한 후에 밥을 먹으려는 의도와 '붓도' 하려는 의도가 일어남을 바라보면서, 약간 의식적으로 밥을 뜨면서 '붓도 붓도'하고, 밥을 입에 넣고 '붓도 붓도', 반찬을 집어야지 '붓도 붓도' 반찬이 짜구나 '붓도 붓도', 국물이 뜨겁구나 '붓도 붓도'...

 

그렇게 한참을 하다 보니 서서히 밥 먹는 행위와 붓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매끄럽게 이어졌다. 언뜻언뜻 밥 먹는 행위 따로, 붓도 따로, 의도 따로, 아는 마음 따로, 토막토막 끊어져 보이기도 했다.

 

'붓도' 하려는 의도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차츰차츰 의도의 일어남, 사라짐이 빨라지면서 '붓도 붓도...'도 빨라져서 어느새 의도는 보이지 않고 '붓도 붓도..'만 속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을 가면서도 붓도는 호흡처럼 계속되어, 장애물이 있어 옆으로 피하면서도 '붓도 붓도' 할 만큼 마치 붓도에 의해 행동이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게 붓도가 이어졌다. 전철 안에 앉아서도 눈을 감고 속으로 계속 '붓도 붓도..'를 암송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전철의 덜컹거림과 차내 방송, 사람들 말소리 등등 갖가지 소음들이 들려왔지만 어느새 주위가 아주 고요해지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고, 흔들림도 몸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오로지 '붓도 붓도...'만 생생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붓도만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붓도에 의해 눈을 번쩍 뜨게 되었고,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음이 들려왔다. 목적지에 다 왔다는, 내리려는 생각이 일어났다. 속으로는 여전히 붓도가 이어졌고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붓도 몇 번 하는 사이에 쏜살같이 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방향감각을 잃은 듯 얼떨떨했지만 곧 '붓도 붓도...'로 정신을 가다듬고 전철을 빠져 나왔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는 좀 불편했다. 붓도를 암송하다 보면 할 말을 잊어버리거나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침묵했고, 꼭 대답을 해야 할 때는 붓도를 아래 단전으로 깊이 내려놓기도 했다.

 

일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을 때는 '붓도 붓도..'가 가슴으로부터 울려 나와 머리며 온몸으로 번져나갔다가 다시 가슴으로 모여들어 머리까지 울려 퍼지곤 했다. 붓도로 일념에 들게 되자 저절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치 모든 의식과 의도가 붓도 속에서 생겨 나오고, 붓도에 의해 모든 행동이 전개되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고 오직 붓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것만 기억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붓도 붓도...'는 계속되었다.

 

걸음을 걸을 때도 다리의 움직임이나 무거움, 가벼움 등등 매 순간 일어나는 느낌들이 붓도를 통해 알아차려지는 듯했고, 전철 안에서의 호흡관찰도 잠깐씩 일어나는 생각들도 붓도에 의해 알아차려지는 등, 모든 의도나 행동들을 붓도가 바라보며 알아차리고 있었다. 붓도 자체가 '아는 마음'이 된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눕혀진 몸을 바라보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침대에 낳은 부분과 닿지 않은 부분의 느낌들을 관찰했다. 주시가 닿은 신체의 부분마다 몸인 물질과 그것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마임인 정신, 이 물질과 정신 모두를 배우에서 붓도가 비추어 밝혀주고 있었다. 그때는 오온을 주시하는 것을 붓도 자체가 반야지혜가 되어 지켜보았다. 긴장도 저항도 없이 자유롭게 놓여진 몸 세포 하나하나마다에 편안함이 느껴지면서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것을 붓도가 바라보고 있었다.

 

잠속으로 몸이 사라지고 몸을 의식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붓도만 고요히 남아 있었다. 싶은 잠속에서 옆으로 돌아눕는 몸을 붓도가 지켜보았고, 다시 잠이 드는 것을 붓도가 알아차렸다.

 

날이 밝자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는지 밤새 지켜보고 있던 붓도에 의해 의식이 깨어나면서 몸이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잠을 자지 않고 그냥 가만히 누웠다가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몸은 가벼웠다. 시계를 보고 5시간 정도 단잠을 잔 것을 확인했지만, 자는 동안에도 붓도가 깨어 있었기 때문인지 마치 무아삼매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밤새 붓도가 이어진 탓인지 아침 일찍 눈을 뜸과 동시에 붓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붓도 염송 초기에는 염불하듯이 하면서 의도와 행동과 붓도를 바라보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염불할 때와는 달리 숨 쉬듯 자연스럽게 붓도 스스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듯했따. 붓도와 행동이 하나로 느껴졌다.

 

좌선을 하고 잠시 호흡을 관찰했다. 붓도와 호흡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짧게 진행되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따. 차츰 호흡은 희미해지고 붓도가 생생해지더니 호흡은 사라지고 붓도만 남아 있는 듯했따. 이때는 붓도를 대상으로 삼아 관찰했다.

 

한 토막의 붓도가 일어났다가 사라질 때 그 끝에서 순간적으로 정지된 공간이 얼핏 보였다. 약관 의관하여 이저이는 붓도의 일어남과 진행을 (굉장히 빠른, 한순간의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붓도가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에 잠깐 보이는 정지된 공간을 밀착해서 바라보았다.

 

한두 번 보았을 때는 그 공간 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 감지되었지만 서너 번 반복해서 보자 아주 미세한,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얇디 얇은 파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치 봄날 먼 산의 아지랑이 같은, 실체는 없지만 무언가 아물거리는 움직임 같은 것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순간에 무의식의 흐름이 느껴졌고, 그것이 아물거림으로 나타나는 순간 곧바로 세포보다 작은 미립자인 까라빠가 일어났다....(..까라빠 관찰 부분 생략....)

 

가슴에서 무의식의 흐름을 감지하게 되면서는 그 흐름이 붓도로 이어져 온몸으로 그 파장이 번져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서 의관하면서, 확실하게 알아차려질 때까지 계속 관찰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붓도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진행, 소멸되기까지의 과정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다 보니, 무의식과 의식의 변화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를 알게 되고, 강하게 의관하던 것도 저절로 풀어져 어느새 자연스럽게 붓도 염송이 이어지게 되었다.

 

의관이 사라지고 붓도만이 순일하게 이어지자 고요함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듯했다. 이윽고 고요함이 점점 깊어져 모든 흐름이 정지되어 버린 듯한 순간, 돌연 붓도가 한 점 빛으로 변해 가슴 쪽으로 박히듯이 몰려들더니 정지했다.

 

그렇게 극도의 고요함 속에 불빛 하나만 또렷이 남아 있는 듯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가슴에 박힌 듯이 한 점으로 머물던 붓도의 빛이 갑자기 (조명탄이 터지듯) 확 터지면서 사방이 빛으로 뒤덮여 버렸다. 붓도로 무아삼매에 드는 순간이었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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