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운드카드들 잡담

2023.09.06 15:06

돌도끼 조회 수:175

우리나라에 사운드카드가 정착된 시기쯤엔 이미 세계 사운드카드 시장을 사블이 통일한 뒤였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갖가지 제품을 내놓긴 했어도 결국은 사블 호환기종으로 귀결되는 형편이었고, 옥소리 처럼 독자 기술을 고집한 곳이 있다 해도 거기도 결국은 사블 호환성을 확보하는 걸로 연명했죠. 그래서 뭐 그 이후에 나온 사운드 카드들 중에 그나마 유니크한 특성이 있었다 볼수 있는 건 GUS 정도인데, GUS는 국내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잡지 등에 자주 소개되어서 어느정도 인지도는 있었죠.
그러기 전에, 이런저런 사운드 옵션들이 나와서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시기에 해외에 나왔던, 국내에서는 잘 안알려진 것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대개는 게임의 셋업 프로그램에서 이름만 볼수있었던 것들이라 몇몇은 아마도 이름만큼은 익숙한 것들도 있을겁니다.

놀랍게도 이중 상당수는 도스박스에서 에뮬레이션이 됩니다. 소리가 궁금하신 분은 도스박스에서 옵션 맞춰놓고 한번 들어보심...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CMS 하나만 소리를 들어봤지만 오래되서 기억도 안나고... 나머지는 실물을 본적도 없는 물건들이라...



-PCjr/탠디

PCjr는 84년, IBM이 가정용 컴퓨터 시장을 넘보고 야심차게 준비한 물건입니다. 기존의 IBM PC는 A/V 성능이 정말 볼품없었기 땜에 사운드쪽을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말하자면 IBM 계열 최초의 본격 사운드장비죠. 사운드카드는 아니고 컴터에 내장되서 나오는 물건입니다만.

성능은 대략, 80년대에 오락실 게임들과 이런 저런 게임기, MSX 등에서 사용된 음원인 PSG와 거의 동급이라고 합니다. 3중화음 + 1 노이즈 채널.
근데 뭐 PCjr가 힘도 못써보고 쫄딱 망하면서 그대로 사라질뻔 했다가, PCjr의 유일한 클론이었던 탠디가 생존하면서 90년대까지도 존속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탠디 사운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사운드 옵션들이 등장하는 87년 이전까지는 IBM PC 계열에서는 최상의 사운드로 군림했습니다. 그래서 PC 스피커만 지원하는 걸로 알려진 구닥다리 게임들 중에는 사실은 탠디를 지원하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근데... 일본애들이 PSG를 열나게 활용해서 꽤 들을만한 소리를 들려줬던 데 비하면 미국애들은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힘쓰기 보다는 3중으로 화음을 넣을수 있다는 정도로만 쓴 경우가 많고 노이즈(효과음) 기능은 아예 안쓰는 일이 많았던... 그래도 뭐 내장 스피커가 내는 단음보다는 훨씬 낫다는 거죠ㅎㅎ. 글구 드물지만 탠디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 게임들도 있습니다. 시에라의 '젤리아드'라거나(탠디로 내는 사운드 중에 아마도 최고봉. 시에라가 직접 작업하진 않은 걸로 추정됨) DSI의 '스턴츠'라거나. 이런 게임들에선 애드립의 FM 사운드보다 더 박력있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후기로 가면 내장 스피커와 탠디 사운드를 같이 쓰는 게임도 소수 나옵니다.
90년대가 되면 대부분의 회사들이 탠디 지원을 끊게 되는데 시에라만큼은 적어도 MT-32/사운드 캔버스 교체기 정도까지는 꾸준히 탠디를 지원했습니다. 다만 소리는 별 기대 안하는게...(아무리 생각해도 '젤리아드'의 탠디 사운드는 시에라가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같다는...)


-IBM 뮤직 피처카드

87년에 IBM이 만든 사운드카드. 무려 IBM이 만든 공식 사운드 장비이면서도 표준이 되기는 커녕 조용히 망했습니다. 내용물은 기존에 나와있던 야마하의 FM 신서사이저에서 우수리 떼고 PC 내장형으로 만든 거라고 합니다. 장점은 얘도 일단은 미디란 거였지만, 같은 해에 나온 MT-32한테 성능으로 발리고, 그런 주제에 가격은 또 비싸서 사람들 이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게임 관련으로는 극소수의 회사들이 별로 길지 않은 기간동안 지원했을 뿐입니다.
도스박스에서 지원은 안하는것 같은데, 싸구려 FM 장비인 애드립하고 비교해서 뭐 엄청난 차이까지는 나지 않는다는 듯...


-코복스 스피치씽/사운드 마스터/디즈니 사운드 소스

87년에 나온 스피치씽은 사운드'카드'는 아니고 프린터 포트에 연결해서 쓰는 장비였습니다. 내용물은 아주 간단한 DAC였죠. 그러니까 IBM 최초로 PCM=소리녹음/재생을 지원한 물건이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사람 목소리 등의 디지탈 효과음을 쓸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당시 컴퓨터 수준으로는 PCM을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그거 말고 다른 기능은 없어서 크게 활용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심시티'라든가 몇 안되는 게임이 코복스 전용으로 효과음을 지원하기도 했고 아미가의 전유물이던 트래커 음악이 PC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초창기 사블은 CMS와 애드립과 스피치씽을 한데 몰아놓은 거나 다름없는 물건이기도 하고.
딱히 도움은 안되는 어마어마한 장점도 있었는데 워낙에 단순한 물건이라 납땜만 할줄 알면 개인이 자작하는 것도 가능했다는 거. 한국 컴퓨터 잡지에 '단돈 1000원으로 코복스 만드는 법'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PCM 기능 밖에 없어 음악을 넣기 곤란하다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코복스는 그 뒤로 PSG도 달아보고 FM 칩도 달아보고 해서 사운드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후속작들을 내놓았지만 다 망했습니다.
그렇게 코복스 본가쪽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엉뚱하게도 90년대에 디즈니-바로 그 디즈니 맞습니다-에서 코복스 클론을 만들었습니다. 디즈니의 이름을 걸고 홍보한 덕에 이쪽은 꽤 팔렸다나 봐요. 처음엔 디즈니가 파는 소프트웨어 전용으로 쓰려고 내놓은 거라는데 다른 회사들이 사블 PCM 지원하는 김에 얘(또는 코복스)도 같이 해주자 해서 지원목록에 넣어준 게임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지원 게임 라이브러리가 늘게되었다고 합니다.
도스박스에서는 DSS를 지원하면서 하위 호환으로 코복스도 지원하는... 뒤집힌 관계가 되었고 사운드 마스터의 PSG 기능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CMS/게임 블래스터

87년 싱가폴의 크례팁사에서 야심차게 발표한 사운드카드입니다. 처음엔 회사 이름을 딴 크례팁뮤직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나중에 게임 블래스터로 개명합니다.
아마도 애플에서 유명했던 머킹보드에 영향을 받아 나온 물건이 아닌가 싶은데 무려 12채널 스테레오 사운드를 자랑했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같은 해에 애드립이 나올거라는 건 미처 몰랐겠죠. CMS는 소리를 내는 방식이 구식이었던 듯... PSG보다 조금 낫게 들리는 정도... 그 시기에는 드물었던 스테레오라는 장점이 있음에도 애드립의 다양한 음색과는 비교가 안되서 조용히 망했습니다. 처음부터 애드립에 비해 지원하는 회사의 수가 적기도 했고 90년이 가까워지면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손절한 가운데 그나마 시에라 혼자 제일 오랫동안 지원해준 편, 다만 소리는 역시 기대할 바가 못됩니다.
이때 애드립한테 발린게 빡쳤던지 크례팁은 애드립과 똑같은 FM 칩을 사다 달고는 DAC까지 붙인 신무기 사운드 블래스터를 만들어서 설욕하는데 성공합니다.(나중에는 뒷공작을 해서 아예 애드립사를 망하게 만들어버렸다는 소문이...)
사블 최초 버전은 CMS 칩도 달고 있어서 사블로도 CMS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1.5인지 2.0인지부터는 빠지게 되면서 CMS는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도스박스에서는 따로 CMS 관련 옵션은 없고 사블의 FM 음원 종류 설정 옵션에서 CMS를 골라 들을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Innovation SSI-2001

위에서 말한 사운드 옵션들이 그나마 해외에서는 제법 인지도가 있는 것들이었다면 얘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진짜배기 듣보ㅂ니다.
코모도어 64는 미제 8비트 컴퓨터 중에서 사운드로는 끝판왕 대접을 받았던 물건입니다. C64의 SID 칩은 지금도 매니아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유명칩士죠. 그런 SID 칩의 소리를 IBM PC에서도 들어보세! 나쁘지 않은 발상입니다만... 탠디 사운드랑 붙었어야할 애가 상위 사운드 옵션들이 줄줄이 나온 뒤인 89년에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가 다르죠. 저가격을 내세워 들이밀어 보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조차 모르는 채로 묻혔습니다. 애초에 출시된 물량도 얼마 안되는데 매니아들이 SID 칩을 뜯어낼 목적으로 구입해서 현재 남아있는 실물도 몇개 없다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한줌의 게임이 이 카드를 지원하고 있고 그중에 '울티마 6'같은 거물도 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의 미디 지원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Innova 드라이버를 만든 용자가 있어서 '키란디아의 전설'같은 게임, 심지어 '7번째 손님'의 음악도 이 사운드카드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다만 3채널이라는 SID 칩의 한계 때문에 미디의 여러 악기 채널들 중에서 3개만 소리가 나서리 좀 엉뚱하게 들릴 수도...
도스박스의 일부 포크 버전이 지원합니다. 너무 마이너해서인지 아직 도스박스에서 보편적으로 지원하지는 않는듯...(사실 이걸 에물레이트한다는 게 순전히 '울티마 6' 하나만 보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듯...)


IBM PS/1 오디오

PCjr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IBM은 91년에 다시한번 홈 컴퓨터 시장의 문을 두드립니다. 이름하여 PS/1. 이 PS/1 컴퓨터 용으로 만든 사운드 옵션이라고 합니다. 내용물은... PCjr 사운드에 DAC를 달아놓은 거라고 해요. 90년대에, 이미 탠디 사운드조차 퇴출되고 사블이 사실상의 표준이 되고있던 시기에 뜬금없이 PCjr 사운드를 다시 들고 나온 진짜진짜 뜬금없는 물건입니다.
탠디 컴퓨터가 88년쯤 부터 DAC를 기본내장하고 나오기 시작하는데, DAC 장착으로 사람 목소리등 다양한 디지탈 효과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내장음원(음악)은 여전히 탠디 사운드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니까 IBM에서 내놓은 PS/1은 바로 이 탠디 사운드 + DAC의 컨셉을 그대로 갖다쓴 거죠. 원래 PCjr 사운드를 자기들이 만든건데 탠디가 그걸로 잘나가는 걸 보고는 부러웠나 보죠.
그치만 뭐 이 물건이 흥할리야 있었겠습니까ㅎㅎ 아마도 IBM이 PC용으로 개발한 옵션들 중에 제일가는 듣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스박스가 탠디에 DAC까지 지원하고, DAC 기능은 사블로도 대체가능해서 딱히 얘를 에뮬레이션할 필요성은 못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물건 소리가 궁금하다면 걍 시에라 어드벤처 게임에서 탠디1000TL로 셋업하면 거의 똑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도스박스 일부 포크버전에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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