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6 22:08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농담은 자학개그죠. 실패하더라도 다치는 건 자기뿐이고, 성공한다면 아주 흥미로운 자기 성찰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요. 당사자가 정말로 그런 자학 개그에 맞는 재료들을 갖추고 있다면 더욱 좋고.
브루스 캠벨이 [내 이름은 브루스]에서 시도한 것도 바로 그런 자학 개그입니다. 물론 브루스 캠벨은 실패한 배우가 아니에요. 최근 몇 년 동안 별볼일 없는 영화에 잔뜩 출연한 건 사실이지만 [이블 데드]부터 생긴 그의 컬트팬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요새는 꽤 잘 나가는 텔레비전 시리즈에 출연 중이기도 하죠. 아, 그 시리즈는 [내 이름은 브루스] 이후 작품인가요? 그럼 그건 빼고.
하지만 브루스 캠벨은 이 영화에서 자신을 철저한 실패자로 그립니다. 이 영화의 브루스 캠벨은 아내에게 이혼 당한 뒤로 헐어빠진 트레일러에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주정뱅이죠. 지금 찍고 있는 영화는 기껏해야 [동굴 에일리언] 2편 같은 것들이고요. 물론 사실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의 반영일 수는 있겠죠. 지금까지 그가 끌어온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경력에 대한 자조로 읽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느낌이 들지 않는 건 브루스 캠벨이 원래 그런 위치에 있는 특별한 스타이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는 팬들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즐겁게 받아들일 거라는 확신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팬들이 두 배는 더 웃을 수 있는 영화예요. 캠벨 팬들만 알아차릴 수 있는 농담들이 많으니까요.
영화의 내용은 그냥 그렇습니다. 그냥 기성품이죠. 어느 광산 마을에서 한 십대소년의 실수로 전쟁과 두부를 관장하는 중국의 신이 불려나옵니다. 브루스 캠벨의 팬인 소년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브루스 캠벨을 불러오지만 그는 이 모든 게 매니저의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죠. [쓰리 아미고스]와 비슷한 설정인데, 더 말이 안 됩니다. 브루스 캠벨이 속는 건 이해하지만 팬과 마을 사람들이 그를 불러올 이유는 없지 않겠어요? 이 시대에?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농담 대부분은 저질스럽고 따분합니다. 액션은 느려텨졌고 반복이 잦죠. 심지어 팬들을 위한 선물로도 온전치 못합니다. 특히 전 브루스 캠벨이 전기톱을 무기로 쓰는 장면이 없는 게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리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한 번 잡고 흔들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농담에 한 번 쓰고 버리는 건 아쉽기 짝이 없죠.
하지만 대단한 질을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없겠죠. 저 역시 아무런 기대없이 극장에 갔습니다. 전 브루스 캠벨이 브루스 캠벨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는 힌트와 퍼즐을 찾으며 킬킬거리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그런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과도하게 웃어댔던 제 주변 사람들도 그런 걸 맘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브루스 캠벨의 팬들이었겠죠. (09/07/17)
★★
기타등등
테드 레이미가 일인삼역으로 나옵니다.
감독: Bruce Campbell 출연: Bruce Campbell, Grace Thorsen, Taylor Sharpe, Ted Raimi, Ben L. McCain, Ellen Sandwe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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