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접영 강습 세 번 만에

2014.07.26 21:14

어느날문득 조회 수:3469

기분 좋아서 오래 전에 썼던 '요리에 대하여' 이후 즐거운 기분으로 바낭성 글을 써 봅니다.


시간이 자유롭지 않아 요즘에는 강습 수영은 못하고 그나마 점심 시간을 이용해 자유수영만(시간이 없을 땐 한 시간, 여유가 있을 땐 두 시간) 하는데 한 보름 전 쯤 그 친구를 처음 보았죠. 


몇 번 이야기 나누고서 갓 군대를 제대한 친구란 걸 알았는데 자유형만 어설프게 하더군요. 배영과 평영도 아주 기초적인 동작 정도.


그런데 한 두 바퀴만 돌고도 숨 가빠 하길래 호흡법 팁(꽤 오래 하신 분도 이 호흡법을 모르시는 분이 많더군요.)을 알려주었죠. 그러고 나서 하는 걸 보니 제법 곧잘 따라 하더군요. 


그리고 하루 뒤 슬쩍 팔의 각도를 교정해 주었어요.  이 역시 굳어진 분들은 금방 못 고치는데 이 친구는 완벽하진 않아도 내가 알려준 대로 하려고 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티가 역력하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평영을 알려주었죠. (사실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것이 평영. 그래서 수영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중간에 포기하기 말고 접영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영까지는 꼭 배우라고 말해주곤 하죠.)  어쨌든 평영도 제법 잘 따라하고 금방 캐치하더군요. 


평영이 좀 된 뒤, 그럼 다음에 보면 접영 알려줄까? 하니 헛.. 하는 표정으로 접영은 전혀 한 번도 안해봤고 아는 바도 없다고 자신 없어 하더군요.  하지만 전 이 친구라면 접영도 금방 할 수 있을거라는 걸 짐작했죠. 


그 후로 하루 이틀 바빠서 못 봤는데 이 번주 초에 다시 봤죠. 그런데 나는 시간이 없어 오 분 내로 금방 나가야 할 참이고 그 친구는 조금 늦게 왔고.. 그래서 일단 잠영 웨이브만 알려주고 시범 보여주고, 그 친구가 한 두 번 하는 거 보니 어설프긴 해도 일단 가능성이 보이더군요. 


그 다음 날 만났는데 역시 나는 한 시간 한 참이고 그 친구는 뒤늦게 왔고. 그래서 이번에도 그 친구 잠영 웨이브 체크 한 뒤, 한 팔 접영 알려줬죠. 아직 감을 못잡아 쭉 뻗어 넘거야 할 팔을 자유형 팔 내 젓듯 하긴 했지만 역시 시간이 없어 그것만 지적해 주고 연습해 보라고 하곤 나왔죠.


이틀 지나 오늘 만났는데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더군요. 난감했지만 어쨌든 가장 사람 적은 곳을 골라 한 팔 접영과 양팔 번갈아 접영을 연습 시키고 십 분 휴식. 다시 연습. 양팔 번갈아 웨이브하다가 양팔 모두 뻗는 걸 시도했죠. 그런데 하더라구요...! 


아직 웨이브가 완벽하고 부드럽진 않아 힘으로 깡으로 하는 면이 있긴 해도 단 오 분 강습 두 번과 오늘 강습 세 번 만에 양팔 접영을 하다니... ! 


물론 그 친구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전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는 방식과 수용하는 방식이 기특하더군요. (이것이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핵심입니다.) 그 친구는 내가 설명하고 시범을 보일 때 바로 바로 수용하고 따라 해 봅니다. 제가 그렇게 시키기도 했지만 어쨌든 어색함을 떨치고 되든 안 되든 바로 따라해 봅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저도 처음 수영 배울 때 강사가 시범 보여주는 동작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면서 바로 바로 따라했거든요. 눈으로 보기만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것(대부분의 사람들이 멍하니 서서 그렇게 보기만 하고 고개 끄덕끄덕 하지만 그렇게 해선 바로바로 캐치를 못하거든요.) 과 몸으로 직접 따라해 보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말하는 내용의 핵심을 바로 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리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레인을 돌면서 그것을 내 몸에 익히죠.  그런데 의외로 한 두 번 해보고 안되면 바로 자기 이전 스타일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아주 많아요. 이런 분들은 교정도, 발전도 없거나, 있어도 아주 느립니다.... 


저도 접영을 잠영 웨이브 연습, 한 팔 접영. 그리고 번갈아 웨이브하고서 바로 양팔 접영이 됐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왜 안되나 의아할 정도였죠. 그런데 이것이 절대 제가 운동신경이 뛰어나거나 해서가 아닙니다. 몸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길가에 스치는 흔하디 흔한 그런 몸이죠. 


전 학창시절에 운동이라곤, 그리고 체육시간이라곤 아주 질색하며 도망다니던 아이였어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 운동신경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운동에 대한 흥미도 취미도 없었죠.) 그 생각을 군에서 처음 시간이 나서 시간 때우기로 배워 본 탁구와, 서른 넘어서 시도 해 본 자전거와, 그리고 바로 수영을 배우면서 깨뜨렸죠. 안 해 봤을 뿐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면 할 수 있다.. 그 후로 수영은 확실한 제 일상 속의 활력소가 되었죠. 그런데 이 즐겁고 쉬운 수영을..  왠일인지 주위 사람들에게 팁을 가르쳐 주어도 캐치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 고집대로 발전 없는 수영만 계속 하면서 자신은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아니 사실 많이 안타까웠죠. 


 오늘 그 친구가 세 번 만에 접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얼마나 기특하던지.. 거봐.. 당신들은 못하는게 아니라 내 말을 안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여서 못하는거야.. 저 생짜 초보가 세 번만에 접영을 하는 걸 보라구! 


뭐 모두 각설하고..  정말 빨리 캐치하고 잘 한다고 칭찬해주니 그 친구는 수줍게 제가 잘 가르쳐주어서 그렇다고 겸손해 했지만 정말이지 그 친구가 내 말의 핵심을 잘 귀담아 듣고 스스로 그걸 따라하고 잘 따라와 주어 가능했던 일이죠. 사실 말이 그렇지, 세 번 만에 그것도 두 번은 한 오 분 정도, 그리고 오늘 한 시간 반 정도..에 접영을 했다면 수영하시는 분들 믿을까요?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는 배영도 이런 저런 팁을 알려주고 끝마쳤죠. 바로 바로 따라와 주고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뭔들 아깝고 뭔들 못 알려주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오후 내내 아주 기분이 좋네요. 날씨가 선선한 탓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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