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1 11:10
학력,경력 탁월할 것 없는 전 직장인, 현 무직자입니다. 미래없이 그저 하루하루 사는 저로선 정규직,고소득 등 '조건좋다' 싶은 직장을 구하는 게 아니라서 일자리 찾기가 아주 어려운 상황은 아닌데요. 별로 구직의 열의는 생기지 않고, 최근 유학을 (빙자한 해외체류를) 고민중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언어로 인생 재시작 하고싶다는 생각이 부쩍 드네요.
오래 전부터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만 해온 나라가 있어요. 물론 들어간 뒤로는 상상과는 다른 여러 쓴맛을 보게 되겠지만 제 성향, 여기저기로 분산된 여러 관심사, 국가 자체에 대한 관심도를 고려했을 때 딱 한 곳으로 수렴됩니다. 지금까지는 전문영역 없이, 말하자면 (어설픈) 제너럴리스트에 가깝게 일을 했는데 이제는 특정분야의 전문가로 일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랬을 때 미국을 제외하곤 이곳이 단연 최고입니다.
문제는 역시나 언어입니다. 제2외국어로도 배워본 적 없는 언어를 서른 넘어 새롭게 배운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게다가 저는 상황과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언어'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편이라 외국어라도 정교하게 구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사고도 언어도 단순하게밖에 처리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많이 답답할 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가는 일을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요. 일단 가족 동의, 초기 어학비용, 외로움과 싸울 의지까지는 마련된 상태입니다.
듀게 분들 중에서도 적지않은 나이에 비영어권 국가 가셔서 언어 새롭게 배우시고 정착하신 분들 계신가요? 외국인과 결혼해서 떠나셨거나 가족이 함께 이민가셨거나 그런 경우가 아닌, 홀로 떠나셔서 자리잡은 분 계시다면 소중한 경험담을 듣고 싶습니다. 혹은 저와 비슷한 고민 하고 계신 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2014.09.21 13:29
2014.09.22 13:27
'일'을 바로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보류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언어구사를 잘 하셨음에도 어려우셨나봐요. 흑.. 저는 어학+유학을 먼저 하는 것을 고려중인데 아무래도 간다면 단순노무직하면서 공부를 마치고 몇 년이 지난 뒤에나 그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2014.09.21 15:36
언어가 안되면 그만큼 기회와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본의 아니게 교민사회에 기대게 되는 수렁에 빠지게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구요.
한국에서 기본회화정도는 가능한 수준으로 습득하신뒤 현지 어학원에서 1년 이상 공부하시면서 취업을 준비해보시면 어떨까요?
참고로 전 서른 넘긴 나이에 비영어권(중국)에 혼자 왔어요. 기초적인 수준의 언어조차 준비 안된 상황 때문에 초반 3년을 너무 고생했던게 정말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전 바로 일을 할 수 있어서 무작정 왔는데 완전 오판이었어요. 결국 2년만에 하던 모든 일을 접고 1년정도 쉬면서 중국어 공부만 했습니다.
2014.09.22 13:29
와! 경험담 감사합니다. 언어를 가서 아예 시작하신 거예요? 무조건 언어부터 해야겠군요. 한국에서 하는 건 별로 소용없고 가서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고 해서 저는 여기서 기초문법만 배운 뒤 아예 현지에서 1년-1년 반 어학에 올인하는 걸 계획하고 있는데 비용이나 시간을 아끼려면 여기서 좀더 언어를 하고 가야겠다 싶습니다. 지금은 생활이 좀 안정되신 거지요? 건투를 빌어요 소부 님! :)
2014.09.21 19:03
당분 간이 아니라 꽤 상당한 기간 동안 해당 언어로 깊이있는 대화를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릴 때 이민가지 않는 이상 원어민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에요. 이민 1세대들이 말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수십년을 외국에서 살아도 결코 그 사회에 완벽히 융화되지 못하기 때문인데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언어문제죠. 그리고 보통 이민자들은 기본 회화만 가능하면 어느정도 업무가 가능한 영역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업에 종사한다고 자연스럽게 언어가 늘진 않죠. 외로움과 싸울 준비는 되셨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방인으로 살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셨으면 합니다.
2014.09.22 13:33
네. 제가 생각하는 외로움 수준이 아니겠지요. 아직은 부딪혀보지 않아 이방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와닿지 않는데 님 말씀처럼 제가 결심을 확실하게 굳히려면 이 부분을 더 깊게 생각해 보아야 겠어요. 지금 제가 자연스레 누리는 것중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게 가능할지 스스로 물어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9.21 19:23
결혼이나 가족이민이 아니고 홀로 건너 가 사는 경우는 주의할 게 전자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혹여)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취직이나 재취직 문제로 현실적으로는 정착해 장기간 해외에 살아보는 경험은 그래도 굉장한 스펙이 쌓이는 경우와 20대에서 30대 초반 정도까지만 리스크가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요. 예전에 몇 번 방문해보고 언어공부도 했었고 유학 생각했던 나라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여행으로 한 번 다시 가 보니 뭐랄까, 눈에 끼어 있었던 장밋빛 콩깍지 같은 것이 다 벗겨지더군요. 내가 왜 여기서 유학하고 싶었더라 상상할 수 없어질 정도로요. 아마 어렸을 때 갔더라면 그냥 젊어 고생;이라고 생각할 법한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할까요. 다문화적인 나라보다는 (목적하신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인종차별이 정말 다시 한국으로 그냥 돌아가고 싶다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정서적으로 고독한 게 문제라기보다는 꾸준하고 은근한 차별 같은 것이 어렵다고 보는데 그런 예상도 좀 하시고, 좋아하시는 일 분야에 그 나라가 최적이라면 그런 최우선에 둘 만한 동기에 마음 든든해지실 만한 게 있겠죠.
2014.09.21 19:45
2014.09.22 13:40
네. 익숙하게 누려온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 발목을 붙잡곤 합니다ㅠㅠ
2014.09.22 13:39
아, 리스크가 적은 것 같은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아요. 더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 지금 전에 일하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커리어를 이어갈지, 아니면 조금 더 공부해서 아예 새로 시작할지 하는 기로에 서있거든요. 그런데 저도 코르타사르 님처럼 그 나라에 대한 환상이 걷어지면 어떨지가 조금 걱정이에요. 그걸 극복할 만큼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겠죠. 답변 감사합니다:)
2014.09.21 22:03
도전해 보세요. 잃을 게 없다면 경험을 쌓는 거죠. 대신 마음 독하게 먹고 가시길.
2014.09.22 13:41
명쾌하네요. 감사합니다:)
2014.09.22 08:06
역시 외국 생활은 언어와 함께 인종차별이 정말 넘기기 힘든 벽이군요;; 인종문제는 울 나라에 들어와 있는 동남아 사람들이 받는 대접을 생각해 보면 금방 답 나오는 얘기라서ㅠ
2014.09.22 13:43
아우. 정말. 저도 어디 나가서 간혹 제대로 대우 못받으면 '이게 다 우리가 동남아 사람들 대하는 것에 대한 업보인가..' 싶더라니까요;;
2014.09.23 00:09
경험자입니다. 1. 언어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걸 다 하시고, 배운 걸 써 먹으러 간다는 심정으로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안 그러면 현지 교포/주재원/워홀러/유학생들하고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생활이 되기 싶습니다. 2. 평생 2등 국민으로 사실 수도 있고, 신용 카드, 핸드폰, 은행 계좌, 집 구하기, 복지 등등에서 모두 불리합니다. 3. 외로움을 숨쉬듯 마시며 살겠지만 대신 어떤 면에선 한국보다 홀가분합니다. 4. 주변에 한국인이 아무도 없다면 모국어를 못 하는 게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저는 가슴에 통증이 올 정도로 심해져서 집에서 혼자 한국책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달랬습니다. 5. 어느 나라나 사는 건 다 힘듭니다. 종류가 다를 뿐 고생 반 행복 반인 것 같아요. 6. 그래도 응원합니다.
2014.09.23 03:04
와! 익룡 님, 어느정도 결심을 하고서도, 2와 4를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되어 잠 못 자고 있었는데 님 댓글 보고 눈물이 왈칵 날 뻔했어요. 그 통증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6에서 결정적으로 감동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해당국가 언어를 비즈니스레벨로 익힐 때까지만이라도 보류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옛날에 변변찮은 학력과 괜찮은 언어구사 실력으로 해외나갔는데 직장은 커녕 아르바이트 찾기도 힘들었거든요. 단순한 노무직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먼저 비슷한 경력을 싾고 해외업체로 이직하시는 방향을 검토해보시면 좋을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