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글을 거창하게 써내려가려 하다가-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부동산 경기와 매달 월세 내기, 내 공간 한 평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몇 번 글을 통째로 엎고 다시 썼습니다. 
책의 내용은 유쾌하고 실용적인데, '집'이 없다는 것에 한이 맺혀 살았던 지난 10년을 되돌이키며 쓰다 보니 온갖 복잡한 감정이 올라와서 글이 점점 난잡해지더라구요.)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는 '마흔 이후'라는 구절이 더 와닿았습니다. 스무 살을 넘기기 전에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던 마흔 살 무렵의 삶이었는데, 이제는 스무 살보다 마흔 살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네요. 책 제목이 왜 하필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를 묻는 것인지는 잘 와닿지가 않았어요. 쉰 이후, 라고 하면 뭔가 운율이 안 맞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마흔이라고 하면 뭔가 중년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가 하며 괜히 넘겨짚어 봤습니다. 마흔 이후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노후 대책 가이드라인을 주는 책인가 하고 짐작해보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제 짐작은 빗나갔습니다. 방점은 '마흔 이후'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찍혀야 하는 것이었죠. 책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 세 여자가 가족에게서 독립하여 더욱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고양이를 매개로) 서로를 하우스메이트로 선택합니다. 이들이 공동생활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이나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거리감과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은퇴 이후의 하우스 쉐어링이라니, 너무나 먼 얘기 같았죠. 이 책에 나오는 세 여자들은 저와는 나이도, 국적도, 경제적 상황도 너무 달랐으니까요. 공통점이라면 공동생활을 해 봤다는 것 정도일까요. 얼마 전 <프란시스 하>보니까 공동생활이 오히려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강제로 선택되는 것 같드만요. 저도 그렇고요. 
  저는 20대 중반 이후로 늘 공동생활을 해 왔습니다. 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였죠. 서울의 집값은 나날이 더 미쳐 날뛰고 지방에서 올라온 가진 것 없는 젊은 애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지하방/옥탑방/고시원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어. 햇빛 비치는 집에서 살고 싶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거실과 방 두 칸 짜리 집에 세 여자와 두 마리 고양이가 함께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밤 치킨과 피자로 축제를 벌였죠. 그러다 같이 요가비디오를 보며 살을 뺀다고 난리를 치고... 암튼 그랬습니다. 그렇게 같이 살다 보니 별 생각지도 못한 데서 문제가 터지더라구요. 우선 요리는 거의 집에서 해먹지 않으니 가끔씩 누군가 요리하면서 자비를 베풀면 얻어먹는 걸로 하고, 설거지는 각자 먹은 것을, 빨래도 각자, 공간만 공유하며 산다는 약속을 하고 들어왔는데 그게 구두계약이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결국 좀 더 깔끔한 성격에 뭔가 쌓여 있는 걸 못 보는 사람이 하게 되면서 불만이 쌓이더라구요. 또 거실이나 화장실 청소는 눈치껏 하다 보니 서로 상대보다 내가 더 많이 집안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고... 눈물 콧물 짜내면서 서로 쌓였던 감정을 겨우겨우 풀어내고. 방세 부분도 애초에 보증금을 내던 친구가 금액을 부풀려서 얘기하는 바람에 나중에 조정하고... 뭐 그런저런 삽질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이 책을 읽으면서 공동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이걸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몸으로 살아 내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라고 쓰고 삽질이라고 읽는 그 모든 행태)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역으로 말하면 나이도 국적도 경제적 상황도 다른 사람들인데 나의 공동생활을 배경지식 삼아 무릎을 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혈연이나 연애 관계가 아닌 사람들끼리 공동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분이라면 강추합니다. 실제적인 팁이라면 팁을 많이 얻을 수 있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44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94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001
126425 가장 보통의 사람과 속물근성의 간극(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new 상수 2024.06.09 19
126424 민희진의 현재진행형 성취 new Sonny 2024.06.09 68
126423 미학적 인간이란 개념으로 민희진을 들여다보기 new Sonny 2024.06.09 50
126422 민희진의 어도어 독립 시도에 대해 new Sonny 2024.06.09 53
126421 민희진을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 [1] new Sonny 2024.06.09 77
126420 [웨이브바낭] 이번엔 프랑스제 교사 호러, '클래스' 잡담입니다 [3] new 로이배티 2024.06.09 64
126419 허경영 선거법 위반으로 2034년까지 선거출마 불가 new 상수 2024.06.09 46
126418 이런저런 일상잡담 new 메피스토 2024.06.09 52
126417 뉴진스 X 에스파 댄스 챌린지 new 상수 2024.06.09 60
126416 Love is an open door 중국어 new catgotmy 2024.06.09 30
126415 [웨이브바낭] 독일산 교사용 호러, '티처스 라운지' 잡담입니다 [9] update 로이배티 2024.06.09 134
126414 월레스 앤 그로밋 신작 티저 상수 2024.06.09 75
126413 지워진 잡담 [9] update 이오이오 2024.06.08 154
126412 [디즈니+] 엑스맨 97 [4] update LadyBird 2024.06.08 121
126411 내편들면 친구 편안들면 원수 ND 2024.06.08 132
126410 패밀리 가이에 나온 레스타트 [2] daviddain 2024.06.08 94
126409 프레임드 #820 [4] Lunagazer 2024.06.08 53
126408 [유튜브바낭] 내친 김에 찾아 본 원조 '오멘(1976)' 잡담입니다 [12] update 로이배티 2024.06.08 241
126407 아나 데 아르마스 스페인어 인터뷰 [5] catgotmy 2024.06.08 144
126406 유튜브가 아르켜준 노래들 [9] Lunagazer 2024.06.08 20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