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모임 전부터 이미 흥하고 있다는 모 모임 얘기는 아니구요 ^^.


   1. 지난 여름 갑자기, 그 전부터 한 두번 제가 누구인 지 밝힐 필요없이 관객 속의 일인으로 몇 번 참가해 본 모임이 있었는데, 소규모 그룹의 모임을 발족한다는 초대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초대메일의 제목도 참 그럴싸 하고,직장 말고는 이렇다 할 집단에 속하지 않은 채 별다른 신나는 약속없이 보내는 날들이 벌써 n년차에 다다른 지경이었던 지라, 며칠을 고민하고 모임에 참여하겠다고 마음먹고 초대에 응합니다. 이 응함이라 함은 제 실체적인 존재의 정보를 공개하고 규정된 시간과 장소에 나가는 것을 확약하는 절차로 이어졌습니다. 답메일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간단한 자기 소개가 곁들여졌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나갔던 첫모임 첫자리엔 사연이 어떠하든, 목적이 어떠하든, 첫 만남의 설렘과 기대 또는 팽팽한 탐색이 오가는 숱한 익명들이 마이크를 들어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고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이곳에 왜 오게 되었는지 또는 왜 오고 싶었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고 급기야 내 차례가 왔을 때 마침내 저는 무슨 말을 했던가요? 준비없는 말을 몇 마디 중언부언하는 제 목소리가 얼마나 떨렸는지, 어떤 말을 내뱉던 순간에 제 안의 작은 동요가 어색한 음성으로 발화되었을 때의, 그 진정성이 얼마나 낯설고 인간적이었는지 그 순간에 어쩌면 저는 이미 그 곳에 나간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원오브밀리언이라는 극찬을 받아본 적도 있던 제가, 원오브뎀의 철저한 익명으로 오래 살아온 어른의 습성에서 그것은 이미 한참을 벗어났거나 또는 퇴행해야 하는 어떤 절차와도 같았고, 사람들앞에 저 자신을 드러내는데 어떤 주저함도 없다고 믿으며 살았던 확신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는 이 모임에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 일단은 이젠 웬만한 어느 곳에 가든 제가 최고령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무엇보다 저는 예대의 예술 전공자(학생)가 대부분이었던 그 날의 모임 그 분위기를 무엇보다 못 견뎠던 것 같습니다. 한때 뜨겁게 경험해 본 적 있었던 그 어떤 달뜬 열기. 뭔가 되고 싶거나 이미 되었거나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그 치기와 열정으로 눈 멀었던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자들이 그러한 자들을 질시하여, 내 삶은 이렇듯 괴롭다, 라고 정신나가 있던 제 어린 시절이 떠올라 못 견디겠더군요. 비슷한 또래의 젋음들 속에서 이젠 더 이상 젊지 않은 내가 젊음을 대신할 그 무엇도 증거하지 못하고, 여기 이곳에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주 가끔 그 모임은 어떻게 유지가 되고 있는지 조금 궁금할 때는 있지만 그 어떤 채널을 갖고 있지 못하고, 저는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는 않을 테죠.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길을 나서기보다는, 나가봐야 사람들도 결국 다 같을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피곤하기만 할 거야 라고 이불을 뒤집어 쓰는 저와는 반대로, 모인 사람들은 모여서 즐겁겠지요. 누구라도 즐거우면 만사형통이라지만 올해의 제 사주엔, 어느 모임을 가든 빛을 발하고 사람들 안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말짱 거짓말이라는 걸 10월의 어느 비오는 날에 이렇게 느끼고 있네요. 

       

 

  2. 1과도 일부 연관있지만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괴로운 얘기. 꿈을 꾸고 있을 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그래서 그 열정을 가라앉히지 못해 밤새 잠을 못잤는데... 꿈을 깨고 나니 꿈은 꿈에 불과할 뿐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나는 누구보다 성실한 시민이고 국민이다 라고 자부하며 근근히 소리없이 살아가는 저에게, 아직도 이뤄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축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내가 도무지 보지 못하고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잠재된 이익을 귀신처첨 보는 집념이 강한 사람 가까이서 몇 년을 보내기란 참으로 여러가지 감상이 다 들지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지독한 피곤과 혐오입니다. 당신이 눈을 빛내며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이익을 위해 결론을 번복하는 그런 건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봐야, 어쨌든 뭔가를 해낸 사람에게서 느끼는 열등감. 이러니저러니 해도 뭔가를 이룬 자들이 누리는 충족감 같은 건 영원히 모를 저 같은 사람이 느끼는 박탈감 같은 것이 출렁이고 있겠죠.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면 으레 장착할 법도 한 내외적인 허영심이나 체면도 없이, 남은 어떻든 그저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이자 가치인 사람이 그것에 100에 가깝게 실현하는 것을 날것으로 본다는 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군요.


  자칫 오해가 많을 법도 한 이 단상은,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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