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6 15:43
제가 듀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한 달 남짓입니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에 이 글의 제목에 언급된 저런 류의 말을 무려 세 번을 봤어요. 기억이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게이들이 혐오스럽다는 점 까지는 일단 인정을 해야한다. 하지만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합의를 맞춰야 한다’는 글이 있었고, 불과 하루 이틀 전엔 ‘동성애자들은 감성적으로 불편하지만 그래도 불편하단 이유로 그들의 인권을 지지하지 않는 건 어불성설’이란 글이 있었죠. 또 하나 뭐 있었는데 그건 잘 기억이 안 나고요. 여하튼 일단 ‘혐오스러운 건 맞지만 그러지 말자’는 것이 이 분들의 주장입니다.
성소수자로서 제가 기가 막힌 것은 저걸 스스로 ‘개념 발언’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는 작성자분들의 태도입니다. 뭐, 이 사회에서 오가는 온갖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들을 취합해 살펴볼 때, 발언의 수위만 놓고 보자면 저거보다 더 한 것도 발에 채이긴 하죠. 특히 정치적으로 자칭 보수라는 기독교인들이랑 얘기하다보면 화가 나거나 반박할 논리가 모자라서가아니라 그냥 신기해서, 정말 순수하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하고 신기해서 말문이 막힐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듀게. 요구되는 정치적 공정성의 수위가 더 높죠. 그리고 뭐 여기가 듀게가 아니라 일베이더라도, 수위가 하나만큼 잘못됐든 열 만큼 잘못됐든 잘못된 발언이면 비난받을 수 있죠. 지금 이 글에서 제가 하는 것이 그거고요.
한국의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라, 이걸 이해시키려면 꼭 다른 걸 끌어와서 빗대야 합니다. 만약 게시판에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칩시다.
-흑인이 못 생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외모 혐오 발언은 하지 말아야죠.
-※※도 사람들이 사기꾼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지역 차별 발언은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발언으로 보이십니까. 일단은 ‘아니’라고 말만 써놨지 명백한 인종차별, 지역차별이고, 자기가 차별주의자인지도 모르고 있는데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공정한 척까지 하고 있어요.
성소수자들의 성적 지향을 ‘취향’이라시는데, 예. 토끼들한테 풀맛은 취향에 잘 맞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풀이 취향이라 풀을 뜯는 건 아니죠. 취향, 취향 하면서 그거 바뀐(고친)사람들도 있다더라 하는 소릴 여기저기서들 지껄이시는데, 도리어 ‘성소수자가 싫어하는 것’이 진짜 ‘취향’이에요. 게이를 싫어하는 취향요. 일단 이성애자 중에도 남이 어떤 성적 지향을 가졌든 관심없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이성애자이면서 성소수자들의 문화를 하나의 문화적 취향으로 소비하는 사람들도 있어요.(물론 이들이 정말 성소수자 인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토론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라는 말 하나로 성소수자 개개인은 묶이지 않습니다. 간혹 보수 기독교인들과 얘기하다보면 게이 = 홍석천인 경우를 몹시 흔하게 보는데 게이들도 정말 천향지차 천차만별 각양각색입니다. 본인 스스로 ‘혐오스러운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퉁쳐서 혐오하는 것과, 한국 여성들을 ‘김치녀’로 퉁쳐서 혐오하는 것은 얼마나 다를까요? 크게 다를까요?
‘발언의 의도엔 혐오가 없었다’는 말로 ‘작성자가 이 사안에 지나치게 예민하다’실수도 있습니다만, 만일 그런 의견을 누가 제시한다면 전 ‘발언의 의도 자체는 혐오가 아니었다’는 전제 자체에 물음표를 던지겠습니다. 저 분들은 분명 ‘성소수자들이 혐오스럽다’고 했고, 그 말을 직접 ‘썼습니다’. 그것만으로 비난받을 근거는 충분합니다. ‘게이들 다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는 발언보다 ‘덜’비난받을 이유일 순 있겠습니다만.(과격한 비유라고요? 이빨 여러개 빼신 어느 남자 연예인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게시판의 피로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않는 선에서, 그러니까 단어 사용 등을 좀 유순하게 하는 선에서, 앞으로도 게시판 내 성소수자 혐오, 희롱등의 발언이 확인되면 가차없이 지적하고 토론을 유도할 생각입니다.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성소수자 인권 지지는 누군가에겐 그냥 올바른 생각, 진보적인 태도일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한텐 그냥 ‘생존’의 문제에요. 숨쉬는 문제입니다. 이 점, 기억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2015.09.06 15:49
2015.09.06 15:51
중요한 지적 해주셨습니다. 5000년동안 동성애 청정국이었단 헛소리를 방송에 나와서 찍찍 싸대는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야말로 ‘수입’된 것이라는 지적이 대세적이에요. 다만 여기에 대해선 저도 ‘카더라’수준의 지식밖에 없어서 자신있게 말씀드릴수가 없군요.
2015.09.07 12:28
2015.09.07 12:55
2015.09.07 13:08
그리고 세종이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앞으로 또 다시 이런 일이 적발되면 초범은 장 70대, 재범은 장 100대에 처한다."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아 당시 법전이었던 조선경국전에는(정도전이 만든겁니다)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한 적도 없고 또한 처벌 규정도 없었음을 알 수 있죠.
게다가 세자빈 봉씨도 노발대발하는 세종에게 " 사내랑 사통한게 아니니 죄가 없다." 며 강하게 반발합니다. 그동안 역사 학자들은 왕세자비 봉씨의 개인 캐릭터가 쎄서 저렇게 저항한거 아니냐고 해석했지만, 제가 보기엔 봉씨는 동성애가 '범죄'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더군요. 그러니까 당시 조선은 건국한지 불과 수 십년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은 고려 왕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었을 때니까요.
2015.09.07 13:13
2015.09.06 16:19
너무 닫혀있는 세계에 살아서 그럴거에요. 저도 그렇구요. 동양인이 주류가 아닌 곳에서 살았다면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은 안했겠죠.
"동양인(한국인 포함)은 눈이 쫙 찢어지고 웃기게 생겼잖아? 동양인(한국 남자)는 비리비리하고, 내가 동양인 남자로 태어났다면 끔찍할거야. 그래도 동양인을 차별하면 안돼. 그건 나쁜거지"
이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정당하다 왜 숨겨야 하냐"는 걸 무슨 절대명제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양인에 대한 언급을 하면 펄쩍 뛸 사람들이 말이죠.
듀게는 덜한 곳이에요. 엠팍은 정말 심하죠.
2015.09.06 16:32
여기가 덜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도 논쟁이 있었죠. 실제로 아시아 사람은 눈찢어진 거 아니냐, 객관적인 묘사 아니냐 이런 얘기도 나왔었고요 (제 기억이 맞다면). 아시아 사람으로서 비 아시아계와 섞여서 살아가는 사람한텐 굉장히 충격적인 발언이었고, 성정체성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변의 위협으로 느끼는 문제를 너무 가볍게들 취향이란 표현으로 포장하는 것 같아요.
2015.09.06 17:45
저도 그 논쟁 기억이 나요. 스타벅스 인종 차별 사건으로 시작되었던 논쟁으로 기억해요. 해당 논쟁은 거의 평행선에 가깝게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그 논쟁 뿐 아니라 듀게에서 진행된 논쟁 몇몇을 보고 나서 듀게라고 딱히 다르지 않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듀게는 말투 자체가 온건해 보이기 하지만, 더 신경질적으로 의견이 오고갈 때도 많았던 것 같구요.
2015.09.06 16:29
2015.09.06 16:55
힘이 되실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듀게에서만큼' 이라면, 그런 발언들이 잘못되었다는걸 느끼는 분들이 훨씬 많을겁니다.
2015.09.06 22:16
물론 동의합니다만... 예전에 어떤 사이트에서 동성애 문제가 언급되었을 때 "나 자신은 그런 행동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지만 그래도 그들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가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정말 있었어요. 그런데 그 게시판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다가 대고 "자기 자신은 구역질 난다는 말로 슬쩍 방어막을 치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웃기지 말고 솔직히 말해 너 호모새끼지?"라며 이지메를 가하는 꼴을 본지라 그 사람에 대해 그렇게 심한 욕은 못하겠네요... -_-a
2015.09.07 12:31
2015.09.07 18:45
게이가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퀴어축제에서 흉칙한 나체를 드러내놓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노출증 게이는 불편하고 존중해줄 필요도 없습니다.
2015.09.08 03:08
일단 나체는 아니었죠. 주요부위는 모두 가렸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것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탄탄하고 멋진 근육의 남성이 수영복만 입고 퀴어축제에 나타났다면, 그러한 불편함은 덜 했을까요?
퀴어축제니까 뭔가 눈요기나 재미요소가 될 수는 있겠구나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그 스모 느낌의 팬티를 입었던, 배가 늘어졌던 그 흉측해 보였던 노출 게이는 왜 불편함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누군가에게 흉측하다고 하는 건 실례입니다.
그 사람은 축제에 참여했고, 축제는 일반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의상과 차별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수영장이 아닌 곳에서 웃통을 벗거나 허벅지를 드러내는 게 불법도 아니구요.
(물론 그 사람이 엉덩이만큼은 노출하지 않았어도 된다고 생각은 합니다.)
어찌됐든 그러한 노출 지적을 받아들이고 올해 축제는 다들 그 더위에 옷을 입고 있었죠.
저는 앞으로의 퀴어 축제에 노출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기와 엉덩이만 확실히 가리고, 성행위 묘사라거나 그런 게 없다면요.
몸 좋은 사람들이면 당연히 더 좋겠고, 몸이 안 좋아도 최소한 이날만큼은 축제를 즐기는 구나 싶은 마음으로 즐겁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서구의 문화라는 둥 그런 건 모르겠고요. 한여름에 더워서 땀나서 웃통을 벗겠다는데 말릴 것도 없죠.
노출은 자유와 해방의 심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정선만 지킨다면요.
2015.09.08 12:34
그러니까 혼자 즐기시란 말입니다.
2015.09.09 03:26
미안하지만 그거 즐길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한국에만도 수십만명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키니 차림에 신촌 한복판에서 물총쏘던 축제를 보고 성소수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러건 말건 별 감정 없었거든요.^^ 님은 굉장히 쓸데 없는 곳에 감정을 소비하시네요.
2015.09.08 02:55
안녕하세요 마조히스트님, 같은 성소수자로서 일단 반갑습니다.
일단, 최근 5년 간의 듀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5년 전에 듀게에 성소수자 혐오 반대에 대해 종종 글을 썼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듀게가 빠른 속도로 성소수자 인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아마 현존하는 유명 게시판 중에는 듀게가 가장 호모포비아가 적거나, 있어도 의견을 표출 못 하고 있을 겁니다.
당시 저와 몇몇 유저들의 바톤을 이어 좋은 일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구요.
이제 과제는 이거죠.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고 혐오스러울 수도 있고 + 나는 게이가 아니지만, 그들의 인권은 존중한다'
이런 덕지덕지 조건부 없이 그냥 별 생각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마조히스트 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성소수자 중 그 어느 누구도, 아기를 안고 있는 행복한 부부를 보면서,
'쟤들도 저 애 낳겠다고 그 짓 했겠지? 어떻게 이성과 그게 가능하지' 라고 생각하거나 더욱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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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처음부터 뭐가 어떻게 꼬이기 시작한건지 궁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