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11:29
2015.10.30 12:09
2015.10.30 12:41
2015.10.30 13:38
그냥 소설 시놉시스 아녜요?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2015.10.30 13:58
2015.10.30 13:41
2015.10.30 14:02
2015.10.30 13:45
음. 저도 역사는 잘 모르지만.
일단 김진명이 중요하게 언급하는게 자신이 1990년도 소설을 준비하며 문제 제기를 하기 전까지, 당시 한국 학계는 <이진희의 석회도부 조작설(석회도말론)>에 얽매여, 그 자체가 조작이니 임나일본부설은 가짜다.라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는건데...
(이진희의 논문은 아마도 이것)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3900109&dir_id=1&field=0&unFold=false&gk_adt=0&sort=1&qvt=1&query=%EC%9E%84%EB%82%98%EC%9D%BC%EB%B3%B8%EB%B6%80%20%EA%B4%91%EA%B0%9C%ED%86%A0&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2&ndsCategoryId=10102&library=112)
쉽게 검색되는 1984년 논문 (한국학중앙연구원- 현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박물관장인 이근우씨 학국학중앙연구원 석사과정 논문인듯 싶군요.)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7389377&dir_id=1&field=0&unFold=false&gk_adt=0&sort=1&qvt=1&query=%EC%9E%84%EB%82%98%EC%9D%BC%EB%B3%B8%EB%B6%80&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12&ndsCategoryId=10102
만 봐도 당시 학계가 김진명이 언급하는 단순한 정도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지 않다는게 보이고,
나아가 김진명은 광개토대왕비 신묘년의 소거된 두글자만 맞추면 모든게 깨끗이 풀리는 일.이라며 <동>자를 자신이 발견하며 모든 정황이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데..이건 누가봐도 유치하고 벙찌는 주장이 아닌가 싶네요.
2015.10.30 14:03
2015.10.30 14:09
저도 잘은 모르는데, 제가 링크한 논문들은 쉽게 검색되는, 김진명이 주장하는 시기의 것들이라 근래엔 더 다층적이고 숙성된 것들이 많을것 같고, 중국쪽에서 검증된 논문들도 많다는것 같아요.
그리고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서는 광개토대왕비 뿐만 아니라 칠지도등 많은 유적들이 얽매여 있고, 각각에 따른 다양한 논문들이 존재하는 듯하니 찾아볼수록 김진명의 주장은 너무 단순무식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2015.10.30 14:16
당장 두번째 문장부터 헛소리입니다. 김진명은
"수백 년 세월을 압록강 건너 편 중국의 지안 땅속에 묻혀 있던 이 비는 큰 비가 와 흙이 대거 쓸려나간 후 돌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고 하였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광개토왕비의 높이만 6m가 넘습니다. 이게 땅 속에 파묻혀 있다가 비 때문에 흙이 쓸려 나가며 나타났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광개토왕비는 그 자리에 천 수백 년 동안 우뚝 서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들도 비가 거기 있다는 걸 다 알았습니다. 무려 '용비어천가' 주해에도 이 비의 존재가 나오고, 조선 후기 지도에도 이 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조선 사람들은 이곳이 압록강 너머 국경 바깥이기 때문에 직접 조사를 하진 않았지요. 이 비가 고구려의 것이라는 것만 알았어도 어떻게든 조사를 해 볼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만, 조선 사람들은 비가 서 있는 집안 지역을 여진족의 옛 수도라 생각했고 광개토왕비도 금나라 황제의 비라고만 생각했던 겁니다.
광개토왕비는 1877년 즈음에 재발견되는데, 오랫동안 봉금지였다가 1876년 이 지역에 '회인현'이 설치되며 부임하게 된 청나라 지방관의 부하 관월산이라는 사람이 지역민들에게 근처에 오래된 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개토왕비를 방문하게 된 것이죠. 천 수백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 전체가 이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걸 탁본을 뜨기 위해 마을 사람 초씨가 비 표면에 말똥을 바르고 불을 질렀는데, 그 때문에 비 표면이 갈라지고 깨져 나가서 상당수 글자가 날아가 버립니다.
김진명은 자기가 가 보니 석회 같은 거 없더라고 이야기하지만, 비에 석회가 발라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진희의 주장처럼 일본 육군 참모부가 한 것이 아니라, 비 근처에 살며 탁본 장사를 하던 초씨 집안 사람들이 울퉁불퉁한 비 표면과 흐릿한 자획을 탁본 뜨기 좋게 다듬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석회 도포의 전말은 1984년 중국 학자인 왕건군이 다 조사해서 책으로 낸 내용입니다.
김진명은 자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료 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왕건군의 책은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찾을만큼 구석에 숨어 있는 게 아닙니다. 왕건군은 광개토왕비 연구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죠. 김진명은 왕건군의 책 구석에 초균덕이라는 사람의 판독문 저본이 실려 있다면서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초균덕이라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광개토왕비에 석회칠 해대며 탁본 장사를 하던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당연히 이 사람이 남긴 저본 따위 별 가치가 없습니다. 학식이 부족해서 멀쩡한 글자도 석회를 칠해서 엉뚱한 글자로 만들어 왜곡했던 사람이 바로 초균덕인데요. 왕건군이 자기 저서에 초균덕의 판독문을 붙여 놨으면서도 자기 판독문에 반영을 안 한건,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서입니다.
김진명이 자기가 숨겨진 '동(東)'자의 비밀을 밝혀내서 학계에서 '석회도말론'을 주장하던 논문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과대망상도 이런 과대망상이 없네요. 석회도말론은 1984년 왕건군의 저서가 나오면서 사실상 학계에서 사장이 된 겁니다.
그나저나 다음 펀딩의 김진명 연재글의 정체를 모르겠네요. 소설입니까? 르포입니까? 아니면 그냥 망상인가요.
2015.10.30 14:56
2015.10.30 15:03
아, 소설이었군요. 그런데 무슨 소설을 논픽션처럼 쓰는지. 하긴 이 양반 출세작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부터 그랬군요.
한편으로는 악질적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소설'이라는 방패막 뒤에 숨어서 교묘히 실제와 망상을 자기 편한대로 섞어서 퍼뜨리는 게.
이 글만 읽은 사람은 인간 김진명이 실제로 역사학계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2015.10.31 02:35
2015.10.30 15:32
저도 학부 때 이른바 '초씨부자'설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배웠던거 같습니다. 탁본 장사를 하려면 탁본을 예쁘게 떠야 되는데 글자가 파이거나 훼손된 부분이 있으면 안되니까 지들이 회칠을 해서 깨진 부분의 글자를 메웠다고...
생각보다 국가기관이라는게 유적에 신경을 잘 못써요. 21세기에 수도 한복판에 있는 남대문이 홀랑 탔는데 저 어디 촌구석에 있던 비문하나를 빡세게 관리했겠습니까? 일제가 악랄하다고는 해도 그거 발굴해서 하나하나 뜯어고칠 시간과 예산이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가진 조직이 못되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로 시민들이 피라미드를 뜯어가서 집짓는데 쓰고 근처에 살던 저런 인간들이 광개토왕 비문을 멋대로 팔아먹을 수 있었던 거죠.
2015.10.31 02:33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진희 선생의 주장이나 왕건군이 한 해석들은 알고 있었는데, 초균덕 얘기는 처음이라…―,.―
2015.10.30 18:50
그래서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는 뭐라고 생각한다죠? 예전에 박정희 찬양한적이 있으니 국정화도 찬성할꺼 같네요.
2015.10.31 02:37
2015.10.30 20:21
자기 부풀리기가 아주 체질인 사람 같기도
2015.10.31 02:38
첫문단까지만 읽고도 알겠네요
헛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