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20:08
지금 듀게에서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공기밥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전 한식집에 갔을 때 성별에 따라 밥량을 달리 주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이러한 관행이 있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더불어 왜 남성의 밥공기가 디폴트고, 여성이 더 밥을 먹기 위해선 추가적인 요금-그것이 비금전적인 것일지라도-을 지급해야하느냐는 의문에는 깊이 동감합니다. 전 남성이지만 위장이 그리 크지 않아서 대부분 밥을 남기는 편이라 기본적으로는 식당에서 밥을 조금만 주되, 필요한 사람이 떠먹거나 추가로 구매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식당 입장에서도 밥을 더 원하는 쪽이 추가적 요금을 내게 하는 편이 더 이득일텐데요. 이건 단순한 관행의 연장선일까요, 설마 남성들이 우르르 모여서 밥을 더 달라고 하는게 더 큰 비용으로 여겨지는 걸까요. 음... 직장인들이 몰리는 바쁜 점심 때라면 그럴까요?
어쨌든, 제가 하고싶어하는 이야기는 조금 다른 이야깁니다. 어떤 분께서 클럽이나 식당가에 여성할인이 있는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글을 올리셨고, 댓글들은 대체로 영업전략이라는 쪽으로 기울더군요. 사실 위 두 경우는 모두 가격차별에 해당하는데, 개개인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따라서 동일한 상품에 다른 가격을 부과하면서 공급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죠. 이런 건 여러군데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여초집단이라, 클럽이나 술집과는 반대로 (일정조건 이상의) 남성에게는 가입비가 없거나 오히려 여러 혜택을 주어가면서 데려가려고 한다고 하더군요. 자동차 보험을 들 때는 그 사람의 사고 전력이나 운전 경력 뿐만 아니라 나이, 성별, 심지어는 지역까지도 세부적으로 구분해서 보험료를 징수하구요.
이게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는지 찾아봤는데, 그것이 시장 경제에 분명한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하더군요. 미국의 경우 로버트-패트만 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격차별을 금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취지가 경쟁저하를 방지하는데 있어 "연방대법원은 로버트-패트만법의 본래 취지가 판매자의 경제저해행위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경제력을 보유한 구매자들에 의한 경제저해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신영수, 제2선 가격차별과 로버트-패트만법)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공정거래법으로 처벌하는데, "1)가격차별이 거래수량의 다과, 수송비, 거래상대방의 역할, 상품의 부패용이성 등에 근거해 한계비용의 차이나 시장상황을 반영하는 경우, 2)당해 가격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효율성 증대효과나 소비자후생 증대효과가 경쟁제한효과를 현저히 상회하는 경우"(정혁진, '부당한' 차별적 해위만이 불공정행위로 간주)는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어 처벌대상이 아니라고 하네요. 살펴보니 위의 사례들은 (식당이나 클럽, 결정사, 보험회사들이 독과점 기업이 아닌 이상) 모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런다면 이것을 '윤리적'으로 지탄할 수 있을까요? 소비자들 중 가격차별로 혜택을 보는 이들이 있지만 동시에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는 이들도 있는만큼, 이들이 불매운동 등을 통해 자신들의 그룹 역시 충분한 가격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넘어 후자의 사람들이 가격차별을 준엄하게 꾸짖는 게 가능할까요? 어떻게보면 가격차별도 개인을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구분짓고 차별하는 것인데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그것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되는걸까요? 아니면 '편견'이 아니라 '통계'에 의한 것이라 괜찮을 것일까요? 차별에 기초하는 사실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것(가격탄력성이라는)이기에 괜찮을 것일까요?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듀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15.11.28 20:23
2015.11.29 00:04
2015.11.29 01:44
여러 지점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선은 여성한테만 할인하는 건 미리 공지하고 하는 것이고 여성한테 밥을 덜 주는 건 공지 없이(=합의) 없이 차별을 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2015.11.29 01:55
저는 경제학적으로는 충분히 비난 받을만한 여지가 많다고 생각되는데
윤리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되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려면 최소한(필요조건으로)
'동일 상품은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하게 판매해야한다'는 명제가 윤리적인 명제가 되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지 않을까요?
2015.11.29 06:55
경제학 공부를 안한지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그러니 개념 사용이 이상하단 지적 환영합니다), 예컨대 트위터에 밥을 조금 주고 더달라고 했더니 남기지 말라고 잔소리까지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올리고 사람들이 비판하는 건 정보의 공유를 통해 여성 소비자의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높이고 그 사실을 공급자쪽에게 알리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는 걸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격차별이 반드시 불법이나 비윤리적이라곤 생각 안합니다만 그게 성별(혹은 외모)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면 소비자들이 충분히 심리적 저항을 느낄 수 있고 (또 그 저항의 근저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 차별적 문화가 있을 수도 있고요) 인터넷의 정보 공유를 통해 선호/가격탄력성을 바꿀 수도 있는 거죠 (즉 식사량 차별을 음식점 선택의 요소로 고려하겠다는 의사표현을 음식점 점주들에게 하는거죠). 지금의 비판이나 불만 표출을 충분히 경제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윤리적 vs. 경제적 반대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나요? 엊그제 몇몇 분들이 그런 곳이라면 목소리 높여 비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다음부터 안가면 된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그냥 다음부터 안가기 위해서라도 정보 공유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격차별이 가능한/했던 사회적 풍토를 얘기할 수도 있는 거고요. 특별히 한국 여성만 소식하는 건 아닐텐데 다른 나라에선 이런거 별로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가격차별이 완전한 정보에 근거하여 진정 효율을 높이고 소비자 후생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지 검토하기 위해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거죠.
2015.11.29 09:14
2015.11.29 09:23
여러 게시글에 대고 비난받을 만한 남녀차별이 아니고 경제적 판단에 근거한 합리적 차별이라고 주장하시던데, 정보가 불완전하면 가격차별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죠.
게다가 가게의 차별적 의도의 존재와는 별개로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혼자도 아니고 일정 수가) 있으면 그건 문제 아닌가요? 저는 외국 생활이 길어져서 언급된 경험을 마지막으로 한 것도 아주 예전이고 그 이유로 이게 심각한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불쾌하단 사람한테 그건 네가 불쾌할 문제가 아니라고 굳이 누/누/히 주장들을 하는 이유를 참 모르겠군요.
2015.11.29 09:30
2015.11.29 09:35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건 뭐 개인의 자유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얘기만 덧붙이죠. The personal is political이란 구호가 왜 나왔습니까. 거대한 여성 차별 문제가 아니라 개인대 개인의 사소한 문제들(라고 인식되었던 문제들)을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게되면서 여성 (다른 소수자로 바꿔도 되겠죠)의 권리가 향상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거 별거 아니다, 더 중요한 차별 문제가 있는데 뭐 이딴 일로 분개하느냐, 이런 얘기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고 또 지겹습니다.
소비자후생이란 개념이 잘못되었다면 사회전체후생 증가, 파레토 개선으로 고치죠.
2015.11.29 09:42
2015.11.29 10:41
다른 글에서도 질문드린 적 있지만, 님이 생각하는 성차별은 어디부터인지 묻고 싶습니다.
성별을 근거로 한 작은 차별을 성차별이라 부르는 것이 왜 '이름을 부여'하는 거창한 일이 되는지도 모르겠고요.
누가 님더러 '지겹다'고 했고 '지겨운 놈'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이 그렇게 부른다고 내가 그런 사람 되는 것 아니니까 좀 더 얘기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5.11.29 09:32
2015.11.29 10:42
작은 차별이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사회에서 큰 차별이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시나요?
2015.11.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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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손 놓은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학문적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클럽도, 결혼정보업체도 특수한 케이스로서의 가격차별인지라 일반적 논의의 틀 안으로 끌어오긴 힘들지 않을까요? 만약에 경제학 책의 '가격차별' 챕터라면 뒤쪽에 별개로 다룰 내용이요. 여성을 공짜로 들이는 클럽의 경우 불륜조장 사이트나 인터넷 미팅 어플에서처럼 그런 가격정책을 취하지 않으면 업장 자체가 원활히 돌기 힘들 수 있어요. 결혼정보업체도 마찬가지. 이 부분은 까닥 잘못 말하면 돌 맞기 딱 좋은 사안이지만.. 아무튼 왜 그런지 다들 알지 않습니까. (극단적으로 여성이라도 조건이 좋으면 외려 업체에서 모셔가려고 난리라지요, 그 조건이란 게 천박해서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