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영화입니다. 장르는 뭐, 그냥 드라마라고 봐야겠죠. 그것도 역사 드라마! 런닝 타임 2시간 17분. 결말 스포일러는 피할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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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포스터 이미지들이 뭔가 에로틱 스릴러스런 분위기인데 반해 요건 멀쩡하다... 싶었는데 본토 포스터네요.)



 - 때는 1984년, 동베를린입니다. 주인공은 슈타지의 유능한 요원으로 현역으로 뛰면서 후진 양성 일도 하고 있는 '비슬러'라는 양반이에요. 건드리면 바사삭 소리가 날 것 처럼 건조한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합니다. 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뭐랄까, 알고 보면 되게 이상적이고 순수한 구석이 있죠. 그 나이를 먹고도 정말로 자신이 일하는 체제와 그 이상에 궁서체로 진지한 사람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멍청한 것 같기도 하고... (쿨럭;)


 암튼 이 양반이 어찌저찌해서 극작가와 배우 커플을 도청하게 되는 게 발단입니다. 타겟은 극작가이고 이 놈의 약점을 찾아내서 매장시켜 버리고픈 높으신 분의 개인적 욕심으로 굴러가는 미션인지라 좀 별로입니다만 그래도 조국을 위해서라면! 이란 맘으로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임무에 임하는 주인공인데요. 계속 도청을 하다 보니 이 두 사람과 그들의 삶이 꽤나 매력적이기도 하고. 또 이 도청을 통해 자꾸 접하게 되는 이들의 예술 세계나 취미도 빠져들게 되는 면이 있구요. 그렇게 이들의 삶에 과몰입해 버린 주인공은 어느샌가 이들의 삶에 개입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때 쯤 드디어 작전의 목적인 '큰 건수'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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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이 익숙하기 짝이 없는 스틸샷을 직접 영화로 확인했다구요!)



 - 실제 역사를 진지하고 무겁게 다루는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합니다. 비극적 드라마도 별로 취향이 아닌 데다가 예술가들이 나오는 이야기는 좀 더 별로에요. 그냥 제 취향이 그런 거니 뭐라 해명(?)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암튼 그래서 개봉 당시 그렇게 호평이었던 이 영화도 안 보고 건너 뛰었죠. 도청 & 심문 전문가가 주인공이고 당연히 스릴러 요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취향의 힘이란 그렇게 강력한 것인지라... ㅋㅋ 그래도 소재만 놓고 보면 제 취향과 닿는 부분이 좀 있으니 계속 미련만 품고 있다가 어제, 뭘 볼까 고민하기 싫어서 찜 목록에서 대충 재생 버튼을 누지른 게 이 영화였네요. 어쨌든 이렇게 16년만에 또 숙제 하나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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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근히 디테일이 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도청 타겟 집(아마도 바로 아랫층)의 구조를 바닥에 그려 놓은 모습.)



 -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에 주인공 극작가의 연극 공연 장면이 나옵니다. 일단 짧지만요. 그리고 이 연극의 원래 주연 배우가 바로 극작가의 애인이죠. 그리고 주인공은 이 커플의 삶을 뭔가 실시간 무대본 드라마 감상하듯 즐겨요. 그러다가 나중엔 이 사람들 삶에 끼어들어서 스토리를 만들고 결말까지 만들어 버리죠. 그러니까 연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연출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겁니다. 이렇게 겹겹이 형성되어 있는 이야기 구조가 재밌더라구요. 아마 똑똑하신 분들이라면 이걸 떡밥 삼아 창작자 - 작품 - 수용자의 관계에 대해서 몇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실 수 있겠지만 전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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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동독 체제 그 자체'를 온몸으로 맡고 계신 센터의 빌런님. 아 근데 뭔가 인상과 체구가... 아, 아닙니다;;;)



 - 보는 내내 구동독의 지배층은 정말 쓸 데 없을 정도로 열정적인 변태들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극중에서 묘사되는 모습이 얼마나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는진 모르겠지만 암튼 이 영화 내용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감시해야할 대상이 너무나도 많았을 텐데요. 그걸 또 대충도 아니고 이렇게 각 잡고 감시하려면 거기 들어갈 인력과 시간과 돈이... 농담이지만 '이딴 데 돈을 쓰니 나라가 그 꼴이 났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대체 동독 리즈 시절에 슈타지는 전부 몇 명이나 되었던 거에요? 이렇게 슬림하지 않은 정부라니 허허. 곤란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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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관료주의 조직으로 인간 소외를 일으키는 사회 속 개인의 비극을 풍자해보고자 열심히 구도를 잡아 보았습니다!)



 - 어찌보면 정말 고루하다 싶을 정도로 '정통 멜로'의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극작가 커플의 경우엔 그래요. 뭔가 되게 익숙한 느낌이기도 하구요. 일제 강점기 역사 때문에 한국에서도 대략 비슷한 이야기들 종종 나왔죠. 비밀 저항의 길을 택한 젊은 이상주의자 예술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에 빠져 버리는 슬픈 연인. 이야기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나아쁜 역사와 그 역사의 하수인들. 이런 장르를 싫어하다 보니 참 오랜만에 이런 걸 봤는데. 괜찮았습니다. 생각 외로 이 커플들 이야기가 디테일이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잘 짜여졌더라구요. 뻔한 이야기를 안 뻔하게 만들어냈다. 라는 말로만 쉬운 것을 잘 해 낸 각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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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뻔한 설정과 구도로 만들어진 인물들인데도 다들 절실하게 느껴지니 그냥 각본을 잘 썼다고 밖엔.)



 '정통적'인 걸로 따지면 주인공 비슬러의 스토리 라인도 만만치 않아요. 세상과 교류 별로 없이 고독하게 살며 자신의 일에만 단순 고지식하게 집착하던 양반이 자기가 멀리하던 부류와 함께 하다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이런 '저항 운동가' 스토리 라인에서는 거의 필수 요소급으로 들어가는 캐릭터인 것인데요. 이것도 역시 좋았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그렇게 변심하도록 영향을 주는 과정이 디테일하면서도 다채롭게(그냥 그 커플의 인간적 매력, 그들 때문에 전해 듣게 되는 예술 작품들, 그 시국에 눈 앞에 벌어지는 권력층의 부패상 등등) 보여져서 설득력이 있었구요. 뭣보다 배우님이 참. '와 독일 사람이다!'스럽게 생기신 분께서 '고독한 독일 아저씨는 이럴 거야'라는 선입견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시는데 뭔가 그냥 설득력이 쩌는 느낌. ㅋㅋ 게다가 은근히 귀여운 구석도 있으셔서 이대로 걍 해피엔딩 코믹극으로 가도 재밌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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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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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정적 예술가 Life의 폭풍 바이브에 빠져 들어 버린 비련의 주인공님.)



 - 그 와중에 스릴러스러운 측면에서도 꽤 괜찮았어요. 사실 주인공 커플에게 닥치는 위기들은 걍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는 데 반해 주인공 본인에게 계속해서 닥치는 위기 상황들은 상당히 쫄리더군요. 생각해보면 당연하네요. 그 커플들이 뭔 일을 벌일 땐 늘 수호천사 주인공이라는 쉴드가 작용하고 있었지만 정작 주인공 본인은 계속해서 쉴드 하나 없는 맨 몸으로 그러고 있었으니. 또 주인공이 그 커플 생각해서 해주는 일들이 계속해서 오히려 일을 나쁜 쪽으로 진전시키는 전개들도 아이러니한 느낌 들면서 재밌었구요. 

 그리고... 나름 유머도 꽤 있는 영화였습니다. 볼 땐 몰랐는데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래요. 특히 막판에 주인공이 일하는 곳에서 뒷자리 앉아 있던 양반이 초반에 식당에서 서기관 동지 갖고 드립 치다가 진땀을 뺐던 그 분이라든가... 라는 건 분명히 유머였겠죠. ...그랬겠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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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로 저항 좌파 지식인들이란 이렇게 좀 지저분 룩을 해줘야 제맛이죠.)



 - 암튼 뭐.

 역사적 비극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또 예술 만세! 도 외치고. 그 와중에 휴머니즘에서 희망도 열심히 찾구요. 여러가지 떡밥들을 하나로 잘 엮어서 재밌게 잘 짜낸 영화였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지만, 잘 만들어서 그냥 재밌게 잘 봤구요.

 특히 역사도 잘 알고 예술에도 관심 많은 교양인 분들께서 보시면 훨씬 재밌게 보실 것 같은, 그런 영화였네요.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런 느낌이었어요. ㅋㅋㅋ 여튼 이렇게 왓챠의 찜 목록에서 또 하나를 지워봅니다.




 + 에필로그격... 은 아니고 그냥 최종 엔딩으로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도서관 장면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 시절에 이미 그렇게 일반 대중들에게 정보 공개를 다 했다구요? 보면 2차 대전 후의 모습도 그렇고 독일인들은 여러모로 지구 최강의 반성문 특화 민족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애초에 그럴 짓을 안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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