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는 영화 보는 눈이 까다롭지 않아서 뭐든 대충 잘 봐요. 사실 나는 범죄도시3이 재미없다고 까이던 여론도 갸우뚱했거든요. 범도3 정도면 충분히 재밌게 잘 만든거 아닌가? 


 현실적으로 마동석에게 져주기 위해 등장하는 배역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악역들도 그 정도면 최고예요. 이정재나 이병헌 같은 급의 배우가 범도에서 빌런으로 나와봤자 '와 대단하다'라는 반응보다는 '쟤가 저기에 왜?'정도의 반응일 거니까요. 그리고 2나 3이나 시간 낭비 없이 그때그때 인상적인 시퀀스가 분명 있었고요.



 2.그런데 4는 글쎄요. 감독이 인상적인 씬을 못 만드는 건지 범죄도시로 팬픽을 만들어오는 과제를 맡은 학부생의 영화 같아요. 그냥 학점 받으려고 선배들의 논문을 짜집기한 대학생의 논문 같기도 하고요.



 3.일단 셋팅이랄까 포석이랄까...거기부터가 문제예요. 이야기라는 건 각 캐릭터가 최고로 활약할 수 있는 셋팅값, 그리고 서로간에 갈등과 충돌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셋팅값을 설정해놔야 해요. 예술 영화도 아니고 범도같은 영화는 더욱 그렇죠.


 예술 영화라면 김치찌개를 못 끓여도 되거든요. 뭔가 고개가 갸우뚱하는 맛이어도 '셰프가 깊은 뜻이 있겠지...'하면서 먹으니까요. 하지만 범도는 아니예요. 찌개 한 술 뜨고 밥 한숟갈 먹는 순간부터 고개가 끄덕여지고 찌개그릇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맵고 달고 짠 맛이 어우러지는 msg의 향연이어야 하죠.



 4.휴.



 5.그런데 일단 김무열의 캐릭터는 피해자예요. 거기에 대고 피해자라는 말을 쓰는 건 좀 웃기지만 피해자가 맞거든요. 그렇게 일을 잘 하는 직원이 보너스를 못 받아서 한국에 사장을 만나러 온 상황이니까요. 그것도 사장을 만나서 예의바르게 행동하고요. 김무열이 분명 나쁜 놈인 건 맞는데 이 영화 안에서 하는 행동들, 겪는 상황들은 본인의 악행에 관한 게 아니란 말이죠. 김무열(백창기)은 하필 '이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만큼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가장 매너있고 가장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예요. 


 그런데 본인이 피해자인 상황을 처리하고 떠나려는 김무열이 하필이면 김무열을 잡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마동석이랑 마주치게 된단 말이죠. 애초에 필리핀에 있어야 할 사람이 하필 그렇게 딱 마동석이 노리는 시점에 한국을 온다? 이건 별로예요. 김무열 입장에서는 한국에 악행을 저지르러 온 것도 아니고 마동석과 부딪혀야 할 이유도 없단 말이죠. 그의 시점에서 보면 마동석은 적이 아니라 그냥 귀찮은 아저씨일 뿐이예요. 


 2편의 손석구는 적어도 적극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한국에 온 거고 마동석이랑 충돌할 당위성이 있었는데...차라리 이럴 거면 마동석이 필리핀까지 쳐들어가서 김무열을 잡는 게 어땠을지.



 6.IT 싸이코의 캐릭터도 이상해요. 저렇게 일 잘하는 직원이 인센티브 10%만 더 달라고 하는데 그걸 안줘서 이 사단을 만든다고? 심지어 그 직원은 인센티브 달라고 한국에 와서는 코인 상장까지 도와줘요. 그럼 그냥 돈을 퍼줘도 될 올해의 직원인데 에쿼티나 명예를 나누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돈'을 안주면서 이런 아사리판을 만든다? 


 그야 전화 먼저 끊는 거 가지고 자존심 긁히는 캐릭터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IT 싸이코의 사정이죠.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좀더 그럴듯한 이유로 갈등이 발생해야 해요. 그래야 그 갈등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7.그리고 분명 제작진은 작년부터 인터뷰에서 이랬어요. 이번 빌런은 열라 강한 특수부대원이고 마동석을 고전시킬 거라고요. 그래서 마동석이 마지막 결전에서 상대가 칼 트랩 기관총 모든 걸 다쓸수 있는 영역에 가서 싸우는 줄 알았죠. 마동석의 전투력이면 그 정도로 상대가 유리한 상황에서 싸워야 합이 맞으니까요.


 한데 마지막 결전은 김무열이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벌어져요. 범도월드에서 특수부대원이고 뭐고 무기 밀반입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오직 맨몸으로만 싸워서 마동석을 이길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래서 마지막 결전에 들어가는 상황부터 '대체 어떻게 빌런이 마동석을 고전시킨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곧 그 인터뷰는 뻥카였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김무열은 지금까지 싸워온 모든 빌런 중에서 마동석이 가장 덜 고전한 상대였어요.



 8.차라리 공간이 넓었거나 무기가 많았거나 둘 중 하나라도 김무열에게 유리했어야 하는데 마동석에게 버프가 잔뜩 들어간 상황이라 마지막 결전은 쉽게 이겼어도 좀 짜치는 상황이예요. 뭐 그래도 그 상황에서 김무열이 마동석을 고전시켰으면 설정오류이니...차라리 설정은 지키고 다음 편을 기약하게 됐으니 그편이 나은 건가?



 9.어쨌든 그래요. 내가 보기에도 김무열의 캐릭터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빌런 중에 가장 스펙이 높고 강하고 악독한 게 맞아요. 한데 사람에게는 여러 면모가 있는 법이잖아요. 하필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ㅈ소기업에서 돈도 제대로 못받으며 일하던 가엾은 직원 김무열이 사장한테 밀린 월급 좀 달라고 찾아온 상황이란 말이죠. 


 다른 범죄도시의 빌런들은 그들이 가해자인 지점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었어요. 그들이 지닌 인간미나 상황에 따른 입체적인 면모는 거의 드러날 일 없이 딱 가해자의 일면만을 보여주며 극을 이끌어 나갔죠. 한데 김무열은 설정상으로만 가장 강력할 뿐이지 상황상으로는 가장 취약한 면모를 영화 내에 드러내야 하니...이럴 거면 차라리 이전의 빌런들이 나았다는 소리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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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범죄도시를 김치찌개에 비유하면서 만들기 쉬운 영화인 것처럼 평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데 김치찌개는 비유일 뿐이지 1시간 30분 내내 달고 짜고 밥한숟갈 맵고 짜고 밥한숟갈 계란말이를 먹여주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잘 아는 맛이라는 뜻에서 김치찌개인 거지 끓이기 쉽다는 뜻으로 김치찌개는 아닌거예요.


 이번 범죄도시4는 범죄도시 같은 영화들이 사실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 영화인지 보여준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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