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른 곳에 먼저 올려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장 르누아르의 인생극장’이라는 제목으로 르누아르의 대표작 5편이 상영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5월 19일까지 계속된다. 이번에 상영되는 영화들은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리스트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임의 규칙>(1939)을 비롯해서 막심 고리키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밑바닥>(1937),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을 선취한 걸로 평가받는 <토니>(1934), 드가, 로트렉의 회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색채의 스펙터클이 인상적인 <프렌치 캉캉>(1955), 대가다운 세계에 대한 통찰을 선사하는 <엘레나와 남자들)(1956)이 있다.(5월 19일 오후 4시 <엘레나와 남자들> 상영 이후에는 김보년 프로그래머의 토크 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이번 상영작들은 모두 디지털 복원판으로 매우 뛰어난 화질로 르누아르의 영화들을 볼 수 있다. 아직 5편을 모두 볼 기회가 남아있으므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보시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르누아르의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감탄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추천글을 남긴다. 유명한 인상파 화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인 장 르누아르는 그의 아버지가 회화의 영역에서 성취한 것에 버금가거나 아버지를 능가하는 업적을 세계영화사에 남겼다. 르누아르의 영화들을 설명할 수 있는 용어들로 ‘유동성‘, ’역동성’, ‘운동성‘을 들 수 있다. 르누아르의 영화는 살아있는 유기체 같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 운동을 멈추는 법이 없다. 르누아르의 영화 속 인물들도 서사도 카메라도 계속 움직인다. 그래서 르누아르의 영화는 어떤 위계로부터 자유로우며 수많은 경계들을 탐색하는 데 용이하다. 그의 영화가 개인과 사회(계급), 무대와 현실 등을 넘나들면서 수많은 통찰들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영화는 관객들의 고정된 사고를 계속 무너뜨린다. 이러한 태도는 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영화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작동하는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을 닫을 뿐이지 영화가 시작하기 이전이나 끝난 이후에도 그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는 착각마저 안겨준다. 그런 측면에서 ‘네버 엔딩 스토리’와 같은 끊임없는 서사의 실험을 감행한 하워드 혹스의 <몽키 비즈니스>(1952)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끊임없는 운동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영화이다가 보니 르누아르의 영화에서 인물들과의 관계는 계속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 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삶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 흐른다는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는 르누아르의 영화는 주로 희극적인 성격을 띠는데 시종일관 유쾌하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극장을 나설 때쯤에는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겨줄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역대 최고의 영화 10편에 뽑는 <게임의 규칙>은 놀랍게도 완벽한 희극이자 완벽한 비극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탄탄한 서사 구조 속에서 펼쳐지면서 한편으로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한없이 자유로운 즉흥적인 감각으로 넘쳐난다. 나는 이런 영화를 <게임의 규칙>말고는 본 적이 없다. 

존 포드와 함께 영화사상 공동체에 관한 가장 뛰어난 영화를 만든 장 르누아르의 영화는 삶과 세계에 관한 대단한 깊이를 지니고 있으나 그런 걸 다 떠나서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영화적 재미에 있어서 어떤 감독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전혀 낡지 않았다. 지금봐도 세련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하신 분이 계신다면 이틀 동안 장 르누아르의 인생극장에 많이 참여해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P.S: 하스미 시게히코의 ‘존 포드론’의 출간을 계기로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서 존 포드가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스미가 애정하는 또 한 명의 감독인 장 르누아르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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