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9 09:03
아으... 밤을 샜더니 메롱이네요. 오전에 요가를 가고 점심/오후의 약속을 나가고 싶었는데...
요가는커녕 잠 한 숨 못자게 생겼습니다. 왜냐면 지금 잠들면 저는 11시에 깰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어제 새벽에 제 SNS에 올린 글을 옮겨 봅니다.
유아인/페미니즘 논란에 글 하나를 보태는 셈이어서 죄송스럽긴 하지만...
여기엔 올려보고,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 * *
유아인이나 페미니즘 논란 관련해서 뭐라도 써 볼까 싶더라도 망설이게 되는 지점은... 현재 여성들의 페미니즘적인 '자아 찾기 서사'의 가장 깊은 심연을 (내 시각에서)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더 이상 너희 남성은, 너희의 논리와, 너희의 이야기와, 너희의 관점은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남성적 서사의 '부산물'로 살아 온 역사와 지금도 시궁창인 현실 탓이겠지만, 그 이유를 떠나서 어쨌거나 지금 여성들은 표면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든 간에, 잠재적으로는 "남자들은 이제 그만 좀 떠들어 줄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본다. 그만 나서라는 사람들 앞에서 기어이 (남자가) 그럴 듯한 말을 보태는 것도... 우습고 멋쩍은 일인 건 분명하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이런 사안에 대하여 균형 잡히고 차분한 관점을 유지하는 여자분이 있었는데, 내가 현재 운동의 이러이러한 부분은 좀 심하지 않은가요, 라고 물으니, 그녀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란 건 아니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는 건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해요. 아직도 너무나 부족해요." 이 답을 듣고, 아, 대부분의 여성들이 내가 미처 그 깊이를 다 알기 힘든 분노를 담은 채 살고 있었구나, 란 걸 절감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즉 너무나 평범한 '한국남자' 1인은 여성들의 '서사 추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그 서사에 참여하는 방법은 오로지 여성들을 명백하게 옹호하며 편을 드는 수밖에 없는데, 그처럼 답이 정해진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솔직한 교감과 대화라기보단, 그야말로 운동의 프로파간다에 가까워서 서로에게 그다지 유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는 대부분의 '페미니즘적인' 남자분들은)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되고, 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일이 갖고 있는 어떤 점잖음의 미덕이 있을 것이다.
또는, 스스로 안티테제가 되어 아주 부정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 유아인이 그런 경우인데, 말하자면 여자들의 서사 추구를 영리하게(자신의 입장에선 절박하고, 정당하게) 이용하여 '객관적이고 정의로운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서사'를 확립하는 케이스라 할 수 있다. 페북 스타 장주원은 이번에도 보란 듯이 "진정한 페미니스트" 운운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매력적으로 장식하는 장렬한 포스팅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대다수의 자극적인 안티테제는 자기 과시의 혐의가 짙고, 그보다는 '여성들의 서사'에 전혀 성찰적으로 개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냥 내 팬들에게 내 매력을 뽐내는 프로파간다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나는 SNS에서 '전면적으로 여성들의 편을 드는' 거의 모든 남자들의 포스팅에서도 조금은 '영합적인' 느낌을 받는다. 왜냐면, 각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결국 (여성들의 서사에 참여하기 위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김승옥과 김훈의 소설들을 당장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외치던 당시, 그들의 작품을 사랑하는 나는 그녀들을 미워했다. 지금도 난 김승옥을 사랑한다. 그의 작품속의 모든 여자들이 창녀나 자폐적인 존재로 묘사된 사실도 잘 안다. 그리고 '남성의 서사에서 전면적으로 목소리가 지워졌던' 여성들이 그런 서사적인 흐름에 얼마나 큰 분노를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그러나, 그 분노가 김승옥의 작품들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입증하진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런 '비뚤어진 여성관' 때문에 김승옥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히, 전혀 아니다. 여성들이 김승옥 불매를 주창하는 건 당연히 그들의 자유다. 여성들이 김승옥 판매금지를 주장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성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서사'(김승옥 따위는 읽어선 안 된다는)를 쌓아가고 있고, 거기에 나 같은 (다소 복잡한 맥락의) 남자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선, 지금 나 같은 '한남 1인'은 과거의 빚을 갚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절반인) 타인의 열렬한 '자아 찾기'에서 완벽히 배제되는 일의 소외감을 느끼며.
여성들과 함께 김승옥/김훈을 욕하고, 그들에게 '여성과 페미니즘을 잘 모르면, 입을 닫고 있었어야 한다'고 훈계하던 몇몇 남성들에 대한 내 기분은 좀 더 복잡했다. (사실 두 작가를 욕하던 여성들보다 이들이 더 미웠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들의 자유지만, 마침 '그 타이밍'에, 작가를 향해 돌을 던지는 태도는 품위 없고 천박하다고,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아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의 앞머리를 "유아인의 글은 형편없었지만..." 운운하는 장주원급 남성들의 포스팅을 벌써 몇 건이나 봤는데, 유아인의 글이 뛰어나고 형편없고는 이 문제의 핵심이 전혀 아닐 뿐더러, 그 뒤의 내용들도 마침 유아인과 논쟁을 벌여 유명해진 영화평론가의 트윗들처럼, 이미 '여성들에 의해서 수천 번은 말해졌고, 말해지고, 앞으로도 말해질' 내용과 판박이었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그랬다.) 결국, 그들은 그런 문장들로 자신의 세련된 감식안과 지성과 PC함을 포지셔닝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모든 포지셔닝은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자기 고백의 다른 표현일 테니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현재의 페미니즘적인 흐름이 '여성의 서사 추구'라는 점에 있다. 이 서사 구조에선 본질적으로 남자들의 목소리는 필요없고, 오직 답이 정해져 있을 때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고정된 구조' 안에서 남성의 입장은, 자연스럽게 '포지셔닝화' 된다. 글은 '내 편'과 '네 편'을 확인하는 매개가 된다. 그럴 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런 면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묻고, 그에 대하여 상대의 침착한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남성으로서) 답이 정해져 있는 답을 한다는 건, 운동의 차원에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한 어느 남자 교사처럼. 그러나 그처럼 운동에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이 사안에 대해 좀 더 온건하고 다른 방식으로 목소릴 내고 싶어하는 남성들은 운신할 여지가 없다. 사실 (오랫동안 내가 해온 것처럼) 그저 그들의 목소리에 가끔 SNS에서 지지를 표명하고, 때때로 너무 심하고 잘못됐다 싶은 모습이 보일 때 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기엔 어떤 자폐성이 있다.)
트위터를 켤 때마다, 여성들의 분노와 연대, 그 처절한 '자기에의 배려'를 실감하면서도, 거기에 '결이 다른' 목소리, 또는 '우리가 듣기에 불편한 목소리', '우리가 조금은 놓치고 있는 것' 등등의 말들이 거의 백분지일도 개입되지 않는 사실이 다소 놀랍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보기엔 제인 오스틴이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트위터를 켜고 (그 시대적 특수성을 내포한) 자기 얘기를 몇 마디만 하더라도 매장을 당할 것만 같은(아니면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할 것만 같은), 어떤 폐쇄적인 시간의 멈춤이랄까, 순간성이 있다. 그 덕택에 비로소 현실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운동'이 가능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폐쇄적인 운동의 한계, 같은 식의 말로 마무리한다면 물론 지극히 '한남스럽게'/꼰대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그 명망에 비해서 내가 읽을 때마다 실망하는 학자이긴 하지만, 그녀는 예전부터 인간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개인적인 관계'에서만 바뀔 수 있다고 틈틈이 강조하고 있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인 관계에서 '운동'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내가 느끼기엔,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페미니즘적 목소리를 내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오프라인의 구체성', 이 기울어진 현실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병폐에 너무도 상처 받고 실망해있는 것 같아, 우에노의 진단 또한 공허하고 하나마나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누구보다 자신을 배려하는 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엔 언제나 균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매끄러운 무균질의 서사는, 서사라기보단 연설문에 가까울 테니.) 때론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때때로 자기가 스스로를 밀어넣은 피치 못할 실수와 함정도 알게 되고, 미리부터 정해둔 답도 전략도 있을 수 없는 게 '서사적 진실'에 가깝다. 그 서사는 매 순간 수정되고, 다채로운 감정의 빛깔에 출렁인다. 이건 페미니즘에 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모든 '자아 찾기와 성장의 서사',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해서 하는 말에 가깝다.
2017.11.29 10:08
2017.11.29 11:41
고맙습니다. 미러링에 대해선 저도 참 안타까운 심정이 됩니다...
2017.11.29 11:58
저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는데 (미러링 이전이지만). 사실 유아인이 말한 '미러링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는 명백히 반대로 인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러링까지 허용해야' 페미니스트가 아닐런지...
2017.11.29 12:10
음, 위에서 인용했던 우에노 치즈코도 미러링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얘기하더군요. 저는 이 말에 공감하고, 한국의 현실에도 아주 냉철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여성혐오 문화에 대응하는 하나의 전략으로서 미러링 mirroring에 대해) 언어학적으로 보면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언어를 빼앗아, 그대로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패러디는 물론 싸우는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패러디를 하면 본인의 레벨을 상대의 레벨로 낮추게 되는 결과도 낳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젠더간의 압도적인 권력 차이를 생각해 볼 때 '미러링'은 적절한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남성들이 남발하는 반동적인 전략에 똑같이 휩쓸릴 수 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6/07/story_n_10330084.html)
2017.11.29 10:31
다는 못 읽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 동의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이든 어떤 운동이든 지금 한계에 부딪혀 있는 부분이 비슷한 듯합니다.
대부분의 운동이 자유권을 더욱 확장하려는 것인데, 억압과 차별을 드러내어 이를 철폐하려는 운동
페미니즘 운동은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존의 사회운동들의 프레임 자체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닌가.
선언이나 선포나 정치구호를 넘어서 지금의 운동은 권리의 한계, 법령의 조정, 갈등의 충돌과 조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은 이런 문제가 있고 이런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자제하거나 도를 지나치면 이렇게 처벌한다.
처벌의 주체는 이렇게 되고 과정과 절차 등은 이렇게 정한다.
이런 내용들이 사실 많이 필요합니다.
물론 운동의 대의는 현실의 열악함, 부당함에서 출발하지만,
정치운동이 정치에 그쳐서는 안될 거 같은데, 아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2017.11.29 11:43
선언적인 변화보다도, 실제로 법적이고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맥락의 말씀이시죠? 그런 부분에서 공감합니다.
2017.11.29 10:47
2017.11.29 11:43
감사합니다.
2017.11.29 11:23
2017.11.29 12:07
정성스런 댓글 정말 고맙습니다. 새벽에 왜 이런 장문의 글을 썼는지 생각해보니, 확실히 저도 어떤 무의식적인 위기감과 저항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이 문제에 관해서 내편 네편 진영이 완전히 갈라져버렸다는 느낌,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그 답을 말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핀치에 몰릴수도 있는 집단주의적 분위기, 그래서 지금 말해놓지 않으면 영영 말하지 못하겠다는 조급함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대체적으로 온건한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는데, 여성들이 왜 분노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럼 그분들이 제 글을 반박하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난 페미니즘이 싫은 게 아니라, 페미니즘을 앞세우고 범죄를 저지르는 메갈이 싫은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깐, 유아인이랑 완전히 일치하죠. 그렇다면 넷페미니즘이 낙인을 찍는 것처럼 그들이 전형적인 '한남충'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터무니없는 성범죄에 대해, 데이트폭력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과 성추행 문제에 대해 매우 분노합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그런 여러 측면들이 싸그리 '한남'이라는 타이틀로 묶여서 조롱 받고 공격 받는다는 것이죠.
발목에인어님과 생각이 다를수도 있지만, 이런 맥락에서 저는 조금 전 올라온 강명석씨의 유아인에 대한 유려한 훈계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 분은 아주 말끔하게 유아인을 공격하지만, 그건 어떤 유아인적 인식("일부 폭도와 같은 메갈은 잘못된 것")을 공유하는 광범위한 남성 전반에 대한 공격과 다름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엔, "광범위한 남성 전반"은 결코 말이 통하지 않거나 막되먹은 꼴통 종자들이 아닙니다. 양측이 충분히 교감하고 중간 지점을 찾아갈 수 있는데, 계속 극단적인 주장들만 떠받들어지고, 상대를 어떻게 공격할까 고민하며, 우리편을 결집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를 찾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성학/여성주의를 오랫동안 배워오고 아껴 온 남자로서는... 사실 좀 외롭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글에 쓰진 못했지만, 저는 페미니즘 진영의 중진들이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조한혜정 교수나 정희진 선생과 같은 분이 나서서, 제가 위에서 말한 '우리 안의 파시즘'적인 부분을 따끔하게 얘기해 주기도 하고, 우리가 언제나 옳은 건 아니라는 지적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할 사람도, 했던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이건 페미니즘의 대의가 아니라 현실의 운동 차원에선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17.11.29 12:20
제 생각에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적절한 입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보통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가만히 있는 것'이 최상입니다.
기본적으로 남성은 페미니즘의 세계에선 철저히 외부자일수 밖에 없어요. 왜냐면 뭐가 됬든 글로 배운 페미니즘이 되거든요. 여자로 살아보지 못하고 여자 입장에서 공포나 분노를 체험을 못한다면 애초에 '페미니스트'로서의 동력 자체가 딸리게 되는 겁니다. 남자나 여자나 성별 구분없이 우리 모두 페미니즘 합시다는 어디까지나 모여라 꿈동산 수준의 이상론 밖에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거는 어디까지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까지나 유효한 것이죠. 그리고 결국은 진영논리에요. '김정일 ㄱㄱㄲ 해봐!' 가 '미러링이 페미니즘인가요?' 로 바뀌었을 뿐이죠. 그 중간에서 무언가를 모색하는건 현재로선 별로 가망없어 보입니다.
2017.11.29 12:26
가만히 있는 게 최상...^^ 네. 다시 제 글의 원점으로 돌아가는군요. 그렇지만 현재 여성들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그들의 편을 드는 몇몇 '페미니스트 남성'에 대한 대체적인 반응은 어떤가요? 그들의 '속 시원한' 명문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지금도 수만 건씩 (대부분) 여성들에 의하여 공유되고 리트윗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저와 같은 남자들 중에서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진 중간자'들은 가만히 아닥하고 있어라, 우리 편 들어줄 거 아니면, 이 되는 거죠. 적어도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운동의 현실은 그렇습니다. 그런 면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2017.11.29 12:50
저도 듀게나 가까운 사람과 대화 외에는 페미니즘 관련 발언 하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너희 화난 건 알겠는데 그건 좀 심한 거 아니니?"라고 훈수두는는 게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요. "여자들은 지능이 낮거나 감정적이라서 나처럼 전략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못해"라고 생각하실 리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그런 생각들은 이미 페미니즘 진영 내의 여성들도 똑같이 할 수 있고, 이미 다 나온 이야기일 확률이 큽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남성 작가도 그제 페미니즘 내부 진영에 대한 아주 조심스러운 비판 글을 썼다가, 바로 삭제하고 사과했죠. 이 일에 대해 착잡하고 답답한 느낌은 저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비판글이 여성 내부 진영에선 없었던 새로운 비판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남자 페미니스트들이 올린 글들이 엄청 공유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어떻게 보면 페미니스트 글마저도 남자가 써야 공유되고 퍼지는 당황스러운 상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남자이기에 남자를 더 잘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서 새로운 전략의 글을 쓰는 남자 페미니스트도 소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남자 글들은 남자가 썼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글입니다. 남자가 할 일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다른 남자들을 설득하는 일인 것이지, 여자들을 향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작아서 답답하게 느끼시는 부분은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페미니즘 외 거의 모든 문제에서 그런 답답함을 느끼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2017.11.29 14:15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읽어내 주신 댓글, 감사합니다. 아마 머핀탑님도 저처럼 여러 고민들을 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 또한 여성들을 향해 이런저런 훈수를 두려는 오만함은 갖고 있지 않고, 실제로 제 SNS든 어디에든 그런 식의 글을 쓴 적 또한 없습니다. 저도 글에 썼듯이 머핀탑님의 마지막 문장에 공감을 하기에 최대한 그들의 목소리를 겸손하게 들으려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다만 페미니즘 내부 진영에 누군가가 조심스러운 비판 글을 썼다가 바로 사과해야 하는, 어떤 그런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분위기랄까, 그런 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내부 진영에서 그런 비판이 없진 않았겠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제게는 어떤 유의미한 비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남자가 할 일은 다른 남자들을 설득하는 게 맞을수도 있지만, 결국 남자들을 설득할 때도 지금 여성들의 운동 양상이 언제나 사안에 떠오를 수밖에 없으니, 그 또한 조금은 공허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머핀탑님이 말씀하시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2017.11.29 15:14
페미니즘과 여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에게 발전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것은 유아인식의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선언’이나 이 글과 같은 알리바이랑 고백 혹은 방담이 아닌 ‘자기부정’입니다. 저항감은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사회적으로 경험적으로 축적되고 형성된 자신의 남성성을 부정하고 해체한다는건 생물학적으로 매우 부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 아니니까요. 보통 거기에서 갈립니다. 그래서 회색지대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구요.
2017.11.29 15:50
2017.11.29 16:40
이건 작년 트럼프가 당선 됐을 당시 뉴욕 트럼프 빌딩 앞 상황입니다. 여자들이 "My body, My choice"를 선창하면 남자들이 "Her body, Her choice"합니다. 여성 문제에 있어 남성들은 우선 한발 물러서 주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 문제 있어서는 여서들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글을 보니 물론 글쓰신 분도 이렇게 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워마드식의 페미니즘이 괴롭히는 부분 같습니다. 저도 인권을 무시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페미니즘과는 노선을 달리하고 싶습니다. 그 이전에 심한 미러링 이런것은 머핀탑님도 이야기 했지만 남성이 이야기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게 진정한 페미니즘 처럼 들릴 수도 있으닌깐요. 그리고 '진정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라는 것 역시 생각해 볼 문제구요. 또한 한국내 페미니즘은 아직도 초창기고 과도기라고 봅니다. 그러니 남성이 껴들기 보단 그들이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초점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게시판 어떤 분처럼 역차별 운운할게 아니라 그 시간에 남성에게 여혐을 알리는 것에 시간을 할애해야지요. 네 결국 남자를 설득할때 남성들이 워마드를 얘기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들은' 이라고 말해야하는 거 아닐까요? 미러링이 싫으면 원본 부터 바꿔야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2017.11.29 23:13
2018.02.10 01:50
잘 읽었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그리고 뭔가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남성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사고가 정리되는 느낌도 받았네요.
미러링 논란 이후로 그냥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아닌 것 같습니다. ㅋㅋ)
전통적인 좌파연대의 운동논리로 접근하면 안되는 사안인데, 저는 그 사고방식을 뿌리치지 못하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