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8 18:48
1. 며칠 전 어떤 분에게 호의를 받았어요. 그 분이 남자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만난 신사들'에 대해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략 이런 이야기를요.
스웨덴에서 밤새 일할 때,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새벽에 일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있는데, 어떤 중년의 남자분이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커피를 따라다가 제게 갖다주었어요. 목도 말랐는데 감로수 같았죠.
이번 여름에 제가 스트레스 받아할 때, 공항에서 어떤 아는 한국 남자분을 만나 사정을 토로했는데, 그 분이 제 게이트까지 같이 걸어가며 들어주면서 "이제 그만 행복해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더 오래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각자의 비행기 시간 때문에 그러지 못했죠.
지난 미국 대선이 끝나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알고 지내는 멕시코계 미국 노인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했어요. 특히 당시 멕시코인들 모욕 발언 때문에 더 그랬죠. 그랬더니 손녀를 달래주듯이 "It's alright. Everything will be alright"이라고 말하고 멕시코에 대한 유튜브 클립을 보여주더군요. 화려하고 역동적인 멕시코 문화를 보다보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밝아지더군요.
뭐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조그만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체력도 딸리고 게시판 분위기도 험악한 것 같아서 일단 접기로.
2. 제임스 맥어보이가 나오는 '스플릿 Split'을 봤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연기를 잘할 수 있는가 싶네요. '나이트 매니저'에서 톰 히들턴의 연기를 보고 휴 로리에게 밀리지 않잖아! 하고 깜짝 놀랐는데 제임스 맥어보이는 연기력으로 자기 몸 크기까지 바꿔버리는 것 같네요. 무서워서 비디오를 틀었다가 멈췄다가 하면서 가까스로 봤습니다. 나이트 샤말란이 감독한 작품이었군요.
3. 블랙미러 새 시즌이 12월 29일 넷플릭스에 올라온다기에 기대하고 있어요. 사실은 연말이니까 큰 맘 먹고 조금 비싼 공연을 보려가려고 했죠. 크리스마스 캐롤 뮤지컬이라든가 헨델의 메시아 공연이라든가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라든가. 그런데 티켓 값도 비싸지만, 추운 날 운전하고 주차하고 치안을 걱정하며 밤거리를 헤메는 게 고달프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넷플릭스 정주행만 해도 상당히 충족감이 드는데. 심지어 온 디맨드 스트림 서비스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 을 구매해도 3000원 남짓이거든요. 미국 밀레니얼들이 운전을 안하고, 극장에 안가고, 넷플릭스로 집에서 주로 데이트를 한다는데, 이해가 가요.
2017.12.08 19:16
2017.12.08 20:17
보통은 살면서 남을 이해하는 폭이 커지지만 드러날 만큼 크지는 않고 다만 소수의 사람들이 좀 다르죠.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이고 행운입니다.
그런 경우도 행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스플릿을 보려고 하는데 23가지는 나한테 너무 복잡해 볼까말까 합니다.
2017.12.09 00:45
2017.12.09 11:55
1. 좋은 이야기네요. 저도 슬쩍 묻어가자면,
캔커피를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차가 덜컹거리면서 커피가 손에 좀 튀었어요. 맞은 편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분이 잠시 저를 바라보시다가 코트 안주머니에서 넵킨을 꺼내 조심스레 건네시더군요. 커피숍 넵킨이었는데 곱게 졉혀 있는 모양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번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백팩 가방끈을 팔에 꿰려고 버둥거리는 데 뒤에 계시던 남자분이 가방끈을 척 하고 잡아서 어깨에 턱 하고 올려주시더군요. 조금 놀랐어요. 경험상 남자분들은 그런 종류의 친절을 보여주시는 경우가 거의 없었거든요. 세상엔 개떡같은 인간들도 많지만 이런 분들이 보여주신 친절과 배려를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