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8 14:31
연말에 이런 저런 영화들을 보다 보면 제법 권위 있는 영화상에 후보로 올라있고 평론가 평점이 엄청나게 높은데도
이 영화가 정말 그렇게 훌륭한 영화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사실 올해 여러 영화상 후보로 오른 영화들을 찾아보면서도 이런 의문이 많이 생겼죠.
왜 나한테는 이 영화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지? 왜 내 마음을 파고드는 영화가 없지? 하는 물음이 생기는 영화들을
계속 보게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 보이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나? 나만 못 느끼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물론 이 영화 탄탄하게 잘 만들었네, 이 영화 신선한데 하는 느낌은 종종 받았지만 와, 이 영화 대단하다, 정말 멋지다,
이런 경이로운 느낌을 주는 영화는 올해 나온 영화 중에 거의 찾지를 못했었어요.
제 기대치가 너무 높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제 감수성이 둔해진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원래도 둔한데 ^^)
하여간 영화 찾아보는 보람이 별로 없던 차에 드디어 와, 이 영화 정말 멋지다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를 한 편 발견했어요.
Columbus(2017)
앞으로 올해 나온 다른 영화들을 좀 더 찾아본다고 해도 이 영화보다 더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마 이 영화가 저에겐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주 고요한 분위기의 영화인데 이상한 긴장감이 있어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더군요.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나가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고 끝까지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힘이 있어요.
콜럼버스는 미국의 인디애나 주에 있는 도시라는데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멋진 건물들과 풍경들을 보면서
이런 도시가 실제로 존재하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고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영화의 배경이 이렇게 보는 사람의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영화는 참 오랜만에 본 것 같아요.
만약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면 그 느낌이 훨씬 더 증폭될 것 같고요.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Haley Lu Richardson이라는 배우는 올해 가장 제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주네요.
만약 이 배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멋진 건물들에 대한 영화, 촬영을 잘 한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로만 남았을지도 모르는데
이 배우의 연기 덕분에 인간에 대한 영화, 한 인간의 고통을 위로해 주었던 어떤 공간에 대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 2017년 듀게영화상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올해 저는 이 영화에 감독상, 촬영상, 여우주연상을 주고 싶네요. ^^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간들이 참 멋져서 프로덕션 디자인상도 주고 싶지만 이 영화의 세트는 만든 게 아니라 실제 건물과
그 내부인 것 같아서 그런 경우에도 상을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이 영화는 저에게 올해 Best Poetic Movie이기도 해요.
(상을 주고 싶은 영화가 생기니까 얼른 듀게 영화상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
2018.01.08 15:28
2018.01.08 17:20
아직 한국에 개봉되지도 않았고, 보신 분들이 별로 안 계실 것 같아서 댓글 받기 힘들겠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감격스러운 첫 댓글이에요. ^^
2018.01.08 16:59
2018.01.08 17:25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거예요. ^^ 요즘엔 영어 자막도 제공해주더군요.
개봉되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지만 (이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멋있어서)
빠른 시일 내에 개봉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패터슨과 비슷한 정도로는 뒤늦게 소규모로 개봉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2018.01.08 23:49
2018.01.09 00:26
좀 전에 구글에서 kogonada로 검색하다가 이 감독이 한국 사람이라는 놀라운 정보를 발견했어요. O.O
imdb.com에는 이 감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아래 사진만 보고 어디 동남아시아나 남미쪽 분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영화 속에 한국인이 나오는데 감독이 외국인인 것 같아서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국적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인 감독인데 얼른 국내 개봉을 추진했으면 좋겠어요. ^^
2018.01.10 14:38
Q님이 리뷰도 올려주신 작품이군요. 글보고 언젠가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도 해외 사이트에서 어떻게 구해봐야겠네요.
2018.01.10 18:29
역시 좋은 영화엔 좋은 리뷰가 여기저기 숨어있었군요. ^^
Kogonada 감독이 <Columbus>의 각본, 감독, 편집을 다 했던데 이 영화는 느리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게 신기했었어요. (저는 지루하면 바로 잠이 오는 사람이라...) 아마 장면 장면이 담고 있는
시각적인 정보량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쩌면 편집의 힘이었을지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영화들에서 문이 나오는 장면을 편집한 건데 재미있네요.
Kogonada - Once There Was Everything
https://vimeo.com/229284555
코고나다 감독의 다른 비디오 에세이들 - http://kogonada.com/
2018.01.11 02:34
그저께 underground님 글 보고 궁금해져서 어제 youtube에서 결제해서 봤어요. 48시간 빌려보는데 $3.99였어요.
저는 영화에서 Jon Cho의 역할이 너무 평면적으로 나와서,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캐릭터에 깊이나 변화를 줬으면 하고 바랬어요.
대신 케이시는 정말 좋더군요. 배우가 여배우스럽지 않고 굉장히 현실적인 여학생 - 아직 애기살이 통통한 볼, PT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것 같은 몸 등등-이라서 좋았고, 연기도 말씀하신 대로 참 잘 하더라구요. 참, 로리 컬킨이 맡은 역할도, 로리 컬킨도 좋았어요. 둘이 잘 어울리는데 좀 아쉽죠...
좋은 영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2018.01.11 17:13
한국 유튜브 영화에는 아직 이 영화가 없는 것 같아요. (개봉되기 힘든 이런 영화를 얼른 올려주면 좋을 텐데)
표정을 통해 꾸밈 없이 흘러나오는 Casey의 매력에 비해 Jin의 매력은 뭔가 본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툭툭
던지는 대사에 숨어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Jin이 Casey에게 던지는 물음들, 건축에 대한 얘기들,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들이 저에겐 jin이라는 캐릭터를 흥미롭게 만들더군요. 이 영화에서 감정적인
울림을 주는 캐릭터는 Casey였지만 그런 Casey를 지켜보며 동조되어 가는 (좀 삐딱한?) jin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이 영화 저만 재미있게 봤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좋게 보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
(집중력에 대해 말한 건 Jin이 아니라 동료였군요. 본 지 며칠 됐다고 벌써 헷갈림 ^^ 그 부분 살짝 지웠어요.)
매우 좋은 아트하우스 영화군요 기회다면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