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의 얼굴과 겉모습의 문제

2016.06.19 09:14

R2 조회 수:5365


저는 박유천의 얼굴을 꽤 좋아했어요. 동방신기는 제가 아이돌에 관심을 잃을 무렵 나온 그룹이라, 가수이던 시절 노래는 거의 모르면서도 어느 날 뮤직비디오에서 스쳐간 얼굴만 보고도 기억에 남았어요. 남성적으로 뚜렷한 얼굴도, 그렇다고 아주 예쁘게 생긴 꽃미남과도 아닌데, 아무도 해칠 수 없을 것 같으면서 소년다움이 살아있는 선한 얼굴이었죠. 자연스러움이 있었어요. 대조적인 넓은 어깨나 낮은 목소리도 매력을 더해주었고요. 그래서 어쩌다가 클립을 발견하면 보는 정도의 애정도로 살았습니다. 외모는 굉장히 취향이었지만 에너지와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라 얼굴을 보려고 흥미없는 드라마며 영화를 볼 수는 없었거든요. 마음에 드는 피사체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약자를 욕구배설용으로 철저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거의 티비를 보지 않게 되면서 간헐적인 관심도 줄어든 상태였는데도 마치 지인쯤 됐던 마냥 꽤 뚜렷한 실망감을 느꼈어요. 


저는 박유천이 그런 사람이란 것보다 제가 느끼는 실망감이 더 놀라워요. 


외모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은 머리로 생각해봐서도 경험적으로도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외모로 첫인상을 판가름한다고 하죠. 하물며 저처럼 팬심도 대강인 사람에게 대부분의 연예인은 외모로만 존재하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저와 같은 사람들이죠...잘 몰라요. 성균관 스캔들의 선비나 옥탑방의 머리 긴 왕세자로나 이 친구를 알고 있는 겁니다. 외모와 아우라에 맞춰서 맡게 된 역할들이니까 그런 호의적인 편견?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죠.


유상무같은 경우에는 이미지와 저지른 사건이 그렇게 배치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소 우스꽝스럽고 싫은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지만 박유천의 경우에는 은연중에 꽤나 환상을 쌓아왔던 거죠. 스스로 비교적 객관적이고 냉소적인 면이 있는 어른이라고 믿어왔는데 취소합니다. 그냥 모지리였던 걸로.


외모라는 것이 정말 묘하지 않아요?

저는 외모가 한 사람과 별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큰 방해도 도움도 되지 않는 80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외모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것은 내 성격에 분명히 영향을 끼칩니다.  단순히 성격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인생의 선택지들도 뚜렷하게 달라진다고 봐요. 그리고 몇몇 특별하게 아름답고 인상적이며,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연예인의 재능에는 그런 것이 포함되겠죠.


외모 뿐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의 특이한 지점... 내부와 철저하게 분리돼 있으면서 연결돼 있는 그 속성에 대해서는 요새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 얼마 전에 이렇게 내 인생이 망가지나 싶을 정도로 충격이 심한 일을 겪었거든요. 그런데 직장을 옮긴지 얼마 안된 상태고 상황상 친지들도 많이 만나야 해서, 의식적으로 더 웃고 밝게 행동했어요. 이 일로 망가지지 않겠다는 투지도 있었어요. 그래도 혹시, 내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한줌 품고 있었죠. 그런데 막상 보기 좋다, 적응 잘하고 있다, 눈빛이 맑아졌다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알리지 못한, 꽤 통찰력있다고 생각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조차. 오버했나봐요. 심지어 제 눈에도 그래 보여요. 얼마 전에 다른 사람들과 찍게 된 사진에서는 근래 찍은 사진 중 드물 정도로 밝고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제 모습을 봤어요.


하지만 일상에 몰두하고 억지로라도 웃을수록, 그 일과의 거리를 벌려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더라고요. 저녁에 잠들기 위해 아침에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농담에 웃을 때 같이 깔깔 웃고, 밥을 꾹꾹 천천히 먹으면서, 일상의 리듬에 의지로 임하다보면 시간이 흘러갔어요. 그러고보면 겉모습이란 것은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거죠. 괜찮은 척 하면 괜찮아지는 거예요. 어느 정도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위선이 위악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생각나더라고요. 속마음이 좀 달라도 착한 척 하다보면 그 척에 영향을 받기 마련인거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지금 덮어둔 괴로움이 언젠가는 폭발할지도 몰라요. 혹은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독을 뿜을 지도 몰라요. 그 아픔 속에 흠뻑 빠지는 게 장기적으로는 나은 선택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일단 살아남는데는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힘이 됐어요. 


일요일이에요. 일요일 아침은 늘 일요일 저녁보다도 조금 괴로워요. 주말간 하려던 일을 미뤄두다가 오늘 다 해야하거든요. 그런데 아마 저녁까지 안하다가 저녁에 허둥지둥 시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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