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작이고 방송 시간이 짧아서 큰 부담은 없습니다. 제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정도인 드라마였어요.

배경이 주로 겨울이고, 대사가 짧고 주인공의 독백이 건조한 느낌이라 드라마 전체가 겨울 이미지예요.

남의 인생을 훔쳐 사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홍보할 때는 마치 이 사람이 정말 운이 나빠서 인생이 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자기 잘못으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거였습니다.
거짓말을 시작한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 거짓말을 하게 된 계기 이야깁니다.
드라마는 마치 그 사건이 천재지변이나 일방적인 범죄처럼 주인공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처럼 다루는데, 글쎄요. 물론 어른이자 교사이기까지 한 상대방의 잘못이 크긴 합니다만 평범한 여자애가 벼락맞은 것 같진 않더군요.
어려서 일이 그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정도까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두 배 넘게 나이먹은 저도 매일매일 멍청한 짓을 하니까요.
여기서부터 살짝 거슬리는 느낌이었지만 일단 넘어갔습니다.

결국은 그 일로 꼬인 인생을 숨기기 위해 주인공은 거짓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혜택들을 넙죽넙죽 받아먹어요. 본인 외의 주변사람들을 전부 속이죠.

작가가 과연 이걸 어떻게 수습할 건가 궁금해서 계속 봤습니다.
주인공 같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은 여러 가지죠. 아예 나락 보내는 방법도 있고, 유쾌한 소동극을 만들 수도 있고요. 지옥으로 가든, 우당탕탕 유쾌하진 않아도 최종승자가 이 문제 많은 주인공이 되는 결말이든 저는 불만 없어요. 요는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가죠.

꽤 칭찬을 받았던 수지의 연기는 그냥 그렇습니다. 계속 입을 반쯤 벌린 멍한 표정으로 높낮이 없는 대사를 반복하는 게 다예요. 딱 한 번 폭발하는 씬이 있는데 이때 보는 제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복잡한 인물이고 연출 자체가 착 가라앉아있어서 연기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게다가 편하게 앉아서 이러니 저러니만 하는 저도 도대체 만든 사람이 저 인물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해석하고 또 동작과 말투로 만들어내야 하는 배우는 몇 배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작가나 감독이 주인공에게 엄청난 애정을 가진 것 같아요. 마치 본인이 본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 인물을 덮어주기만 합니다.

부모를 실망시키는 걸 겁내지 말라고 했나, 모든 문제가 거기서 시작됐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독백으로 합니다만, 여기서 결정적으로 제 여섯 시간이 아까워지더군요.
그 왜, 떠도는 네이트 판 글들 있잖습니까. 자기는 완전 멀쩡한 사람인데 이러이러해서 한 순간 실수로 이상한 취급 받고 있다, 이런 자기 변명글이요. 딱 그런 글을 우아하고 세련되게 영상화하면 이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

소재만 있고 주제는 없는 드라마였어요.
화면은 볼 만합니다. 건조하고 차가운 겨울 드라마예요. 주인공을 향한 알 수 없는 온기가 문제지.

그 와중에 텅 빈 발랄함을 연기하는 정은채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 왜, 누가 괴로워하면 '오, 베이비, 나도 마음이 아파. 그런데 말이야, 저 남자 어때?' 하면서 헐리우드식으로 안아주고 휑 가버리는 그런 부류 말입니다. 이런 역이 어울릴지는 몰랐어요. 연기파라는 생각은 한 적 없는데 그간 못 봐서 그런지 잘 하더군요.


아 참, 대사 하나하나는 좋습니다. 명대사로 띄우고야 말겠어라는 그런 대사는 아닌데 좋아요. 심지어 제가 질색을 하게 된 그 자기변명 독백도 대사 자체만 떼서 보면 좋았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7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2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43
121516 윤석열 정부, 10.29 참사에 경찰과 소방서 압수수색 외... [16] Sonny 2022.11.11 925
121515 MBC 언론통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이콧하는 언론은 두군데밖에 없네요 [3] 으랏차 2022.11.11 758
121514 와칸다 포에버 를 보고<스포유 [2] 라인하르트012 2022.11.11 509
121513 뉴공도 이제 끝나는 군요.. [2] 라인하르트012 2022.11.11 671
121512 [스크린 채널] 폭력의 씨앗, 밤의 문이 열린다 underground 2022.11.10 276
121511 만화 아일랜드 드라마판 티저예고편 [1] 예상수 2022.11.10 342
121510 엔니오 모리꼬네 생일/terrore dello spazio [1] daviddain 2022.11.10 199
121509 프레임드 #244 [2] Lunagazer 2022.11.10 124
121508 10.29 참사 도대체 왜 그랬을까 [1] 도야지 2022.11.10 422
121507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2015) [2] catgotmy 2022.11.10 287
121506 [왓챠바낭] 알고 보니 내가 인간 병기! 영화계의 듣보 조상, '시한폭탄'을 봤어요 [6] 로이배티 2022.11.10 425
121505 티빙 몸값 재미있군요. (스포) [1] dodo 2022.11.10 467
121504 바낭 - 듀게 밖에서 해야할 일들(또 안해도 될 일) [4] 예상수 2022.11.10 374
121503 문재인도 윤석열과 얽히는 게 진짜 짜증나나 봅니다 [8] Sonny 2022.11.10 1144
121502 대통령실, MBC에 “순방 때 전용기 탑승 불허” 통보... [17] 으랏차 2022.11.10 957
121501 1972년생, 50이 되다 [12] Kaffesaurus 2022.11.10 788
121500 요즘 좋아죽는 드라마속 인물2 [2] singlefacer 2022.11.09 441
121499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파양 (aka hubris님을 기억하며) [11] 세멜레 2022.11.09 880
121498 핫한 신작 드라마도 신작 영화도 아닌 옛날 영화를 보다 [2] daviddain 2022.11.09 395
121497 요즘 좋아죽는 드라마속 인물들 [1] 부치빅 2022.11.09 4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