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십호와 후오호

2023.11.29 17:18

돌도끼 조회 수:187

81C6Ok+MUhL._SL1488_.jpg


1980년 장철 감독 작품.

광동십호는 청나라말쯤에 광동지역에서 명성을 날린 열명의 무술인들이라고 합니다.

그 넒은 중국 대륙에서도 하필이면 광동성의 특정 지역에만 그렇게 인재들이 넘쳐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편입니다.
제대로 열사람이 다 다뤄지는 일도 많지않은 것 같고 주로 황비홍 아버지 황기영과 황비홍에게 소림사 무술을 전수해줬다는 몇사람들만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것 같아... 광동십호 전설 그 자체도 황비홍 전설의 부록 취급이 아닌가 싶기도...

그래도 어쨌든 이 영화는 황비홍을 배제한 광동십호의 이야기입니다. 황비홍은 아역으로라도 나오지 않고 황기영도 별로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 광동십호중에 여인초라는 사람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입니다.(그러고 보니 장철은 황비홍은 한번도 안다뤄봤던 것 같네요... 후오호 파트의 시대배경이 딱 황비홍의 시대인 것 같은데...)

스토리는 걍 흔해빠진 반청복명 이야기.
광동십호가 반청복명 지사를 지키기 위해 청나라 관부와 대립한다는 내용입니다.

우선 내세울만한 장점은, 장철의 올스타 동창회입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10명 이상의 역할이 확보되어 있으니 배우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만...ㅎㅎ
여인초역의 적룡을 비롯해서, 부성, 그리고 (위백까지도 포함한) 오독 멤버 전원이 출연하고 있고 당시 막 데뷰한 신인이던 전소호를 위시한 후기 오독멤버들도 나옵니다.
근데... 장철이 70년대에 만들었던 올스타캐스트 영화들은 [십삼인의 무사]나 [수호전] 같은 대작들이었는데 이 영화는 무척 소박한 소품입니다. 사실 뭐 적룡과 부성 빼면 나머지는 그당시 장철이 양산하고 있던 저예산 영화들에 늘 나오던 사람들이고요ㅎㅎ

글구 영화 모양새가 영 이상해요.
두가지 플롯이 섞여 있습니다. 선대인 광동십호의 이야기와 그 후계자들인 광동오호의 이야기. 그래서 제목도 '광동십호와 후오호'.
근데 이게 제대로 섞여있다기 보다는 그냥 둘이 서로 평행으로 달립니다.
대충 이야기상으로는 적룡이 이끄는 광동십호가 청나라 관리인 왕룡위와 대립한다는 광동십호 파트와 왕룡위의 아들이 공동십호의 후계자들인 광동오호한테 복수한다는 후오호 파트가 엮여있는데, 이 둘이 그냥 완전히 다른 영화 두개를 짜깁기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광동십호 파트는 대략 70년대 중후반의 장철영화의 모습이고 후오호 파트는 80년대 초 장철 영화의 모습입니다.
둘은 출연진도 다르고, 미술이나 의상 소품같은 화면 때깔도 다르고 심지어 액션의 스타일과 호흡도 다릅니다.
장철이 이 둘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연출했을 가능성은 무척 낮다고 보고요...
아마도 광동십호에 대한 영화를 찍다가 모종의 이유로 엎어져버렸는데, 그래도 찍어놓은 푸티지가 상당히 많다보니 썩히긴 아까워서... 여기다 나중에 추가촬영을 해서 새로운 플롯 '후오호' 이야기를 덮어쓴 것 같습니다.

사실상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광동십호 파트이고, 후오호 파트는 스토리가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광동십호 이야기에서 (아마도 미완성이라) 듬성듬성 빠지는 부분들을 후오호 멤버들이 모여 주고받는 말로 때워서 설명하는 식으로, 후오호 멤버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마치 꼬꼬무 해설자들같은 역할입니다. 그러다 이야기 다 끝나면 후오호 파트 출연자들끼리 한바탕 싸우고 영화 끝.

그러다 보니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 끝판왕전이 두번이나 나옵니다. 10호 파트에서 적룡이 이끄는 광동십호팀과 왕룡위가 이끄는 청군이 벌이는 대운동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전소호, 용천생 컴비와 왕력, 관봉 악역 컴비와의 대결. 양쪽 다 액션은 상당히 잘뽑혔습니다. 뭐 액션 영화에 액션이 많이 나오면 좋은 거죠ㅎㅎ

그렇지만 문제인게, 영화에서 제일 잘나가는 스타, 혹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인물이 클라이맥스 결전의 주동자가 되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메인 스타이자 스토리 주인공인 적룡이 나오는 결전 장면이 영화 중간에 배치되어버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당시 무명이던 신인들.(그 신인들 중 대부분은 지금 현재에도 그다지 인지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나마 전소호가 나중에 [강시선생]으로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러니까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도 아니고,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싸우는 건데 보면서 흥이 제대로 나겠어요.

그래도 뭐 스토리같은 거 따지지 않는 고전 쿵후영화 팬이라면 일단 나오는 사람들 면면만으로도 손해볼 건 없지않나 싶고요. 장철의 다른 두가지 스타일이 한 영화에 섞여서 나오니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울 수도... 마지막에 모탈컴뱃 스러운 페이탈리티도 있고요ㅎㅎ




-막판에 후오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얘들이 진짜 악당입니다.




셀레스쳘 예고편. 광동어로 더빙되어 있네요.




영어판 예고편. 나레이션에서 요새 한국 케이블 홈쇼핑 광고 느낌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43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93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959
125173 젤리아드 음악 [1] 돌도끼 2024.01.08 82
125172 코난 잡담 [11] 돌도끼 2024.01.08 296
125171 어제 1.7.일자로 63년이 된 사진/드 팔마 영화에 나온 드 니로 [6] daviddain 2024.01.08 301
125170 웅남이를 봤어요...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 [3] 왜냐하면 2024.01.08 546
125169 2024 골든 글로브 수상 결과 [2] 상수 2024.01.08 387
125168 뒤로 가는 남과 여에서 [3] daviddain 2024.01.08 205
125167 [디즈니플러스] 아주 독한 힐링물, '더 베어' 시즌 1 잡담입니다 [11] 로이배티 2024.01.08 467
125166 프레임드 #667 [2] Lunagazer 2024.01.07 61
125165 [넷플릭스, 디플] 도쿄 MER, 달리는 응급실 [4] S.S.S. 2024.01.07 306
125164 [시간의 향기] [4] thoma 2024.01.07 171
125163 2023 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 Award Winners [2] 조성용 2024.01.07 165
125162 #경성크리쳐 시즌1 다보고<스포> [2] 라인하르트012 2024.01.07 405
125161 [넷플릭스바낭] 미국인들이 작정하고 건전하면 이렇습니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 잡담 [8] 로이배티 2024.01.07 646
125160 열녀박씨계약결혼뎐 완결.. 라인하르트012 2024.01.06 296
125159 요즘 들은 신곡 MV들 - 1조, 도레미파, To X, Chill Kill, Love 119, What Love Is, Off The Record 상수 2024.01.06 136
125158 [근조] 전 천하장사 황대웅 [2] 영화처럼 2024.01.06 322
125157 Wild palms [9] daviddain 2024.01.06 137
125156 프레임드 #666 [4] Lunagazer 2024.01.06 90
125155 [디즈니플러스] 하이테크 퍼즐 미스테리, '외딴 곳의 살인 초대'를 봤어요 [25] 로이배티 2024.01.05 597
125154 아주 사소한 것 [5] daviddain 2024.01.05 30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