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어머니가 마트에서 다녀오셨어요. 저희 개씨는 언제나처럼 현관으로 뛰쳐나가 어머니 주위에서 점프 점프 점프를 하며 방정를 떨었고요.
저와 동생이 짐을 받아들고 잠시 셋이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희미하게 '깽'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죠

물건 정리 중에 작게 찡찡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아래를 봤더니, 개씨가 앞발을 하나 들고 앉아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요! 어머니한테서 물건을 받아드는 와중에 누군가의 발에 채였나봅니다. 아까 깽 소이가 그 깽 소리였나봐요.
엄청난 엄살쟁이가 정말로 걷어 차였다면 이렇게 작게 찡찡거릴리가 없어서 좀 수상하긴 했어요. 이런 주인의 의심을 의식한 듯 개씨는 한쪽 앞다리를 높게 들고 세 다리로만 걷습니다.

그 모습에 식구들은 패닉상태. 동네 동물병원은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아서 병원을 가려면 시내로 가야하거든요. 당장 병원을 가야하나 다들 걱정하고 근처에 문을 연 병원을 찾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다행히 다친 다리를 만져도 개씨가 아파하거나 움찔거리지 않기에 상태를 지켜보다가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개씨를 품에 안고 토닥거리며 진정을 시키는 동안 어머니께서 크게 놀란 개씨를 위로하기 위해 고구마를 구우십니다.
고구마 굽는 냄새가 향긋하게 퍼지니, 제 품에 안겨 다린 앞다리를 비쭉 들고 있던 개씨가..

톡 튀어 내려서 고구마가 구워지는 오븐을 향해 톡톡톡톡 사뿐사뿐, 미끄러지 듯 가볍게도 걸어가더군요.
네 발로요.
방금 전까지 앞 다리 하나는 골절 된 것 처럼 굴었는데요.
앞으로는 쭉 세발로만 걸을 기세였는데요.

고구마가 노릇하게 구워지니 언제 그랬냐며 네발로 토토톡 뛰어갑니다.

야이! 너 이 개사기꾼새...;

개씨가 장바구니에 살짝 스친 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 하고 신경을 써주지 않으니 이놈의 개시키가 관심을 끌려고 엄살을 피운 겁니다.

개씨는 고구마를 배터지게 쳐드시고 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좌우로 지지며 한잠 늘어지게 주무시더니.
김연아경기 보는 주인에게 공을 물고와서 놀자고 꼬리를 흔듭니다. 혹시나 하며 공을 던져주니 역시나 사뿐하게 점프해서 캐치!

야이!!너.. 이 개..!!

내년엔 반려견을 등록해야 한다는데 저희 개씨 이름을 개사기꾼으로 등록할까봐요. 세상에 등쳐먹을 사람이 없어서 주인을 등쳐먹다니.
너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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