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밥 만화책 완결.

2024.05.07 15:14

잔인한오후 조회 수:384

정말 재미있게 보던 던전밥이 요번에 14권이 발매되며 완결되었습니다. 이 만화가 10년 동안 연재되어 완결되었다는 게 잘 믿기지가 않네요. 아무리 길게 잡아도 4년 정도 된 기분인데, 시간이 참으로 빨리 갑니다. 이 글에는 완결까지 읽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려고 하고, 다들 함께 정말 재미있지 않았냐?라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ㅋㅋ.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서 부쩍 이 만화를 보는 분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쿠이 료코라는 작가와 함께 동시대를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절어 있다고 말할 만큼 이 만화가 저와는 너무 잘 맞았습니다. 일본 특유의 기분 나쁜 감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행복했고요. (이해할 수 없는 엘프들의 헐벗은 복장이라거나, 이상하게 남성보다 여성이 성애적으로 그려진다거나, 남성들이 성적으로 민감한 반면 여성들은 둔감해서 계속 넘어간다든가 하는, 왜 이런 이야기가 꼭 판타지에 나와야 하는 건가? 이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넣지 않으면 만화를 못 그리는 건가 하는 부분.) 엉뚱한 소재들을 언제나 현실적으로 정면 대결하는 패기도 즐거웠습니다.


특히 다른 소설이나 만화에서, 다루던 굵직한 질문들을 차마 대답할 수 없어서 피하거나 얼버무렸던 부분들을 어떻게든 머리로 생각해서 대답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결과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모든 욕망이 충족된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모든 욕망을 다 잃어버렸다면? 생물이 아닌 존재와 싸워 이기는 법은? 사는 동안 내가 죽기 전까지는 남들이 죽는 것을 계속 감당해 나간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굳이 머리 아프게 이런 질문들을 만들어 할 일도 별로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에 휘말리고 대답을 듣게 만드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마지막 권을 읽으면서도 조금 바보 같지만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ㅋㅋ. 악마에게 모든 욕망을 후루룩 빼앗겨버린 엘프 이야기도 잘 마무리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너무 진지하지 않으려고 일상적인 소리 넣는 것도 좋더군요. '무슨 은퇴한 중년 위기 같은 소리야'라거나, '백 년쯤 전에는 나도 저렇게 다 깨달은 느낌이었지', '그렇다고 먹히는 동물들이 기뻐할 줄 아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같은 이야기들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너무 무섭습니다. 그림도 묘사도 그렇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확장하고 그 확장된 세계를 다시 추려서 별반 마구 떠들지 않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리고 그런 확장과 축소 사이에 갈등이나 고통이 잘 안 느껴지고 흠뻑 즐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더 무섭습니다. (이 사람이 따로 낙서한 것 중에, 등장인물들이 마니또를 했을 때 누가 누구에게 무슨 선물을 줄 지 상상하며 너무 즐겁게 그린 것 같아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후에 어떤 테마로 장편 만화를 또 그릴지 기대가 됩니다. 많이 많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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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에 대해 일본인들은 내면적으로 어떤 테마가 있는 게 아닌가 궁금하더군요. 벌써 '인간을 먹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작품이 3번째에요. 옛날이야기를 생각하면 일본 인어 고기가 떠오르고. 한국에서 인간을 먹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효를 위해 옆구리살인가를 잘라 줬다는 이야기나, 사람이 소로 보여서 남들을 잡아먹다가 무를 먹고 사람과 소를 구별하는 이야기 정도만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섭취한다는건 원시종교에서도 '먹힌 자가 먹은 자의 일부로 흡수된다'는 식으로 다뤄지는건 있었는데, 인간의 소화력이 존재를 완전하게 삭제한다는 개념은 요새 어디서 자꾸 오고 있는 건지, 그 무의식은 어디로부터 시작된건지 싶습니다.


던전에서 음식 먹는 이야기는 제 기억에 던전밥 이전에도 여러 편이 '힐링 만화'로 나왔던 것 같거든요. 한국에서도 웹소설로 한참 던전에서 농사 짓기 같은 식으로 변주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보면 한국인들도 '생활'이라고 할만한 요리 활동을 '일' 가운데 안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ㅋㅋ. 여튼간 먹는다는 행위의 철학적인 묘사는 다 털어버린 것 같아서 뭐가 더 있을가 싶습니다.


다들 재미있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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