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약속예찬

2019.09.04 22:22

Sonny 조회 수:474

당일 오후, 노을이 슬슬 지려하는 그 순간, 저녁 여섯시라는 촉박한 약속시간에 부리나케 뛰어야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전날 밤 이미 짜놓은 생활계획표에 평행하는 가로 두 줄을 슥슥 긋고 수입을 포기하며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면? 그래도 즐겁습니다. 예정에 없던 사건은 그저 변덕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어느 순간 찾아온 한 주의 목표가 됩니다. 나도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갑자기 놀려고 평일에 생고생을 했구나... 중요한 건 정말로 그 시간이 즐거운지 여부가 아닙니다. 아 일이 있는데... 그럼 그냥 그럴까? 하고 서두르며 발걸음에 실리는 그 기대감이죠.

급약속을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은 참 귀합니다. 우리는 대개 모르면 모르니까, 알면 아는 대로 좀 보고 놀고 떠들고 싶은 마음을 꾸깃꾸깃 넣어놓은 채 다음을 기약하게 되잖아요. 사실 우리가 그리스 신화 속 올림푸스 12신이면 모르겠는데, 영원히 사는 거 아니고 기껏 잡아놓은 약속은 생계의 다양한 변수가 뒤흔들고. 정해놓은 약속들의 위안이 불안한 가운데서 급약속이란 외려 나도 모르게 당첨되어있던 쿠폰 같습니다. 어라, 약속을 주웠네?

별 거 없어요. 그냥 술마시고 수다떨고. 그래도 중요한 건 그 약속이 생기는 순간의 파격과 약속에 도착하기까지의 기대감이죠. 대개 무슨 일이 생겼다하면 그건 정말로 트러블이고 고통이기에 이 예외적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사전계획과 약속 없이는 하루하루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리멸렬 평온하게 흘러갑니다. 그 안에서 갈라져 터져 나오는 누군가의 변덕 혹은 충동은 우리를 삶의 트레드밀 바깥으로 확 밀쳐내구요. 그제서야 울퉁불퉁해지는 삶의 변곡선 위에서 곱씹어요. 이 잔잔한 하루의 껍질을 벗고 툭 튀어나온 누군가의 재촉은 얼마나 즐겁고 소소한 경이인지. 전 그렇게 부를만한 배짱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충동에 성실히 복무할 무모함은 언제나 가득해요. 나오라구요? 넵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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